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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패션현장

[더, 오래] 물에 잠겨도 괜찮아요, 누추함도 이겨낸 아이들

  • 작성일 2022-04-11

 

   

 

필리핀 마닐라의 거대한 따알 호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도 위태로워 보였는데 그 집도 우리 목적지가 아니었다. 여섯 살 에밀리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대신한 스티로폼을 타고 수상가옥 중 한 곳을 찾아가야 했다. 가만 앉아 있다 보니, 바람이 솔솔 부는 것이 컴패션 아이들 집 중엔 쾌적했다. [사진 허호]

 

  

 

 

몇 년 전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따알 호수에 갔을 때입니다. 굉장히 큰 규모의 호수여서 우리는 강이나 바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연적으로 생긴 호수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전,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내 이멜다가 인근에 별장을 지었는데 무엇을 잘못 건드렸는지 멀쩡했던 육지의 동네가 물에 잠겼다고 합니다.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떠났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냥 남았다고 했습니다. 못 떠난 사람들도 있었던 걸 보면, 애초에 어려운 형편의 동네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곳으로 그와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이 모여들어와 살게 되었겠지요.

 

 

한 여인이 침대 크기만하고 두툼한 스티로품을 배처럼 타고 노 저어 왔습니다.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능숙하게 장대를 저어 온 그는 우리에게 스티로폼 위에 타라고 했습니다. 의자까지 갖춘 제대로 된 배(?)였습니다. 그가 우리를 어느 한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이 에밀리의 집이었습니다. ‘엄마는 어디 있니’라고 묻자 아이들이 우리를 태우고 온 여성을 가리킵니다. 그가 바로 엄마였습니다. 남편 없이 할머니와 함께 세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학교에 갈 때면 아이들을 태우고 나간다고 했습니다. 낮 동안 엄마가 돈을 벌러 나가면 아이들은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찾아간 그날도 할머니가 마침 밥을 구하러 나갔다가 늦어져 오후 세 시가 다 되었는데도 밥을 못 먹고 있었습니다.

 

 

 

 

날이 더울까 싶어 우산을 들고 간 한국 후원자가 새카맣게 그을린 여인을 보며 우산을 씌워주었다. 마을에 온 외지 손님을 환영한다는 것처럼, 이웃집 아줌마를 거들어 주려는 것처럼, 호수에서 놀던 아이들이 물장구치고 달려와 같이 스티로폼 배를 밀어주었다. 덕분에, 마음이 조금 시원해졌다.

 

 

 

 

가는 길이 조마조마했고, 흔들리는 나무 바닥은 구멍이 뚫려 시커먼 호수가 그대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만 앉아 있다 보니 보통 컴패션 아이들 가정을 방문할 때보다 쾌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냄새가 없었어요. 하수구가 없었으니까요. 아이들은 그래도 쾌적하게 살겠구나 싶었습니다. 에밀리의 엄마는 마을 심부름도 하고 집에서는 실을 잣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여섯 살 에밀리도 조막손으로 거든다고 덤벼들었습니다. 진득한 언니와 달리 에밀리는 금방 일어서곤 했는데, 휘청휘청하는 나무 바닥 위를 잘도 뛰어다녔습니다.

 

 

 

 

또다른 수상가옥. 집 전체가 어른 발목 높이까지 물에 잠겨 있었다. 슬리퍼나 맨발로 물을 헤쳐 가며 일상생활을 했다. 지붕에도 여러 군데 큼지막하게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침대 쪽 지붕은 구멍이 없어 비가 오면 온 식구가 침대로 피할 수도 있다고. 이런 집도 월세를 냈다.

 

 

 

 

스티로폼 배를 타고 다른 집을 방문했습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또 다른 컴패션 아이의 집이었습니다. 거의 벽만 남아 있었는데 집 전체가 발목 근처 높이까지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육지였을 때부터 집이었던 곳이었는데 갈 곳이 없어 그대로 주저 앉은 가족이었습니다. 어떻게 살 수 있는지 물어보니까 발은 물에 잠겨도 침대는 물에 안 잠겨 있으니까 괜찮다고 했습니다. 지붕도 곳곳이 숭숭 뚫려 있어 비가 오면 어떡하느냐 물었더니 마침 침대 위 지붕은 구멍이 안 뚫려 있어서 침대 위로 다 올라가 있는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선하고 해맑은 표정에 갑갑한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그저 구김살 없이 크는 아이들이 진심으로 귀해 보였습니다.

 

 

이 동네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센터에 갔더니 창고에 작은 배가 보였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선생님들이 보트를 타고 아이들을 구조하러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한테는 평소 호루라기를 지급해서 서로 조난신호를 하게끔 훈련을 시켰고요.

 

 

 

 

수상가옥이 있는 동네들을 보면 뚝방을 따라 우리나라 낚시 좌대처럼 뜨문뜨문 작은 움막 같은 것들이 물 위에 줄지어 떠 있다. 물어보았더니 화장실이었다. 오물이 물에 버려지는 바로 곁에서 아이들이 수영하며 놀고 있었다.

 

 

 

 

다른 나라들도 그렇지만 대체로 수상가옥 사진들은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센터에서 만난 컴패션 어린이들은 정말 해맑고 그늘이 안 보입니다. 그런데 가정방문을 해보면, 그 삶은 고단하고 누추하고 궁핍합니다. 그런 모습 자체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오히려 전달되지 않고 자극적인 면만 강조될 수 있습니다.

 

 

제 사진들을 본 어느 분이 ‘사진 속 내용은 누추하고 삶의 고단함을 담고 있는데 시각적으론 아름답고 서정적’이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사진적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먼저 시각적으로 눈길을 붙잡을 수 있어야 메시지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 안에 고단함이 있고 고단함 속에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희극 속에 비극이 있고 비극 속에 희극이 있는 것처럼요. 이걸 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환경이 주는 자극적인 무엇인가를 먼저 보고 삶은 지나쳐 버리는 것이 아닌, 그 아이나 그 아이의 가족의 삶을 담아내고 싶은 저의 바람입니다.

   

   

   

 

      

    

  

 

원문 바로보(클릭)

 

[출처 : 중앙일보 더, 오래] "물에 잠겨도 괜ㅊ낳아요, 누추함도 이겨낸 아이들"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됐습니다.

 

 

 

 

 

 

 

 

 

 

 

 

   

 

필리핀 마닐라의 거대한 따알 호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도 위태로워 보였는데 그 집도 우리 목적지가 아니었다. 여섯 살 에밀리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대신한 스티로폼을 타고 수상가옥 중 한 곳을 찾아가야 했다. 가만 앉아 있다 보니, 바람이 솔솔 부는 것이 컴패션 아이들 집 중엔 쾌적했다. [사진 허호]

 

  

 

 

몇 년 전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따알 호수에 갔을 때입니다. 굉장히 큰 규모의 호수여서 우리는 강이나 바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연적으로 생긴 호수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전,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내 이멜다가 인근에 별장을 지었는데 무엇을 잘못 건드렸는지 멀쩡했던 육지의 동네가 물에 잠겼다고 합니다.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떠났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냥 남았다고 했습니다. 못 떠난 사람들도 있었던 걸 보면, 애초에 어려운 형편의 동네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곳으로 그와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이 모여들어와 살게 되었겠지요.

 

 

한 여인이 침대 크기만하고 두툼한 스티로품을 배처럼 타고 노 저어 왔습니다.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능숙하게 장대를 저어 온 그는 우리에게 스티로폼 위에 타라고 했습니다. 의자까지 갖춘 제대로 된 배(?)였습니다. 그가 우리를 어느 한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이 에밀리의 집이었습니다. ‘엄마는 어디 있니’라고 묻자 아이들이 우리를 태우고 온 여성을 가리킵니다. 그가 바로 엄마였습니다. 남편 없이 할머니와 함께 세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학교에 갈 때면 아이들을 태우고 나간다고 했습니다. 낮 동안 엄마가 돈을 벌러 나가면 아이들은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찾아간 그날도 할머니가 마침 밥을 구하러 나갔다가 늦어져 오후 세 시가 다 되었는데도 밥을 못 먹고 있었습니다.

 

 

 

 

날이 더울까 싶어 우산을 들고 간 한국 후원자가 새카맣게 그을린 여인을 보며 우산을 씌워주었다. 마을에 온 외지 손님을 환영한다는 것처럼, 이웃집 아줌마를 거들어 주려는 것처럼, 호수에서 놀던 아이들이 물장구치고 달려와 같이 스티로폼 배를 밀어주었다. 덕분에, 마음이 조금 시원해졌다.

 

 

 

 

가는 길이 조마조마했고, 흔들리는 나무 바닥은 구멍이 뚫려 시커먼 호수가 그대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만 앉아 있다 보니 보통 컴패션 아이들 가정을 방문할 때보다 쾌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냄새가 없었어요. 하수구가 없었으니까요. 아이들은 그래도 쾌적하게 살겠구나 싶었습니다. 에밀리의 엄마는 마을 심부름도 하고 집에서는 실을 잣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여섯 살 에밀리도 조막손으로 거든다고 덤벼들었습니다. 진득한 언니와 달리 에밀리는 금방 일어서곤 했는데, 휘청휘청하는 나무 바닥 위를 잘도 뛰어다녔습니다.

 

 

 

 

또다른 수상가옥. 집 전체가 어른 발목 높이까지 물에 잠겨 있었다. 슬리퍼나 맨발로 물을 헤쳐 가며 일상생활을 했다. 지붕에도 여러 군데 큼지막하게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침대 쪽 지붕은 구멍이 없어 비가 오면 온 식구가 침대로 피할 수도 있다고. 이런 집도 월세를 냈다.

 

 

 

 

스티로폼 배를 타고 다른 집을 방문했습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또 다른 컴패션 아이의 집이었습니다. 거의 벽만 남아 있었는데 집 전체가 발목 근처 높이까지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육지였을 때부터 집이었던 곳이었는데 갈 곳이 없어 그대로 주저 앉은 가족이었습니다. 어떻게 살 수 있는지 물어보니까 발은 물에 잠겨도 침대는 물에 안 잠겨 있으니까 괜찮다고 했습니다. 지붕도 곳곳이 숭숭 뚫려 있어 비가 오면 어떡하느냐 물었더니 마침 침대 위 지붕은 구멍이 안 뚫려 있어서 침대 위로 다 올라가 있는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선하고 해맑은 표정에 갑갑한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그저 구김살 없이 크는 아이들이 진심으로 귀해 보였습니다.

 

 

이 동네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센터에 갔더니 창고에 작은 배가 보였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선생님들이 보트를 타고 아이들을 구조하러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한테는 평소 호루라기를 지급해서 서로 조난신호를 하게끔 훈련을 시켰고요.

 

 

 

 

수상가옥이 있는 동네들을 보면 뚝방을 따라 우리나라 낚시 좌대처럼 뜨문뜨문 작은 움막 같은 것들이 물 위에 줄지어 떠 있다. 물어보았더니 화장실이었다. 오물이 물에 버려지는 바로 곁에서 아이들이 수영하며 놀고 있었다.

 

 

 

 

다른 나라들도 그렇지만 대체로 수상가옥 사진들은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센터에서 만난 컴패션 어린이들은 정말 해맑고 그늘이 안 보입니다. 그런데 가정방문을 해보면, 그 삶은 고단하고 누추하고 궁핍합니다. 그런 모습 자체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오히려 전달되지 않고 자극적인 면만 강조될 수 있습니다.

 

 

제 사진들을 본 어느 분이 ‘사진 속 내용은 누추하고 삶의 고단함을 담고 있는데 시각적으론 아름답고 서정적’이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사진적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먼저 시각적으로 눈길을 붙잡을 수 있어야 메시지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 안에 고단함이 있고 고단함 속에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희극 속에 비극이 있고 비극 속에 희극이 있는 것처럼요. 이걸 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환경이 주는 자극적인 무엇인가를 먼저 보고 삶은 지나쳐 버리는 것이 아닌, 그 아이나 그 아이의 가족의 삶을 담아내고 싶은 저의 바람입니다.

   

   

   

 

      

    

  

 

원문 바로보(클릭)

 

[출처 : 중앙일보 더, 오래] "물에 잠겨도 괜ㅊ낳아요, 누추함도 이겨낸 아이들"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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