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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COM] 꽃처럼 예쁜 디저트 덕분에 제 꿈도 활짝 피어났죠 (정승연 후원자)

  • 작성일 2021-07-16

 

 

 

꽃처럼 예쁜 디저트 덕분에 제 꿈도 활짝 피어났죠

디저트 아티스트 '블루밍봉봉' 정승연 후원자

 

 

 

 

한 입 디저트에 마음을 담는 사람이 있습니다. 디저트 아티스트 '블루밍봉봉' 정승연 후원자, 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작은 예술 작품에는 타인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정승연 후원자는 디저트를 통해 한동안 잊었던 꿈을 되찾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디저트 아티스트라는 새로운 길을 찾은 정승연 후원자를 컴패션이 만났습니다.

 

 

디저트 아티스트 ‘블루밍봉봉’으로 활동 중인 정승연 후원자 [사진 : 정승연 후원자]

 

 

◆ 출산과 육아휴직, 그리고 다시 찾은 꿈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승승장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누가 봐도 좋은 직장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다른 사람 기준에 맞춰서 열심히 살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정승연 후원자는 대학교 졸업 후 S전자 마케팅 부서와 디자인 부서에서 일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그였지만, '누가 봐도 좋은 회사'라는 타이틀이 그가 회사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됐습니다. 그렇게 10년. 바쁜 일상을 성실히 살다 보니 정작 좋아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러다 맞이한 첫 휴식기가 육아휴직이었습니다.

 

"휴직 기간에 디저트 만들기 수업을 들었는데, 자면서 꿈에 나올 만큼 행복했어요. 그때 불현듯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의 꿈은 바로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휴직 후에도 정승연 후원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한동안 '워킹맘'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를 봐주던 베이비시터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복귀 1년 만에 결국 그는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주위에 말리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고 하잖아요. 디저트를 만드는 게 워낙 즐거워서 육아의 고단함도 잊었던 시절이 기억났어요.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소망하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이 일이라면 10년 후에도 잘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디저트 아티스트'로 전향했습니다."

 

그는 부엌 한 편에 테이블을 놓고 가지고 있던 도구를 활용해 디저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첫 작품은 강낭콩 앙금으로 만든 앙금 플라워 떡 케이크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활짝 핀 꽃처럼 아름답고 달콤한 디저트'라는 뜻을 가진 '블루밍봉봉'이 탄생했습니다. 블루밍봉봉은 꽃이 활짝 핀 모습을 가리키는 영단어 '블루밍(blooming)'과 사탕의 의미를 가진 프랑스어 '봉봉(bonbon)'을 합쳐서 만든 이름입니다.

 

 

 

디저트 클래스에서 수강생들에게 화과자 만드는 방법을 설명 중인 정승연 후원자  [사진 : 정승연 후원자]

 

 

 

 

◆ "그럼에도…마음 가는 일은 한번 시작해 보라"

 

어렵게 되찾은 꿈을 소중히 지켜내고자 시작한 도전이었지만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처음 1년 동안은 심리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가 계속됐습니다.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어디에 가서 회사 이름을 대면 다른 미사여구가 필요 없었어요. 내가 얼마나 노력해 온 사람인지 회사가 증명해 줬거든요. 그런데 퇴사를 하고 보니 저를 설명할 수식어를 못 찾겠더라고요.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고민하며 방황했던 시간이 있어요."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은 꿈을 향한 열망과 그를 믿고 찾아준 수강생들이었습니다. "어렵게 찾은 꿈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가진 꿈이라고 해서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소중히 잘 가꾸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반에 만났던 수강생들은 그가 심은 씨앗이 잘 자랄 수 있게 도와준 자양분이 돼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수강료를 내고 오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주문한 케이크로 아이의 생일상을 멋지게 차려주는 분도 계시고, 같이 수업을 들었던 커플이 몇 달 뒤에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주기도 했어요. 그 작은 순간 순간이 제게 힘이 됐어요."

 

정승연 후원자는 본인과 같이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첫 발을 떼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가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머리로 이해한 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행동하기 힘들다는 의미예요. 생각하고 느꼈다면 겁먹지 말고 시작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정승연 후원자가 컴패션의 캠페인을 알리기 위해 재능기부로 만든 팝시클(위)과 케이크(아래)  [사진 : 정승연 후원자]

 

 

 

◆ 내가 만드는 디저트의 의미를 찾기까지

 

"제가 디저트를 만드는 이유요?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선한 영향력'인 것 같아요."

 

정승연 후원자가 디저트를 만드는 나만의 이유를 찾게 된 데에는 일본 화과자 아티스트 준이치미츠보리(Junichi Mitsubori)의 영향이 컸습니다. 3대째 화과자 아티스트의 길을 걷고 있는 준이치미츠보리는 정교한 화과자 세공법과 춤이 가미된 퍼포먼스로 유명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인 화과자 아티스트의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 분의 작품을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죠." 정승연 후원자는 일본 장인의 작품을 보며 화과자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는 관객들에게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일본의 전통 문화와 불교를 기초로 한 준이치미츠보리의 작품은 디저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그는 화과자와 의상, 춤을 보면서 일본 문화와 종교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어요."

 

정승연 후원자는 그 일을 계기로 ‘의미 있는 디저트’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제가 만든 디저트를 본 사람들이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궁금해하고, 제가 속한 문화와 종교,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등을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단순히 맛있고 예쁜 디저트가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도구로 쓰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지난 해 말에는 전 세계 컴패션 어린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금 모금을 목적으로 온라인 클래스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는 "내가 가진 영향력이 크진 않지만, 내가 가지 사랑이 흘러가 단 한 명에게라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길 바란다"며 "앞으로 더 많은 열매가 맺어 지길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컴패션에서 개최한 '컴패션 버츄얼 런'에 딸(왼쪽에서 두번째)과 함께 참여한 모습 [사진 : 정승연 후원자]

 

 

 

◆ 나의 자녀 양육에 중심을 잡아준 컴패션

 

정승연 후원자가 컴패션에서 어린이 후원을 시작한 것은 그의 첫 아이가 태어난, 지난 2014년부터입니다. "아이의 100일을 맞아 의미 있는 선물을 고민하던 차에 지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어요.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 사진 속 아이를 제가 후원하겠다고 연락했죠."

 

그렇게 만난 첫 후원 어린이가 볼리비아에 사는 윌리암(남, 12세)입니다. 그는 "윌리암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며 "내 딸 백일상은 간소하게 차리는 대신, 도움이 필요한 다른 아이의 손을 잡아서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면, 그게 내 아이에게 더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후원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특히 그는 자녀 양육에 컴패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합니다. "엄마가 되니까 눈 앞의 아이가 소중해서 내 아이만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나라 아이를 양육(후원)하니까 내 아이의 주변과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올 초에는 딸의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인도네시아 리스차(여, 7세)의 후원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컴패션 후원이 나뿐만 아니라 내 아이에게도 세상을 보는 시야를 확장시켜준 것 같다"며 요새는 아이가 자기가 가진 것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마음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고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윌리암과 리스차가 스스로 '왕의 자녀'라는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소공녀'라는 소설에 보면 '내가 넝마를 입고 있어도 나의 내면은 공주야'라는 문구가 나와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어떤 옷을 입고 있든 마음 속으로 내가 왕(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긍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모두 정말 소중한 존재니까요."

 

정승연 후원자가 후원 중인 윌리암(왼쪽)과 리스차의 모습 [사진 : 한국컴패션]

 

 

 

 

 

영상 인터뷰 보러가기 ▼▼▼▼

 

 

ㅣ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며 전 세계 컴패션 어린이와 함께해 주시는 후원자님을 컴패션이 늘 응원합니다.

 

 

 

 

 

꽃처럼 예쁜 디저트 덕분에 제 꿈도 활짝 피어났죠

디저트 아티스트 '블루밍봉봉' 정승연 후원자

 

 

 

 

한 입 디저트에 마음을 담는 사람이 있습니다. 디저트 아티스트 '블루밍봉봉' 정승연 후원자, 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작은 예술 작품에는 타인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정승연 후원자는 디저트를 통해 한동안 잊었던 꿈을 되찾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디저트 아티스트라는 새로운 길을 찾은 정승연 후원자를 컴패션이 만났습니다.

 

 

디저트 아티스트 ‘블루밍봉봉’으로 활동 중인 정승연 후원자 [사진 : 정승연 후원자]

 

 

◆ 출산과 육아휴직, 그리고 다시 찾은 꿈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승승장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누가 봐도 좋은 직장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다른 사람 기준에 맞춰서 열심히 살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정승연 후원자는 대학교 졸업 후 S전자 마케팅 부서와 디자인 부서에서 일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그였지만, '누가 봐도 좋은 회사'라는 타이틀이 그가 회사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됐습니다. 그렇게 10년. 바쁜 일상을 성실히 살다 보니 정작 좋아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러다 맞이한 첫 휴식기가 육아휴직이었습니다.

 

"휴직 기간에 디저트 만들기 수업을 들었는데, 자면서 꿈에 나올 만큼 행복했어요. 그때 불현듯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의 꿈은 바로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휴직 후에도 정승연 후원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한동안 '워킹맘'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를 봐주던 베이비시터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복귀 1년 만에 결국 그는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주위에 말리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고 하잖아요. 디저트를 만드는 게 워낙 즐거워서 육아의 고단함도 잊었던 시절이 기억났어요.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소망하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이 일이라면 10년 후에도 잘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디저트 아티스트'로 전향했습니다."

 

그는 부엌 한 편에 테이블을 놓고 가지고 있던 도구를 활용해 디저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첫 작품은 강낭콩 앙금으로 만든 앙금 플라워 떡 케이크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활짝 핀 꽃처럼 아름답고 달콤한 디저트'라는 뜻을 가진 '블루밍봉봉'이 탄생했습니다. 블루밍봉봉은 꽃이 활짝 핀 모습을 가리키는 영단어 '블루밍(blooming)'과 사탕의 의미를 가진 프랑스어 '봉봉(bonbon)'을 합쳐서 만든 이름입니다.

 

 

 

디저트 클래스에서 수강생들에게 화과자 만드는 방법을 설명 중인 정승연 후원자  [사진 : 정승연 후원자]

 

 

 

 

◆ "그럼에도…마음 가는 일은 한번 시작해 보라"

 

어렵게 되찾은 꿈을 소중히 지켜내고자 시작한 도전이었지만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처음 1년 동안은 심리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가 계속됐습니다.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어디에 가서 회사 이름을 대면 다른 미사여구가 필요 없었어요. 내가 얼마나 노력해 온 사람인지 회사가 증명해 줬거든요. 그런데 퇴사를 하고 보니 저를 설명할 수식어를 못 찾겠더라고요.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고민하며 방황했던 시간이 있어요."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은 꿈을 향한 열망과 그를 믿고 찾아준 수강생들이었습니다. "어렵게 찾은 꿈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가진 꿈이라고 해서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소중히 잘 가꾸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반에 만났던 수강생들은 그가 심은 씨앗이 잘 자랄 수 있게 도와준 자양분이 돼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수강료를 내고 오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주문한 케이크로 아이의 생일상을 멋지게 차려주는 분도 계시고, 같이 수업을 들었던 커플이 몇 달 뒤에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주기도 했어요. 그 작은 순간 순간이 제게 힘이 됐어요."

 

정승연 후원자는 본인과 같이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과감하게 첫 발을 떼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가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머리로 이해한 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행동하기 힘들다는 의미예요. 생각하고 느꼈다면 겁먹지 말고 시작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정승연 후원자가 컴패션의 캠페인을 알리기 위해 재능기부로 만든 팝시클(위)과 케이크(아래)  [사진 : 정승연 후원자]

 

 

 

◆ 내가 만드는 디저트의 의미를 찾기까지

 

"제가 디저트를 만드는 이유요?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선한 영향력'인 것 같아요."

 

정승연 후원자가 디저트를 만드는 나만의 이유를 찾게 된 데에는 일본 화과자 아티스트 준이치미츠보리(Junichi Mitsubori)의 영향이 컸습니다. 3대째 화과자 아티스트의 길을 걷고 있는 준이치미츠보리는 정교한 화과자 세공법과 춤이 가미된 퍼포먼스로 유명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인 화과자 아티스트의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 분의 작품을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죠." 정승연 후원자는 일본 장인의 작품을 보며 화과자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는 관객들에게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일본의 전통 문화와 불교를 기초로 한 준이치미츠보리의 작품은 디저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그는 화과자와 의상, 춤을 보면서 일본 문화와 종교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어요."

 

정승연 후원자는 그 일을 계기로 ‘의미 있는 디저트’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제가 만든 디저트를 본 사람들이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궁금해하고, 제가 속한 문화와 종교,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등을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단순히 맛있고 예쁜 디저트가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도구로 쓰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지난 해 말에는 전 세계 컴패션 어린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금 모금을 목적으로 온라인 클래스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는 "내가 가진 영향력이 크진 않지만, 내가 가진 사랑이 흘러가 단 한 명에게라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길 바란다"며 "앞으로 더 많은 열매가 맺어 지길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컴패션에서 개최한 '컴패션 버츄얼 런'에 딸(왼쪽에서 두번째)과 함께 참여한 모습 [사진 : 정승연 후원자]

 

 

 

◆ 나의 자녀 양육에 중심을 잡아준 컴패션

 

정승연 후원자가 컴패션에서 어린이 후원을 시작한 것은 그의 첫 아이가 태어난, 지난 2014년부터입니다. "아이의 100일을 맞아 의미 있는 선물을 고민하던 차에 지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어요.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 사진 속 아이를 제가 후원하겠다고 연락했죠."

 

그렇게 만난 첫 후원 어린이가 볼리비아에 사는 윌리암(남, 12세)입니다. 그는 "윌리암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며 "내 딸 백일상은 간소하게 차리는 대신, 도움이 필요한 다른 아이의 손을 잡아서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면, 그게 내 아이에게 더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후원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특히 그는 자녀 양육에 컴패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합니다. 엄마가 되니까 눈 앞의 아이가 소중해서 내 아이만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나라 아이를 양육(후원)하니까 내 아이의 주변과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올 초에는 딸의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인도네시아 리스차(여, 7세)의 후원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컴패션 후원이 나뿐만 아니라 내 아이에게도 세상을 보는 시야를 확장시켜준 것 같다"며 "요새는 아이가 자기가 가진 것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마음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고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윌리암과 리스차가 스스로 '왕의 자녀'라는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소공녀'라는 소설에 보면 '내가 넝마를 입고 있어도 나의 내면은 공주야'라는 문구가 나와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어떤 옷을 입고 있든 마음 속으로 내가 왕(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긍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모두 정말 소중한 존재니까요."

 

 

정승연 후원자가 후원 중인 윌리암(왼쪽)과 리스차의 모습 [사진 : 한국컴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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