Skip Navigation Links공감꿈을 심는 후원자
50년 전, 나를 살리고 일으킨 ‘컴패션’ 하명근 후원자님 2017.06.05 80

젊은 사람들에게 어릴 때 굶은 얘기했더니, “그럼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면 되지 않나요?”라고 하더군요.
전쟁 후 참상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실 겁니다.
정말 총알이 빗발치는 곳만 전쟁터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제가 스완슨 목사님의 특별한 수혜를 입었습니다.

1993년, 컴패션이 한국에서 철수할 때까지
저를 비롯한 1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은혜를 입었습니다.
컴패션은 한 영혼을 살리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돕는 일입니다.


■ 나의 어린 시절, 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저는 6.25한국전쟁이 발발한 다음 해인 1951년에 태어났습니다. 전쟁고아는 아니었지만 어느 누구도 전쟁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은 누더기를 걸친 채 폐허 더미 사이에서 구걸을 다녔고, 추위와 비바람을 피해 가마니와 널판자로 임시 집을 지어 사는 모습도 흔했습니다. 이 조차도 없어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도 많았지요. 전쟁 중에도, 전쟁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많은 세월을 어렵게 살았습니다. 고생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정말 총알이 빗발치는 곳만 전쟁터가 아니었습니다. 식량원조가 있었지만 주리는 것은 일상이었습니다. 밥 한술 때문에 치고 받고 싸우기도 했죠.
제가 젊은 사람들에게 당시 굶은 얘기했더니, “그럼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면 되지 않나요?”라는 기가 막히는 말을 하더군요. 당시는 라면은 고사하고 먹을 것이 아예 없었으니까요. 일하면 되지 않느냐 소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터가 어디 있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무능하고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할 노동판이 없었죠. 상상하기 어렵고,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실 겁니다. 특히나 배고픔과 헤어짐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 나의 컴패션, 서울 애린원에서

저는 8살 때 친어머니와 헤어지고, 무당 계모 밑에서 가슴 저린 세월을 살았습니다. 12살 때 이 집에 더 살다가는 죽겠다 싶어 친어머니를 찾아 고향 부산 영도로 찾아갔더니 어머니는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 후였습니다. 졸지에 고향에서 고아가 되어 우리 동네에 있었던 서울 애린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12살(좌), 18살(우) 서울 애린원에서 찍은 단체 사진

전쟁 고아들을 보시고 컴패션 사역을 시작하신 스완슨 목사님은 한 영혼의 가치를 아셨겠지요? 한국을 축복하시고, 어린이를 사랑하신 그 한 분의 믿음으로 저를 비롯한 많은 어린이들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양식과 분말우유도 먹고, 필요한 구호물품을 받고, 후원자를 통해서 생일이나 성탄절에 편지와 선물을 받았습니다. 저는 오른쪽 눈에 검은 반점이 자라났는데, 스완슨 목사님의 주선으로 아동자선병원에서 제거수술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매일 예배를 드리며 컴패션이라는 큰 믿음의 우산 아래 보호받고,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 나의 가족, 기억 퍼즐 맞추기

가족을 잃은 어린이들은 부모와 형제자매와 헤어졌을 때, 어린 시절의 순간순간들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평생 잊어버릴까 두려워합니다. 내가 어디에서 살았고, 우리 집은 어디에 있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헤어졌는지 곱씹습니다. 잊어버리면 영원히 가족을 못 만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눈물로 헤아립니다.

저도 밤마다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 베개 섶을 눈물로 적셨습니다.

가끔 TV에서 이산가족이 된 60~90대 할아버지, 할머니나, 저마다의 사연으로 부모형제를 절절하게 찾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헤어짐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아픔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미 자녀며 손자, 손녀도 다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부모를 그리워하며 찾을까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헤어진 그리움의 세월은 죽기 전까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거나 위안을 줄 수 없습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저는 이름이 네 번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사용하는 이름도 본명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남의 성으로 사는 꿈같은 세월입니다. 그래도 저는 한탄하거나 원망이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 1960년대 한국 수혜국 시절 컴패션에서 사용한 성경교재


■ 나의 거듭남, 하나님을 만나다

18세에 컴패션에서 나와 군대에서 군종으로 제대하고 얼마 있지 않아 폐결핵을 앓았습니다. 감기가 급격히 악화되어 병원에 갔더니 6개월 시한부라고 하더군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부산가야기도원으로 갔습니다. 그때 성경말씀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고 그 밤에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권능으로 폐결핵도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습니다.

덤으로 살게 된 저에게 하나님은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살리는 이 위대한 사역에 소명을 주셨습니다. 저는 주를 위해 살기로 서원했습니다. 이전까지 겪은 슬픔과 아픔, 그 모든 것은 연단의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셔서 죄인 중에 괴수 같은 저를 고치시고 사용하셨습니다.

가끔 하나님께서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그들을 만나면 “저는 족보도 없고, 병으로 시한부 삶과 죽었던 험악한 세월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저를 주의 종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목사님, 그동안 숨겨왔는데 저는 고아 출신이에요.”, “저는 지독하게 가난했어요.”, “저도 시한부 인생을 살았습니다.”, “계모, 계부 밑에서 자랐어요”라고 고백해주십니다.


■ 나의 소명, 장애인 사역

이후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습니다. 또 일본 선교사로 섬겼고 비자문제로 국내에 들어와 인제대학교 부속 부산백병원 원목실장으로 병원사역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장애인 사역으로 소명을 받아 올해로 23년째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사역을 몇 마디로 축약하라면 ‘은혜, 감격, 눈물’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정말 힘들면 기도도 나오지 않습니다. 눈물만 하염없이 흘립니다. 맡겨주신 사명 때문에 흘렸던 눈물이죠.


장애인 사역은 재정확보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재정확보와 예배 처소 마련에 지금도 힘든 과정을 겪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강력한 소명이 없었다면 저는 벌써 이 사역을 떠났을 겁니다. 친구들도 그래요. “네가 왜 장애인 사역을 하냐?” 그럼 제가 반문해요. “장애인 사역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만이 하는 거냐?”고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묵묵히 순종하기 원합니다. 또 저를 따라 목회 길에 있는 두 아들 목사에게 부끄럽지 않은 목사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 부산 새소망장애인교회 주일오전예배 후 성도들과 함께


■ 나의 후원어린이, 안녕 호세!

한국이 수혜국에서 후원국이 된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컴패션 우산 아래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저는 늘 빚진 마음이 있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첫발을 내디딥니다.

제가 컴패션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인 것뿐 아니라, 컴패션의 사명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에 동참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도 귀하고 중요한 사역이 또 있을까요?

2016년 6월, 온두라스에 사는 호세(Jose)를 컴패션을 통해서 만났습니다. 제가 기도는 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편지 하나 변변하게 못 보내고 많은 관심을 전하지 못하는 후원자더라고요. 어린이들에게 편지 하나가, 후원자의 관심 하나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더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 우리의 컴패션, 은혜와 감사를 입다

과거 컴패션을 비롯해서 수혜를 받았지만 말하기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는 걸 압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고아 출신이나 지난 날 극한 어려움 속에서 도움을 받고 컸다고 하면 편견을 갖고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변화된 사람은 지난 과거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은혜와 감사가 있습니다. 저는 컴패션에서 물질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믿음을 갖고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날, 컴패션의 도움을 받았다고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1993년, 컴패션이 한국에서 철수할 때까지 저를 비롯한 1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은혜를 입었습니다. 컴패션은 한 영혼을 살리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돕는 일입니다. 제가 스완슨 목사님의 특별한 수혜를 입고, 그분의 삶을 제가 목회하는 가운데 간증할 수 있는 배경이 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에티오피아, 태국, 필리핀, 콜롬비아
한국전쟁 참전국 16개 나라 중 4개의 나라는
지금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받은 사랑을 전할 순간입니다.

댓글 입력창 댓글  {{total}} 0 / 300자
  • {{item.user_id}} {{item.body}}
    수정 삭제 {{item.reg_date | date : 'yyyy-MM-dd HH:mm:ss' }}
    0/300자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