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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컴패션, 잿더미에서 마을을 일으키다 우간다 2018.09.05 317

▲ 컴패션 어린이센터를 운영 중인 우간다 빅토리아웃리치 교회(Victory Outreach Church)의 아폴로 아콜(Apollo Achol) 목사


340번,
컴패션 어린이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예배드린 횟수입니다.

2003년 한국이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후,
지난 15년 동안 컴패션과 한국교회가 함께 쌓아온 역사입니다.

현재 한국교회를 통해 양육 받는 전 세계 어린이는 44,241명
한국교회가 쏟아주신 사랑의 힘으로
현지 어린이센터도 사랑과 헌신으로 어린이들을 양육합니다.

교회는 컴패션의 소중한 파트너입니다. 컴패션은 현지의 건강한 교회와 파트너십을 맺고 어린이센터를 세울 수 있도록 하며 전문적인 양육 커리큘럼으로 어린이를 양육하고 후원금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컴패션을 만나 잿빛으로 물든 땅에서 희망을 꽃피운 우간다의 한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와 컴패션이 함께한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황폐해진 마을


우간다 정부와 ‘신의 저항군(Lord’s Resistance Army, LRA)’ 간 갈등은 10년 가까이 지속됐습니다. ‘신의 저항군’은 우간다 출신 조셉 코니(Joseph Kony)라는 인물이 1987년 설립한 반군단체입니다. 조셉 코니가 이끌던 신의 저항군은 민간인 대상 살인, 약탈, 강간, 납치 등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으며 6만 명 넘는 어린이를 납치해 소년병, 소녀병이나 성 노예로 삼았습니다. 조셉 코니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세계 극악 범죄자로 기소했으나 지금까지 체포되지 않고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피해자가 수백 만에 달했습니다.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너도나도 피신 길에 올랐습니다. 눈앞에서 가족의 죽음을 목격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고, 어린이들은 소년병이나 성 노예로 살아가며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약 20만 명의 성인남녀와 어린이가 목숨을 잃은 후에야 갈등은 종식됐고 2006년 휴전이 선포됐습니다. 우간다 국민들은 오랜 시간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휴전이 선포되자 난민들은 자기 삶의 터전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맞이한 건 황폐한 땅이었습니다. 사회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시체가 가득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생존자들은 신체적, 정신적, 영적 상처에 시달리고 분노와 고통, 가난과 질병,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남은 생을 보냈습니다.

내전의 피해를 극심히 입은 이들 중엔 우간다 북부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도 있었습니다. 아폴로 아콜(Apollo Achol) 목사는 반란군이 공격하던 당시를 기억합니다.

“1996년이었어요. 반란군이 우리 집을 공격해 제 동생이 자전거를 타고 도망치려다 살해당했습니다. 기르던 동물도 다 죽였어요. 살아남은 사람들도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저희 아버지는 그 사건으로 내내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시다가 2001년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동료 워싱턴(Washington) 목사는 반란군의 공격으로 7형제 중 3명을 잃고 수많은 지인을 떠나보냈습니다. 반란군은 민간인을 묶고 구타하거나, 총을 쏘고 난도질을 하는 등 그 잔인함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5개의 교파, 5명의 목사 그리고 1개의 교회



▲ 아폴로 목사, 워싱턴 목사 등 다섯 명의 목사가 설립한 빅토리아웃리치 교회

고아가 된 어린이들이 거리를 배회했습니다. 씻지도 못한 채 때가 까맣게 찌든 손으로 음식을 구걸했습니다. 배고픔은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남녀 할 것 없이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동네마다 짙게 퍼진 절망의 잿빛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반군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안함, 눈앞에서 또다시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다시는 예전처럼 살 수 없을 거라는 무기력함이 팽배했습니다.

아폴로 목사, 워싱턴 목사를 포함해 같은 마음을 가진 다섯 목사가 모였습니다. 가족을 잃고 전쟁의 피해를 함께 겪은 목사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고통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연합할 때입니다. 이 마을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절망뿐인 이곳에 평화와 회복이 있도록, 목사들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들의 마음 가운데 함께 아파하는 컴패션의 마음이 강하게 임했습니다. 다섯 목사는 리라(Lira) 지역에 빅토리아웃리치 교회(Victory Outreach Church)를 세우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 빅토리아웃리치 교회는 농업 프로그램으로 안전한 식량 확보를 도우며 지역사회에 나아갔습니다.

처음엔 농업 프로그램으로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공용 토지를 주민들에게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안전한 식량 확보를 위해 농업 산업을 회복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생명을 위한 농사’라는 슬로건 하에 농업 프로그램 VOMAP(Victory Outreach Ministries Agricultural Program)이 시작됐습니다.

“농사를 시작할 때 필요한 기본적인 준비물을 키트로 제공했습니다. 묘목과 손수레나 마체테 칼과 같은 농기구로 구성돼있죠.”

아폴로 목사가 말합니다.

교회에서는 직접 땅 모퉁이 한구석에 시범 농장을 운영했습니다. 쑥쑥 자라는 작물을 보고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농업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농사를 시작한 이들은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하며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 올랐습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이들에게 교회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농사 중에 어려움이 생기면 누구든 찾아와 상담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교회에서 복음을 듣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 농업 프로그램으로 얌, 카사바, 수수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에 성경적인 원리를 적용했습니다. 투입량과 재배 기간을 모니터하고 농장을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방법, 생산량을 대폭 늘리는 각종 농업 기술 등 다양한 농사법을 가르쳐줍니다. 전통적인 농업과는 확연히 달라요. 분명한 성과가 있죠.”

빅토리아웃리치 교회 농업 프로그램 담당자인 리디아(Lydiah)가 말합니다.

농사를 지으며 가게를 운영하는 마틴(Martin)은 농업 프로그램을 통해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옥수수 수확량이 세 배로 증가한 것입니다. 농업 프로그램의 수혜자는 마틴 외에도 수백 명에 달합니다.


교회와 컴패션의 만남




빅토리아웃리치 교회는 2007년부터 컴패션과 함께하며 전인적 어린이 양육을 시작했습니다. 워싱턴 목사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은 더 많다”고 생각하며 컴패션과 파트너십을 체결했습니다.

“컴패션과 함께하면서 저희의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고 역량이 강화됐습니다. 어린이들을 양육하고 가정 방문을 다니면서 마을 내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됐습니다.”

아폴로 목사가 말합니다.

전쟁 중 수자원 시설이 파괴되어 수만 명의 마을 주민들이 수인성 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2002년 한 해에만 빌하르츠 주혈흡충(기생충이 혈관으로 파고드는 질병)과 말라리아에 걸린 사례가 4,000건 이상 발생했습니다. 교회와 컴패션은 어린이들의 양육 환경을 보완하는 기금을 통해 우물을 설치했습니다. 깨끗하고 믿을 수 있는 수자원은 컴패션 어린이뿐 아니라 마을에 개방되어, 마을 내 수인성 질병의 발병률이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물을 긷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던 어린이들도 이젠 가까운 곳에서 바로 물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을에 가장 장기적인 타격을 입힌 것은 에이즈였습니다. 컴패션은 대대적으로 감염 현황을 조사했습니다. 결과는 심각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컴패션 어린이의 보호자 75% 이상이 HIV 보균자 또는 에이즈 감염자입니다.

한 컴패션 어린이의 아버지인 사니(Sani, 가명)가 어렵게 전하는 심정을 통해 그 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을 피해 찾은 수용소는 처절한 곳이었습니다. 두려움, 굶주림, 무기력함이 공존했습니다. 그 속에서 매춘이 성행했습니다. 수용소의 군인들이 여성, 때론 어린 소녀까지 이용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HIV바이러스를 감염시킨 건지 이젠 파악조차 되지 않습니다. 제 아내마저 HIV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너무 복잡한 심경이었습니다. 더 살고 싶지가 않았어요.”

집지마다 수치심이 가득했습니다. 컴패션과 교회는 어린이와 부모에게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부끄럽게 여기거나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도 희망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니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학부모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처지인 사람들을 만나니 조금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컴패션의 도움으로 대형 병원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수수, 계란, 생선과 같은 음식도 받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게 됐죠. 사업 자본도 지원받아 돼지고기 식당을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빵을 구우며 함께 식당을 운영 중입니다.”


▲ 빅토리아웃리치 교회는 두려움이 가득한 마을 사람들에게 안전한 피신처가 되었습니다.


▲ 우간다에서 먹는 마른 생선을 비닐에 담는 모습

빅토리아웃리치 교회는 컴패션과 함께 총 8,000명 이상의 HIV 보균자들에게 손을 뻗었습니다. 실질적인 의료 혜택과 더불어 마을 주민들의 가슴 안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던 절망과 수치심을 사랑으로 덮어주었습니다. 현재 빅토리아웃리치 교회는 리라 지역 내에서 교회를 확장해 매주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뻗은 손길, 일하시는 하나님



▲ 더 많은 열매를 향한 희망이 보입니다.

컴패션 어린이센터장 안젤리나가 말합니다.

“컴패션의 양육이 시작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졌어요. 교회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컴패션과 함께 기술 교육, 소득 창출 활동 등을 통해 우간다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을 길러내고 있어요. 회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컴패션과 교회가 연합하고 이뤄낸 영향력은 지방 정부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역사회의 신뢰를 받으면서 지방 정부도 컴패션과 교회가 함께 이뤄낸 성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정부에서 프로그램 훈련 및 개선 자금으로 6천만 실링(미화 만6천 달러)을 지원받았어요.”

내전의 아픔을 직접 겪은 목회자들 간의 연합, 그리고 컴패션과의 협력을 통한 기회의 확장. 컴패션과 빅토리아웃리치 교회가 함께 맺은 열매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에는 우간다 전역에 변화와 회복을 일으키겠다는 의지가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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