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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부딪침, 한 아이 조근호 후원자 2019.05.08 770

 


검사장 시절 혁신에 앞장섰던 이유도, 

2008년부터 지금까지 600여 통에 가까운 글을 ‘월요편지’라는 이름으로 매주 세상에 보내오는 이유도, 

행복마루컨설팅(주)이라는 한 회사의 대표로서, ‘철학하는 CEO’가 되고 싶다고 한 이유도… 


행복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하는, 선한 사람이 잘 살기도 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돌았던 동화 속 주인공처럼, 

멀고 먼 과테말라컴패션 현지에 오롯이 섰습니다. 

평생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마음이 애타왔다가, 정작 자신의 가족들 앞에서는 작아져 버린 한 아버지였습니다. 

컴패션에서 만난, 어린 꼬마 5살배기 데이시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한 것이라고는 놀아준 것밖에 없을 때, 비로소 이 아버지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었던 행복, 

그것을 넘어 사랑을 만났습니다.


당신, 행복해지세요


2008년 대전지검장이 되기 전에 3년 동안 검찰혁신추진 단장을 했어요. 검찰 전체를 뒤바꾸는 작업이지요. 그런데 다들 힘들어하는 거예요. 대전지검장으로 내려가면서 고민했어요. 대규모 청의 기관장이 되는데 모두와 함께할 화두를 무엇으로 잡아야 할까. 생각해 보니까, 검찰청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불행한 것 같더라고요.

행복은 일상에서 접하는 사람들이 행복할 때, 행복을 많이 접할 수 있을 때 행복해지죠. 그런데 10년 정도 검사 생활을 하면 조직폭력배 비슷해져요. 거칠고 눈빛이 사나워져요. 저절로 불행해지죠. 아무리 대단한 사람들도 저희 앞에 설 때에는 가장 밑바닥일 때, 제일 나쁜 상황일 때 만나죠. 이런 불행한 사람들을 매일 만나야 해요.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면역체계가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행복이었죠. 행복으로 무장되어야만 보통으로라도 살겠다, 나아가 행복을 전염시킬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당신, 행복해지세요’라고 한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잖아요. 화두를 직원들이 행복해지는 행복경영으로 잡았어요.



사명감 같은 게 있었습니다. 검찰 구성원들을 불행으로부터 막아야 한다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매주 ‘월요편지’를 썼고 ‘나는 당신들의 행복을 책임질 테니 당신들은 고객들의 행복을 책임져 달라’고 했죠. 그렇게 했더니 실적도 엄청 좋아졌어요. 마음을 살려주니 그렇게 달라지더라고요. 큰 배움이 되었습니다.


쉬운 건데, 왜 그렇게 돌아왔을까요

 

자다 벌떡벌떡 깨고. 인생을 잘 사는 걸까, 방향이 맞을까, 속도가 이게 최선일까, 삶이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했어요. 행복을 계속 추구해왔고 행복에 대한 글을 계속해서 쓰고 회사도 있고. 행복을 추구했는데 안 행복했어요. 왜 그런지 몰랐어요. 그럴 때 딸 아이가, 컴패션비전트립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권했어요.

 

그 즈음 정말 많이 바빴어요. 말이 안 되는 스케줄 속에, 큰 기대 없이, 조용히 다녀와야겠다는 마음만 갖고 트립에 참가했어요. 비켜서 있자 했죠. 첫날, 쓰레기 마을에 갔습니다. 제 어린 시절 모습이더라고요. 지금도 어머님이 가끔 옛날이야기를 하면 저는 단 5분을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비전트립 첫날 그런 모습을 본 거예요. 너무나도 보고 싶지 않았고, 외면하고 싶었던 때였죠. 간신히 억눌러서 살아왔는데, 이 멀리까지 이 비용 내고 그토록 피하고 싶던 과거를 왜 마주쳐야 했을까, 정말 불편했어요. 공동묘지를 지나서 쓰레기 마을까지, 혼자 갔으면 그냥 돌아왔을 거예요. 도망도 못 가고… 그러다 마주 보게 된 거죠. 알게 되었고 안에서 녹아내리기 시작한 거죠. 하루 이틀, 지나면서 뭔가가 따뜻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사역하던 사람들, 갖은 고생을 하는데 표정이 희열에 차 있었어요. 꼬마들도 점점 더 많이 만났어요. 꼬마들을 만나면서 희망이라는 걸 보게 되고, 이 어린이들을 위해서라면 뭔가 할 수 있겠다는 따뜻함이 다가오기 시작했죠.


  

트립리더였던 서정인 목사님이 ‘작은 예수가 되자’고 했어요. 트립 중에, 집이 무너지면 집을 세워주겠다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의대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고 하니까 도와주고, 어린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니까 보내주고. 성경에 나오는 기적이 이런 게 아닐까요. 우리 마음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게, 기독교의 본질이겠다, 싶었습니다. 굉장히 편안해졌습니다.


컴패션 현지에서 본 사람들. 사실 행복할 수 없어요. 그런 환경에,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밥을 먹으면서. 그런데 전 거기에서 행복했어요. 매주 교회에 가면서 사랑이 중요할까, 생각해왔는데 제가 생각했던 사랑은 책이나 설교 속의 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삶 속의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꼬마 데이시에게 준 것은 사랑밖에 없잖아요. 제가 사랑을 줌으로써 제가 행복해진다는 것을 느껴서, 삶의 목적이 행복이어서는 안 되겠다, 사랑이 되어야 하겠다, 알았어요. 행복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행복은 자기중심적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상대방의 마음은 행복으로 읽어내지를 못해요. 그것은 불가능하죠, 결국 사랑이 아니면 타자를 읽어낼 수가 없죠. 쉬운 건데 왜 이렇게 돌아왔을까, 싶었어요. 비전트립을 통해 제가 확 바뀌어 버렸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조근호의 560번째 편지-삶의 허기와 갈증을 채워 줄 '그 무엇'을 찾아서 CLICK]



제 삶에도 여러 번 예수님이 오셨을 거예요  


우리가 비전트립에서 걸어간 길이 예수님이 걸어간 길 같았습니다. 우리가 만났던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을 만난 거겠죠. 제 인생은 어땠을까요, 예수님이 어떤 다른 분의 모습으로 제가 힘들 때 어깨를 두드려 주시며 힘내라고 했었을 거예요. 어떤 때에는 누군가 밥을 사주면서, 또 장학금을 주시면서 그분이 제게 예수님이었을 겁니다. 몰랐던 거죠. 제 삶에도 여러 번 예수님이 오셨을 거예요. 예수님의 손길을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게 아마… 예수님이셨을 거다, 그런 것들을 느끼게 된 거죠. 울컥했죠.



제가, 제가 다 잘못해서


비전트립을 권했던 딸과 그전에는 10년을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제가, 제가 다 잘못한 거죠. 그때 딸이 대학교 입시 때 힘들었는데 제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제 말이 딸에게 못이 박힌 거죠. 아빠의 기대에 못 미친 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자존감이 확 꺾인 거죠. 그런데 딸이 저보다 먼저 비전트립에 참가했다가 저에게 10년 만에 데이트 신청을 했어요. 그 후에 저와 딸 사이가 완전히 달라졌죠. 딸은 제게 온 또 다른 예수님이었을 거라고, 트립에 같이 갔던 분이 이야기해주더라고요. 


제가 다 문제래요. 집사람한테도, 딸한테도, 아들에게도. 저에게도 변명은 있습니다. 어디엔가 이런 글을 썼었죠. 세상 모든 사람들은 모두 나더러 바위가 되라고 했다. 그래서 더 크고 더 단단한 바위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바위가 너무 무섭단다. 바위 표면이 너무 거칠단다. 나는 부서지기로 했다, 조약돌이 되고 먼지가 되었다. 그럴 거면 왜 바위가 되라고 했을까. 아마도 인생은 먼지로 시작해서 먼지로 돌아가는 걸 연습하는 것일지도...


지난번 여행에서 가슴이 너무너무 찔린 순간이 있었는데 일행 중 한 분이 당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분이 딸 둘을 결혼시키면서 당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20년간 좋은 배필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가슴이 엄청 찔리더라고요, 내가 기도를 안 해서 우리 딸이 시집을 안 가고 있나, 확, 와 닿았어요. 뭔가를, 내가 하려고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간절히 간구한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뭘 했을까, 그러면서 생각나는 게 있었어요. 어릴 적 아버지가 아프시고 가계가 급속도로 힘들어지면서 아버지가 매일 새벽기도를 하셨어요, 저를 위해 기도하셨대요. 그때는 몰랐어요. 부모가 자식한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 기도가 아닐까요. 저는 돈을 좀 벌어다 줄까, 사회적 지위를 줄까, 좋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울까… 저의 힘을 의지해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 너무 늦은 깨달음은 아니었나 안타깝지만 큰 깨달음이 있었어요.


 

이제 사랑을 이야기하겠습니다


트립에서 서정인 목사님이 시스템 얘기를 하셨어요. 센터가 있는 지역들은 범죄자들이 많은 우범지역이었어요. 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범법자, 갱단, 도둑놈, 사기꾼들의 가족들이고, 그들이 자원봉사하고, 근무를 하는 거예요. 이런 와중에 해외에서 돈이 들어왔을 때, 훔쳐 가고 싶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고 아이들에게 돌아가요.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범죄자 가족들과 본성이 달라서요? 시스템이 그들을 제어한 거예요. 그런 일은 나쁘고 그 길로 갈 때 삶이 파괴된다고 계속해서 알려주고 경고해주는 거예요. 태어날 때는 다 같이 태어나지만 어떤 사람은 점점 나빠지면서 범죄자가 된 거잖아요. 모든 아이들이다 똑같이 태어나는 데도요. 저는 다른 검사들에게, 범죄자들을 대할 때, 환경적 요인 때문에 변화된 것이라면 처벌을 할 때에는 그런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고 늘 이야기해요. 배려하고, 사랑하고, 죄 있는 자도 사랑하자고요. 그들이 왜 저렇게 되었을까, 그 감정을 깊이 이해한다면 어느 정도는 배려할 수 있는 여유분이 있는 게 아니냐 했어요. 


[조근호의 561번째 편지-컴패션의 회계와 감사 시스템에 얻은 교훈 CLICK]


얼마 전, 행복은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글을 쓴 적이 있어요. 행복은 달성할 수가 없어요. 그땐 답이 사랑인 줄 몰랐을 때였죠. 행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다들 행복이 목표라고 이야기했는데 행복은 목표가 아닌 거예요. 그런데 사랑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어요. 데이시와 놀아주었더니 데이시가 사랑을 느끼고 행복해했어요. 그날 자발적으로 데이시의 노예가 된 어른들이 졸졸졸졸 쫓아다녔잖아요. 데이시를 웃게 하기 위해. 데이시의 노예가 되어서 우리는 그날 행복했던 거예요. 사랑을 해야 하는구나, 사랑이 목표가 되어야 하는구나 싶었어요. 이제 사랑을 이야기해야겠다, 사랑을 해주면, 사람들이 행복하겠다… 인생의 목표가 확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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