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스토리

듣지 못하는 제게, 희망이 말을 걸었습니다

  • 국가 과테말라
  • 작성일 2015-12-30




누군가 아픔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급적 이를 꽁꽁 감추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픔을 드러내 자신과 닮은 작고 연약한 어린이를 품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아픔을 가진 나라면 그 마음을 이해해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이었습니다. 후원어린이에게 쉽게 내가 아픔을 알고 있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어조로 편지에 자신의 처지를 알렸습니다. 얼마 후, 편지를 받은 과테말라에 사는 12살 후원어린이, 마리엘라(Mariela Alejandra Quib Luc)에게서 소식이 왔습니다.

제가 매일 경험하는 모든 고통을 후원자님 또한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처음에는 너무 슬펐어요.
하지만 그때 생각했죠,
이제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되었네!’”

한국에 계신 전용출 후원자님을 향한 마리엘라의 예쁘고 착한 마음, 들어보시겠어요?


배고픔과 두려움에 잠 못 들었던 날들

저는 아빠(알퐁소, Alfonso) 엄마(막달레나, Magdalena) 그리고 네 명의 삼촌, 오빠와 좁은 집에 북적대며 살고 있습니다. 일용직으로 버스 도우미 일을 하는 아빠는 하루에 7천 원, 엄마는 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하루에 2천 원 정도 벌어요. 두 분 다 힘들게 일하시지만 저희는 자주 밥을 굶어요. 그래도 분은, 학교를 못 다녀 글을 모르는데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씀하시곤 해요. 저도 불평할 수 없어요. 저희 동네는 집집마다 굶는 게 보통이거든요.


저희가 사는 알타 베라파스(Alta Verapaz) 지역에서는 총 소리가 종종 들려요. 골목마다 마약거래 하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저희를 쳐다보기도 하죠. 엄마아빠는 저희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늘 노심초사하셔요. 하지만 저는 두 분 때문에 마음을 졸여요. 위험한 건 어른인 엄마아빠도 마찬가지잖아요. 밤늦게 들어오시는 두 분의 발자국 소리에 비로소 마음을 놓고 잠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랍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진 소녀

배고픔보다 더 괴로운 게 있는데 외로움이었어요. 식구가 많은데 웬 외로움이냐고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귀에 청각장애가 있어요. 겉으로 봐도 다른 귀와 다르게 생겨서 장애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그런데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장애는 굉장히 차별 받고 멸시 받을 이유였어요. 사람들은 어린 저에게 청각장애는 하늘이 준 벌이라고 욕을 했어요. 그런 말을 들은 날이면 밤잠을 설치며 울곤 했죠.
엄마는 못된 말에 신경 쓰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한 번은 참지 못하고 울면서 집에 갔다가 엄마한테 들킨 적이 있었어요. 어떤 남자애가 저만 놀리는 게 아니라 오빠까지 놀렸거든요.

오빠는 허리가 기형인 채로 태어나 걷지 못하지만 저의 가장 친한 친구예요. 세상에서 제일 멋진 미소를 가진 오빠를 그 남자애는 흙바닥을 기어 다니는 괴짜라고 놀렸어요. 울면서 들어온 저를 보던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무 말도 못하시고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은 얼굴로 저를 바라보셨어요. 그 뒤로 저는 숙제를 하거나 설거지, 줄넘기를 하며 눈물을 삼키는 법을 배웠어요.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외로움을 제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공짜로 밥을 주는 이상한 곳에 대한 이야기

제가 7살 때, 아빠가 직장 상사에게 들었다며 이상한 곳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공짜로 밥을 주고 학교에도 보내 준다는 이야기였어요. 엄마 아빠는 딸에게 따뜻한 밥을 배불리 먹여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부모님은 제 손을 꼭 잡고 컴패션어린이센터에 데려 가셨어요.


사실 컴패션에 간 첫날은 별로 기억이 안 나요. 그런데 밥 먹은 건 잊을 수가 없어요! 저는 점심도 먹고, 간식도 먹었어요! 무려 두 번이나 먹을 수 있어서 꿈이야 생시야 했다니까요! 그날 이후 계속해서 컴패션에 다니면서 저는 다른 것들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아무도 저를 놀리지 않았어요. 차별하지도, 욕하지도 않았어요. 먼저 말을 걸어주고 웃어주고 심지어 친구도 되어주었어요. 한두 명이 아니라 많은 친구가 생겼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더 행복한 소식을 들었어요. 후원자님이 생기고 후원자님께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거예요!


후원자님의 그 편지

컴패션 친구들은 보통 일 년에 한두 번씩 편지를 받아요. 더 많이 받는 친구들도 있지만 보통 그랬어요. 그런데 제 후원자님은 2, 3개월에 번씩 편지를 써 주셨어요. 제가 특별한 아이가 된 것 같았고, 머나먼 한국에 계신 후원자님이 바로 우리 옆 동네에 계신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얼마 후, ‘그 편지가 도착했어요. 편지에 후원자님은 다섯 살 때부터 홍역을 앓아 말을 수도, 들을 수도 없다고 쓰셨어요. 그리고 구두를 닦아 저를 후원하고 계시고 매우 기쁘다고 하셨어요. 덜컹 가슴이 내려 앉으며 막 눈물이 났어요. 제가 매일 경험하는 모든 아픔을 후원자님 또한 겪고 계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슬펐어요. 하지만 그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제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되었네!’
제가 정말 좋아하는 후원자님, 그 후원자님과 제가 닮은 거예요! 눈물이 그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왔어요. 나를 이해하신다는 후원자님의 말을 가슴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그날, 저의 외로움은 완전히 사라졌어요.




후원자님께 닭요리를!

요즘 저와 엄마에게 소원이 하나 생겼어요. 바로 후원자님과 같이 밥을 먹는 거예요. 엄마가 후원자님께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우리 마야 문화에서는 누군가를 집으로 식사 초대하는 것은 아주 의미를 가진답니다. 닭고기 수프와 옥수수 또띠야를 같이 먹는다는 것은 그분을 우리 마음 안으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에요. 앞에 후원자님이 계시다면, 마리엘라를 향한 후원자님의 마음에 깊이 감사 드리며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닭을 요리해 드렸을 거예요.”


후원자님은 편지에 언제나 저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시고, 특히 힘이 되는 성경구절을 보내주세요. 후원자님이 이렇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궁금해졌고 저도 하나님을 찾게 되었어요. 엄마 아빠에게 하나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성경을 읽고 싶어졌고 덕분에 다른 친구들보다 글도 빨리 배웠어요. 그리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답니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가 반대하셨어요. 교회에 가려면 술 마시는 아저씨들이 모인 거리를 지나야 때문이에요. 하지만 저는 무섭지가 않았어요. 제 걸음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느껴졌거든요. 그런 저를 지켜보시던 엄마 아빠, 삼촌들은 지금 저와 같이 하나님을 믿고 있어요.


후원자님의 커다란 목소리


후원자님은 편지에서 저를 똑똑하다고 칭찬해주시고 위대한 일들을 있다고 말해주세요. 어느 날은 저를 믿는다고 하시며, “나는 너의 모든 꿈이 이루어지기를 항상 기도한단다.”라고 써 주셨어요. 이 편지를 받았을 때, 제 안에 불쑥 한 가지 꿈이 떠올랐어요. 글을 읽고 모르는 거리의 모든 어린이들을 돕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입니다!



저는 거리의 무시무시한 풍경을 보며 꿈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거든요. 그 생각이 오랫동안 제게 말했고 저는 그 말을 믿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후원자님의 너는 꿈을 이룰 수 있어.”
라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와요. 후원자님의 이 믿음이 저를 변화시켰어요.
후원자님은 컴패션같은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제 아픔을 아시고 제게 진짜 가족이 되어주신 후원자님의 믿음으로, 저도 후원자님과 같이 다른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하고 깊이 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군가 아픔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급적 이를 꽁꽁 감추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픔을 드러내 자신과 닮은 작고 연약한 어린이를 품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아픔을 가진 나라면 그 마음을 이해해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이었습니다. 후원어린이에게 쉽게 내가 아픔을 알고 있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어조로 편지에 자신의 처지를 알렸습니다. 얼마 후, 편지를 받은 과테말라에 사는 12살 후원어린이, 마리엘라(Mariela Alejandra Quib Luc)에게서 소식이 왔습니다.

제가 매일 경험하는 모든 고통을 후원자님 또한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처음에는 너무 슬펐어요.
하지만 그때 생각했죠,
이제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되었네!’”

한국에 계신 전용출 후원자님을 향한 마리엘라의 예쁘고 착한 마음, 들어보시겠어요?


배고픔과 두려움에 잠 못 들었던 날들

저는 아빠(알퐁소, Alfonso) 엄마(막달레나, Magdalena) 그리고 네 명의 삼촌, 오빠와 좁은 집에 북적대며 살고 있습니다. 일용직으로 버스 도우미 일을 하는 아빠는 하루에 7천 원, 엄마는 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하루에 2천 원 정도 벌어요. 두 분 다 힘들게 일하시지만 저희는 자주 밥을 굶어요. 그래도 분은, 학교를 못 다녀 글을 모르는데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씀하시곤 해요. 저도 불평할 수 없어요. 저희 동네는 집집마다 굶는 게 보통이거든요.


저희가 사는 알타 베라파스(Alta Verapaz) 지역에서는 총 소리가 종종 들려요. 골목마다 마약거래 하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저희를 쳐다보기도 하죠. 엄마아빠는 저희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늘 노심초사하셔요. 하지만 저는 두 분 때문에 마음을 졸여요. 위험한 건 어른인 엄마아빠도 마찬가지잖아요. 밤늦게 들어오시는 두 분의 발자국 소리에 비로소 마음을 놓고 잠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랍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진 소녀

배고픔보다 더 괴로운 게 있는데 외로움이었어요. 식구가 많은데 웬 외로움이냐고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귀에 청각장애가 있어요. 겉으로 봐도 다른 귀와 다르게 생겨서 장애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그런데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장애는 굉장히 차별 받고 멸시 받을 이유였어요. 사람들은 어린 저에게 청각장애는 하늘이 준 벌이라고 욕을 했어요. 그런 말을 들은 날이면 밤잠을 설치며 울곤 했죠.
엄마는 못된 말에 신경 쓰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한 번은 참지 못하고 울면서 집에 갔다가 엄마한테 들킨 적이 있었어요. 어떤 남자애가 저만 놀리는 게 아니라 오빠까지 놀렸거든요.

오빠는 허리가 기형인 채로 태어나 걷지 못하지만 저의 가장 친한 친구예요. 세상에서 제일 멋진 미소를 가진 오빠를 그 남자애는 흙바닥을 기어 다니는 괴짜라고 놀렸어요. 울면서 들어온 저를 보던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무 말도 못하시고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은 얼굴로 저를 바라보셨어요. 그 뒤로 저는 숙제를 하거나 설거지, 줄넘기를 하며 눈물을 삼키는 법을 배웠어요.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외로움을 제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공짜로 밥을 주는 이상한 곳에 대한 이야기

제가 7살 때, 아빠가 직장 상사에게 들었다며 이상한 곳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공짜로 밥을 주고 학교에도 보내 준다는 이야기였어요. 엄마 아빠는 딸에게 따뜻한 밥을 배불리 먹여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부모님은 제 손을 꼭 잡고 컴패션어린이센터에 데려 가셨어요.


사실 컴패션에 간 첫날은 별로 기억이 안 나요. 그런데 밥 먹은 건 잊을 수가 없어요! 저는 점심도 먹고, 간식도 먹었어요! 무려 두 번이나 먹을 수 있어서 꿈이야 생시야 했다니까요! 그날 이후 계속해서 컴패션에 다니면서 저는 다른 것들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아무도 저를 놀리지 않았어요. 차별하지도, 욕하지도 않았어요. 먼저 말을 걸어주고 웃어주고 심지어 친구도 되어주었어요. 한두 명이 아니라 많은 친구가 생겼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그런데 더 행복한 소식을 들었어요. 후원자님이 생기고 후원자님께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거예요!


후원자님의 그 편지

컴패션 친구들은 보통 일 년에 한두 번씩 편지를 받아요. 더 많이 받는 친구들도 있지만 보통 그랬어요. 그런데 제 후원자님은 2, 3개월에 번씩 편지를 써 주셨어요. 제가 특별한 아이가 된 것 같았고, 머나먼 한국에 계신 후원자님이 바로 우리 옆 동네에 계신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얼마 후, ‘그 편지가 도착했어요. 편지에 후원자님은 다섯 살 때부터 홍역을 앓아 말을 수도, 들을 수도 없다고 쓰셨어요. 그리고 구두를 닦아 저를 후원하고 계시고 매우 기쁘다고 하셨어요. 덜컹 가슴이 내려 앉으며 막 눈물이 났어요. 제가 매일 경험하는 모든 아픔을 후원자님 또한 겪고 계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슬펐어요. 하지만 그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제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되었네!’
제가 정말 좋아하는 후원자님, 그 후원자님과 제가 닮은 거예요! 눈물이 그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왔어요. 나를 이해하신다는 후원자님의 말을 가슴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그날, 저의 외로움은 완전히 사라졌어요.




후원자님께 닭요리를!

요즘 저와 엄마에게 소원이 하나 생겼어요. 바로 후원자님과 같이 밥을 먹는 거예요. 엄마가 후원자님께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우리 마야 문화에서는 누군가를 집으로 식사 초대하는 것은 아주 의미를 가진답니다. 닭고기 수프와 옥수수 또띠야를 같이 먹는다는 것은 그분을 우리 마음 안으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에요. 앞에 후원자님이 계시다면, 마리엘라를 향한 후원자님의 마음에 깊이 감사 드리며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닭을 요리해 드렸을 거예요.”


후원자님은 편지에 언제나 저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시고, 특히 힘이 되는 성경구절을 보내주세요. 후원자님이 이렇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궁금해졌고 저도 하나님을 찾게 되었어요. 엄마 아빠에게 하나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성경을 읽고 싶어졌고 덕분에 다른 친구들보다 글도 빨리 배웠어요. 그리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답니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가 반대하셨어요. 교회에 가려면 술 마시는 아저씨들이 모인 거리를 지나야 때문이에요. 하지만 저는 무섭지가 않았어요. 제 걸음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느껴졌거든요. 그런 저를 지켜보시던 엄마 아빠, 삼촌들은 지금 저와 같이 하나님을 믿고 있어요.


후원자님의 커다란 목소리


후원자님은 편지에서 저를 똑똑하다고 칭찬해주시고 위대한 일들을 있다고 말해주세요. 어느 날은 저를 믿는다고 하시며, “나는 너의 모든 꿈이 이루어지기를 항상 기도한단다.”라고 써 주셨어요. 이 편지를 받았을 때, 제 안에 불쑥 한 가지 꿈이 떠올랐어요. 글을 읽고 모르는 거리의 모든 어린이들을 돕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입니다!



저는 거리의 무시무시한 풍경을 보며 꿈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거든요. 그 생각이 오랫동안 제게 말했고 저는 그 말을 믿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후원자님의 너는 꿈을 이룰 수 있어.”
라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와요. 후원자님의 이 믿음이 저를 변화시켰어요.
후원자님은 컴패션같은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제 아픔을 아시고 제게 진짜 가족이 되어주신 후원자님의 믿음으로, 저도 후원자님과 같이 다른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하고 깊이 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댓글
0 / 300자
  • hahne65
    2017-05-14 07:25:09

    제가 후원을 시작하기 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유튜브에서 전용철 부부께서 과테말라로 가셔서 마리엘라 만나는 동영상 등을 보고 난 후였습니다. 헤어지던 날 마리엘라가 전용철님에게 앉겨서 눈물을 보이는 모습에 저도 눈물을 흘렸고 그토록 강팍하던 마음이 깨어지더군요. 마리엘라는 분명히 휼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원하고 믿고 있습니다. 눈및에는 총명함이 그리고 얼굴에는 선함이 그대로 보입니다.

  • jin672
    2016-02-02 14:33:31

    마리엘라도 전용출 후원자님도 모두 건강하게 늘 주님안에서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너무 아름다우신 두 분을 축복합니다!!

  • kwanwoonim
    2016-01-22 00:59:58

    너무 부족하고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드리지 못한 저가 너무나도 부끄러워집니다.. 천사같은 마음을 가지신 두 분 모두 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

  • krkr2345
    2016-01-21 19:41:29

    두분 웃는 얼굴이 닮았어요 !!

  • krkr2345
    2016-01-21 19:41:29

    두분 웃는 얼굴이 닮았어요 !!

  • sebin0426
    2016-01-04 08:45:33

    너무 멋있고 저도 꼭 전용출후원자님처럼 착한 마음을 가지고싶네요^^ 멋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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