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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하는 색은 빨강, 사랑이니까요! 브라질 2019.04.11 1,098


 

글 카우아니(Kauany Vitoria Domingos da Silva), 브라질, 11세 / 사진 사라 나바로(Sara Navarro, 브라질컴패션 사진작가)



저는 빨강을 좋아해요! 빨강은 강하고 생동감 있잖아요. 사랑의 색이기도 하고요! 제일 좋아하는 야채인 토마토도 빨간색이고, 피자에도 꼭 들어가는 색이지요. 제가 병원에 있을 때, 우리를 웃겨주려고 오신 재미있는 광대 아저씨의 도 빨강이었어요.

 

제가 빨강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생명이나 을 의미하는 색이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병원에서 검사를 할 때마다 꼭 보는 색이니까요.

 

그런데요, 제가 만나는 빨강은 실은 생명이나 삶을 의미하지 않아요. 오히려 반대지요. 빨강은 저에게 마치 ‘멈춤!’ 신호 같았어요. 인생의 빨간색 신호등이 켜졌을 때 제 삶의 시간을 멈춰야 했거든요.

 

제 머리를 보고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잘 웃는 행복한 아이랍니다!”

 

브라질은 카니발로 유명하죠. 그중 유명한 곳이 브라질 북부에 위치한 올린다(Olinda) 시예요. 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답니다. 하지만 도시의 가장 가난한 지역의 허름한 건물 2층에 사는 우리들에게 도시 중심가의 화려하고 쾌활한 카니발은 멀고 먼 이야기예요. 이곳은 심각한 우범지대여서 사람들은 이곳에 오는 것을 두려워해요. 그래서 루베닐도(Rubenildo) 목사님과 사모님이 이곳에 교회를 세우신 건 기적이나 다름없어요! 게다가 그 교회가 컴패션과 협력하게 된 것은 제게 큰 선물이었죠! 하나님께서 컴패션과 우리 교회의 만남을 이루어 주셔서 제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제가 5살 때,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인 베타니아(Betania) 아줌마가 컴패션에 대해 말해주었어요. 베타니아 아줌마의 딸인 타이나라(Tainara)는 제 최고의 ‘절친’이죠. 우리는 함께 컴패션에 들어가 배우고 활동하면서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어요. 타이나라는 항상 제 모험의 동지가 되었답니다. 어른들은 다소 위험한 우리 집 인근의 거리를 쏘다니는 우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곤 하셨지만 우리는 동네 곳곳의 폐가들을 뒤지고 노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멈춤! 제가 7살이 되었을 때였어요. 짧은 제 인생의 교통 신호등이 빨강으로 바뀌었어요.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들은 제 난소에 낭종이 있어 난소와 자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죠. 수술 중에 척추에도 종양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같이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이 수술이 어떤 의미였는지 잘 몰랐어요.

 

“7살이 되었을 때,

제 인생의 교통 신호등의 불빛이

빨강으로 바뀌었고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종양은 정말 많은 것을 가져갔어요. 당장 저는 걸을 수 없게 되었어요. 언제 다시 걸을 수 있게 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어요. 밤마다 악몽을 꾸었죠. 걸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휠체어가 갑자기 제 앞에 나타났지만 절대 휠체어에 앉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되면, 저는 영영 걸을 수 없게 될 것만 같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저를 안고 다니셨어요.


종양은 엄마와 할머니의 기쁨도 가져갔어요. 저는 종종 아기처럼 엉엉 울었지만, 그분들은 절대 제 앞에서 울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알고 있었어요. 다른 방에서 제가 안 볼 때, 울고 계시다는 것을요. 그렇게 마음의 고통을 달래고 계셨다는 것을요. 우리는 원래 힘든 삶을 살고 있었는데 제 상황이 그분들을 더 힘들게 했어요. 많은 책임으로 무거웠던 엄마의 피곤한 팔에 저까지 매달리게 된 거죠. 결국 저는 휠체어에 앉기로 했습니다.

 

종양은 제 머리카락도 가져갔습니다. 화학 요법을 하는 동안, 머리카락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어요. 하지만 그보다 슬픈 건, 병원에서 만난 저와 같은 많은 아이들 중 몇 명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이었어요.


 

1년여의 병원 치료 기간 동안, 컴패션의 로산젤라(Rosangela) 선생님과 제 가장 친한 친구 타이나라는 거의 매일 저를 찾아왔어요. 마침내 저는 퇴원하게 되었죠.

 

하지만 컴패션 어린이센터로 나가야 하는 날이 다가왔을 때, 저는 무서웠어요. 다리는 여전히 마비된 채였고 병은 완치되지 않았어요. 엄마의 도움을 받아 하루 세 번 카테터(삽입관)를 사용하여 배뇨를 하고 있었고 평소에는 기저귀를 차고 있었죠. 머리도 여전히 대머리였어요. 도무지 제가 아픈 아이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감출 재간이 없었어요.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만약 친구들이 이런 저의 모습을 비웃으면 다시는 그 아이들을 만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워질 것 같았죠.

 

“1년 동안의 병원 치료를 마치고

컴패션에 다시 나간 첫 날,

2층이었던 교실이 1층으로 바뀌어 있었어요.

제가 받은 제일 큰 환영 인사였어요!”

 

하지만 컴패션에 다시 돌아간 첫 날, 제가 가장 먼저 본 것은 교실이 1층으로 옮겨져 있는 것이었어요. 두려움이 싹 달아났어요! 컴패션과 목사님은 제가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어요! 제 안에 가득했던 두려움이 씻은 듯이 사라졌고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해졌어요. 정말 제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사랑받고 있었어요!

 

 

컴패션 친구들이 저를 감싸고 환영해 주었어요! 아무도 저를 비웃지 않았어요! 친구들은 놀이에 꼭 저를 불러 함께 놀았고 적극적으로 어린이센터 활동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특히 타이나라는 제 휠체어를 밀며 예전의 모험들을 함께했죠. 때때로 저는 제 다리가 마비되어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잊곤 했어요. 제 연약함과 한계는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자유를 알게 해주었어요. 그것은 친구들과의 우정만이 줄 수 있는 자유입니다. 나와 친구들은 겉보기에 달랐지만 사랑받는 자의 자유를 함께 누렸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제 연약함과 한계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자유를

알게 해주었답니다.”

 

저는 학교와 컴패션으로 돌아와 좋았습니다. 선생님들은 우리 삶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어떻게 우리를 돌보시는지 잊지 않게 해주셨어요. 가족들에게도 감사했어요. 우리 동네에는 자녀들을 돌보지 않는 많은 부모님들이 계세요. 이 아이들은 씻지도, 옷을 갈아 입지도 못한 채 며칠씩 보내기도 하죠. 돌봄 받지 못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엄마와 할머니는 항상 제 편에 있었고 저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는 확실한 증거였어요.

 

저는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의사들은 저에게 곧 걸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점차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머리카락이 다시 자랐고 예쁜 곱슬머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타이나라와 남동생 카우안(Kauan)과 함께 거리를 휘젓고 다니기도 했어요. 이웃 집 오빠가 2층 집 계단을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동네 아이들도 함께 놀았습니다. 제 인생 신호등이 녹색으로 보였어요.

 

 

신호등이 다시 빨강이 되었습니다. 올해 초, 폐와 가슴에서 새로운 종양이 발견되었어요. 다시 수술을 받았고 눈을 떴을 때에는 가슴의 상처가 남았죠. 하지만 저는 살아 있었습니다. 엄마가 슬퍼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죠. 다시 화학요법이 시작되었고 저는 다시 머리카락을 잃었습니다.

 

저는 종종 할머니 댁에서 공포영화를 봅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지만 영화 속 괴물은 별로 무섭지 않아요. 삶과 미래를 생각하는 게 가끔은 훨씬 더 두려워요.

 

저는 11살이에요.

태양이 지구를 11바퀴나 도는

긴 시간 동안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제 꿈은 경찰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대신 눈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죠. 또 어쩌면 간호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적어도 달릴 필요가 없고, 검사를 하거나 주사를 놓는 일에 관해서 저는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타이나라와 저는 사탕 장수가 꿈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수중에는 늘 돈이 없죠.


저의 이런 외로운 날들 속에서 여전히 컴패션 선생님들은 놀라워요! 저는 다시 집과 병원을 오가며 어린이센터에 못 나가게 되었지만, 그분들은 끊임없이 저를 살펴보고 보살펴주세요. 가능할 때마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하도록 야외 활동에 저를 포함시켜주시고요. 지난 달에 물놀이 공원에 갔었는데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엄마는 병원비로 걱정하지 않으세요. 컴패션의 도움으로 많은 비용이 해결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을지는 몰라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가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심은 알아요.”

 

 

왜 하나님이 저를 다시 아프게 하도록 허락하셨는지 이해하지는 못해요. 그래도 저는 그분이 선하다는 것을 알아요. 저는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을지는 몰라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요. 언제 다시 병원에 가야 할지 알 수 없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저를 응원하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 저의 민머리를 보며 슬픈 눈으로 제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저는 대답한답니다. 안녕! 제 이름은 카우아니예요. 전 행복하고 웃는 소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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