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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패션현장

[더, 오래] 밀림 빈민촌에서 만난 열세살 소녀의 소원

  • 작성일 2022-03-07

 

 

13세 소녀, 완. 바나나 줄기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집 안 유일하게 책상과 책이 보였다. 완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이라며 후원자의 편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사진 허호]

 

 

 

 

깊은 밀림 속에 지구상에 몇백 명밖에 남지 않은 부족을 컴패션이 돕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시아 밀림 속 신비의 부족을 떠올렸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길이 그렇게 험할 줄 몰랐습니다. 대관령 같은 고개를 세 번은 넘고, 굽이굽이 굽은 도로를 수백 번 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숲 사이로 커튼이 열리듯 어린이센터가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감격에 차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깊은 밀림 속에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옐로우립스(Yellow Leaf) 부족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이 부족은 원래 나무 열매나 수렵을 하며 옮겨 다니는 부족이라고 했습니다. 바나나 잎을 얼기설기 엮어 그 안에 사는데 바나나 잎이 노래지면 다른 곳으로 옮겨 다녀 옐로우립스 부족이라고 불렸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들 스스로는 숲의 사람이라는 의미의 자신들 말인 말라브리(Mlabri)라고 부르는 걸 더 선호한다고 했습니다. 한 곳에 열흘 이상 정착해본 적이 없는 이들이 밀림이 점점 사라져 자신의 삶의 방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정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컴패션이 들어와 아이들이 도움을 받으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정착에 마음을 열고 소통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한 어린이의 집에 가면서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원래 빨래도, 씻는 것의 개념 자체도 없는 부족이어서 어린이센터 등교 시에도 이 아이들만 따로 목욕을 시킨다고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힘들어해서요.

 

 

 

 

여인은 첫 번째 남자의 아이들을 낳고 살다 그가 떠나 버리자 또 다른 남자를 만나고 그도 다시 떠나버린 후 지금의 남편과 살고 있다. 이 많은 아이들을 놓고 홀로 생계를 부양할 수 없는 여인이지만 또 그 굴레에서 벗어 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옐로우립스의 첫 번째 컴패션 등록 학생인 아이의 이름은 ‘완’이었습니다. 여덟 형제자매 중 맏이였습니다. 집에 들어가자, 냄새가 술술 잘 빠져나갈 것 같은 구멍이 숭숭 뚫린 가옥인데도 노숙인 냄새가 우리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엄마 손에서 벗어나기를 싫어하는 어린 아기를 안은 어머니는 지쳐 보였고, 아버지는 인근 일터에서 손님이 온다고 달려와 주었습니다. 그는 이 여인의 세 번째 (정확하지 않습니다) 남편이었습니다. 결혼 제도로 맺어진 가정이 아니어서 남편이라 부르기가 애매하였지만, 남자는 자신이 낳지 않은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들을 전혀 차별 없이 키우고 있었습니다. 잠깐 다녀가는 것이라 그 심정 깊은 데까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에게서 풍기는 전체 분위기는 그러했습니다.

 

사실, 이곳뿐 아니라 많은 빈민가에서 종종 이런 가정을 봅니다. 남녀가 만나 살고 남자는 노동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는데 아이가 한 명, 두 명 아이가 태어나 힘들어진 남자가 나가버리는 겁니다. 남겨진 엄마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져 또 다른 남자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같은 일의 반복입니다. 자녀들은 많아지고 엄마는 점점 힘들어지고. 이 가정도 그런 곳이었습니다. 아무리 여덟 자녀의 표정이 밝아도 지친 엄마의 얼굴에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이건 정말 사회가 책임지고 같이 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정말 고단해 보였다. 그 표정을 담아보려고 했는데 마침 엄마 뒤로 달력 사진에 젊고 화사하게 웃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엄마의 표정이 더욱 부각되었다. 무슨 메타포처럼.

 

 

 

 

보통 컴패션 가정에 가면 아이가 자랑스럽게 꺼내 놓는 물건이 있어 보면 후원자한테 온 편지입니다. 대개 이들의 가옥이 굉장히 허술하기 때문에 홍수라든지 비에 젖는다든지 피해를 보아요. 이런 일들이 빈번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편지를 비닐봉투에 담아 가장 깊숙한 곳에 보관합니다. 아이들이 편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며 후원자 편지를 꺼내 보여주는 완은 성경에 편지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역시 같은 마음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완의 사진을 보면 그 표정이 굉장히 환하고 부각되어 보이면서도 화사합니다. 인공조명 하나 없이 가능했던 사진입니다. 예전에 패션 사진을 찍었을 때, 얼굴을 화사하게 찍으려면 빛을 잘 이용해야 했습니다. 어떤 광원으로부터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거죠. 직접 쏘는 빛은 콘트라스트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전체를 화사한 느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반사판(리플렉터)을 씁니다.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완화해주면서 얼굴 전체를 부드럽고 화사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완이 편지를 꺼내 읽으면서 바로 이 편지지가 반사판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환한 완의 표정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긴 후원자 편지로 더욱 환하고 밝아진 것입니다. 정말 의미심장했습니다.

 

 

 

 

옐로우립 부족의 전통 복장으로 나타난 완의 할아버지.

 

 

 

 

불쑥 우리 앞에 등장한 거의 나신의 완의 할아버지. 몸 전체에 문신이 있었습니다. 비명을 지를 정도로 정말 놀랐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태연히 등장해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이며 천진하게 웃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일부러 우리를 놀라게 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통적인 그들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 다니며 점점 옷을 입는 문화로 바뀌었지만, 할아버지 세대만 해도 그 모습이 보통이었을 테지요.

 

40~50가구 규모의 250명 정도 주민이 사는 곳으로 정착을 시작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부락이었습니다. 인위적인 느낌이 강해서, 수용소 같은 느낌. 자국에서 쫓겨나 난민촌을 형성한 곳도 가봤지만 그곳보다 더 엉성해 보였습니다.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소수민족으로 도움받기가 쉽지 않은 이들, 나중에 언론 기사를 찾아봤을 때는 정착촌에 자살률도 높다고 들었습니다. 밀림에서도 문명에도 적응하기 힘들었을 이들의 속사정에 우리는 숙연해졌습니다.

 

완에게 바라는 것을 물었습니다.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는 거요. 그리고 교육을 잘 받고 가족을 돌볼 수 있기를 바라요. 사실 얼마 전에 기도했어요. 우리를 격려해줄 분들을 보내 달라고요.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완은 우리에게 감사를 전하며 행복하다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원문 바로보(클릭)

 

[출처 : 중앙일보 더, 오래] "밀림 빈민촌에서 만난 열세살 소녀의 소원"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됐습니다.

 

 

 

 

 

 

 

 

 

 

 

 

 

 

13세 소녀, 완. 바나나 줄기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집 안 유일하게 책상과 책이 보였다. 완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이라며 후원자의 편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사진 허호]

 

 

 

 

깊은 밀림 속에 지구상에 몇백 명밖에 남지 않은 부족을 컴패션이 돕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시아 밀림 속 신비의 부족을 떠올렸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길이 그렇게 험할 줄 몰랐습니다. 대관령 같은 고개를 세 번은 넘고, 굽이굽이 굽은 도로를 수백 번 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숲 사이로 커튼이 열리듯 어린이센터가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감격에 차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깊은 밀림 속에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옐로우립스(Yellow Leaf) 부족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이 부족은 원래 나무 열매나 수렵을 하며 옮겨 다니는 부족이라고 했습니다. 바나나 잎을 얼기설기 엮어 그 안에 사는데 바나나 잎이 노래지면 다른 곳으로 옮겨 다녀 옐로우립스 부족이라고 불렸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들 스스로는 숲의 사람이라는 의미의 자신들 말인 말라브리(Mlabri)라고 부르는 걸 더 선호한다고 했습니다. 한 곳에 열흘 이상 정착해본 적이 없는 이들이 밀림이 점점 사라져 자신의 삶의 방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정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다 컴패션이 들어와 아이들이 도움을 받으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정착에 마음을 열고 소통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한 어린이의 집에 가면서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원래 빨래도, 씻는 것의 개념 자체도 없는 부족이어서 어린이센터 등교 시에도 이 아이들만 따로 목욕을 시킨다고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힘들어해서요.

 

 

 

 

여인은 첫 번째 남자의 아이들을 낳고 살다 그가 떠나 버리자 또 다른 남자를 만나고 그도 다시 떠나버린 후 지금의 남편과 살고 있다. 이 많은 아이들을 놓고 홀로 생계를 부양할 수 없는 여인이지만 또 그 굴레에서 벗어 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옐로우립스의 첫 번째 컴패션 등록 학생인 아이의 이름은 ‘완’이었습니다. 여덟 형제자매 중 맏이였습니다. 집에 들어가자, 냄새가 술술 잘 빠져나갈 것 같은 구멍이 숭숭 뚫린 가옥인데도 노숙인 냄새가 우리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엄마 손에서 벗어나기를 싫어하는 어린 아기를 안은 어머니는 지쳐 보였고, 아버지는 인근 일터에서 손님이 온다고 달려와 주었습니다. 그는 이 여인의 세 번째 (정확하지 않습니다) 남편이었습니다. 결혼 제도로 맺어진 가정이 아니어서 남편이라 부르기가 애매하였지만, 남자는 자신이 낳지 않은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들을 전혀 차별 없이 키우고 있었습니다. 잠깐 다녀가는 것이라 그 심정 깊은 데까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에게서 풍기는 전체 분위기는 그러했습니다.

 

사실, 이곳뿐 아니라 많은 빈민가에서 종종 이런 가정을 봅니다. 남녀가 만나 살고 남자는 노동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는데 아이가 한 명, 두 명 아이가 태어나 힘들어진 남자가 나가버리는 겁니다. 남겨진 엄마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져 또 다른 남자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같은 일의 반복입니다. 자녀들은 많아지고 엄마는 점점 힘들어지고. 이 가정도 그런 곳이었습니다. 아무리 여덟 자녀의 표정이 밝아도 지친 엄마의 얼굴에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이건 정말 사회가 책임지고 같이 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정말 고단해 보였다. 그 표정을 담아보려고 했는데 마침 엄마 뒤로 달력 사진에 젊고 화사하게 웃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엄마의 표정이 더욱 부각되었다. 무슨 메타포처럼.

 

 

 

 

보통 컴패션 가정에 가면 아이가 자랑스럽게 꺼내 놓는 물건이 있어 보면 후원자한테 온 편지입니다. 대개 이들의 가옥이 굉장히 허술하기 때문에 홍수라든지 비에 젖는다든지 피해를 보아요. 이런 일들이 빈번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편지를 비닐봉투에 담아 가장 깊숙한 곳에 보관합니다. 아이들이 편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며 후원자 편지를 꺼내 보여주는 완은 성경에 편지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역시 같은 마음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완의 사진을 보면 그 표정이 굉장히 환하고 부각되어 보이면서도 화사합니다. 인공조명 하나 없이 가능했던 사진입니다. 예전에 패션 사진을 찍었을 때, 얼굴을 화사하게 찍으려면 빛을 잘 이용해야 했습니다. 어떤 광원으로부터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거죠. 직접 쏘는 빛은 콘트라스트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전체를 화사한 느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반사판(리플렉터)을 씁니다.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완화해주면서 얼굴 전체를 부드럽고 화사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완이 편지를 꺼내 읽으면서 바로 이 편지지가 반사판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환한 완의 표정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긴 후원자 편지로 더욱 환하고 밝아진 것입니다. 정말 의미심장했습니다.

 

 

 

 

옐로우립 부족의 전통 복장으로 나타난 완의 할아버지.

 

 

 

 

불쑥 우리 앞에 등장한 거의 나신의 완의 할아버지. 몸 전체에 문신이 있었습니다. 비명을 지를 정도로 정말 놀랐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태연히 등장해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이며 천진하게 웃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일부러 우리를 놀라게 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통적인 그들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 다니며 점점 옷을 입는 문화로 바뀌었지만, 할아버지 세대만 해도 그 모습이 보통이었을 테지요.

 

40~50가구 규모의 250명 정도 주민이 사는 곳으로 정착을 시작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부락이었습니다. 인위적인 느낌이 강해서, 수용소 같은 느낌. 자국에서 쫓겨나 난민촌을 형성한 곳도 가봤지만 그곳보다 더 엉성해 보였습니다.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소수민족으로 도움받기가 쉽지 않은 이들, 나중에 언론 기사를 찾아봤을 때는 정착촌에 자살률도 높다고 들었습니다. 밀림에서도 문명에도 적응하기 힘들었을 이들의 속사정에 우리는 숙연해졌습니다.

 

완에게 바라는 것을 물었습니다.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는 거요. 그리고 교육을 잘 받고 가족을 돌볼 수 있기를 바라요. 사실 얼마 전에 기도했어요. 우리를 격려해줄 분들을 보내 달라고요.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완은 우리에게 감사를 전하며 행복하다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원문 바로보(클릭)

 

[출처 : 중앙일보 더, 오래] "밀림 빈민촌에서 만난 열세살 소녀의 소원"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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