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 건너뛰기 링크공감함께 쓰는 에세이
블루코너의 외침 최성욱(LEODAV) 후원자 2019.06.07 655

컴패션 하면 어떤 색깔이 떠오르세요?

컴패션 제작물 오른쪽 상단에 그려진

작은 파란상자, 블루코너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블루코너는

추수하고 한 쪽 모퉁이를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어주자는 성경말씀에서 비롯돼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를 위해 일한다는, 컴패션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최성욱 후원자는

지난 2년 간 자신만의 색과 목소리로 블루코너 시리즈를 그려왔습니다.

그가 블루코너로 보여준 세계,

그 이야기를 지금 들려드립니다.

 

 


Q. 후원자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레오다브(LEODAV)이자 가족과 함께 부르키나파소의 아이샤와 브라질의 자밀리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래피티는 벽이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인데요.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처음 그래피티를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 되었네요.



2013년부터는 대한민국 독립운동가와 Love Camo Life 시리즈를 만들며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를 그려왔습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는 독립운동가 그래피티를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광화문 거리 일대에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후원은 2012년, 결혼 초창기에 아내와 처음 만난 날을 기념하며 시작했습니다. 2017년부터는 컴패션 콘텐츠 애드보킷으로 참여하게 되었고요. 콘텐츠 애드보킷이 되면서 작년 한 해 동안 블루코너 시리즈를 컴패션 홈페이지, SNS, <빛과소금> 잡지에 소개하며 컴패션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가 있는 위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로 도움의 필요한 어린이들의 필요를 알리는 것. 그 행위 또한 어린이 사랑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최근에는 1952년 한국에서 컴패션을 설립한 에버렛 스완슨(Everett Swanson) 목사님을 블루코너로 표현했습니다. 어떤 의미로 작업했나요?




컴패션 설립자이신 에버렛 스완슨 목사님 자료를 수집하고, 깊이 묵상할수록, 그분은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 어린이를 너무나 사랑했던 분이셨다는 믿음이 분명해졌습니다. 스완슨 목사님의 사진을 보면 모두 한국 어린이를 품에 꼭 껴안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계셨죠. 그리고 한복을 입고, 갓을 즐겨 쓰며 한국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6월을 맞아 한국전쟁 고아를 위해 컴패션을 만든 스완슨 목사님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스완슨 목사님이 한 어린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블루코너에 담았습니다. 실제 사진에는 한국의 어린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림에는 아이의 형태를 누군가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오늘날 다

른 나라의 사람들, 후원자, 컴패션 어린이일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자기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보세요. 스완슨 목사님에게 안긴 아이가 누구로 보이시나요?

 

 

Hexter90(레오다브 크루) 작가 作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 선교사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스완슨씨, 당신은 이곳이 많은 도움과 기회들을 필요로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이제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 질문은 나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하는 삶’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이 질문은 내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중에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를 않았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하나님께 약속했다. 비록 돈도 없고 뒤에서 후원해 줄 사람도 없지만 미국으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이 한국의 구걸하는 소년들을 위해 무언가를 반드시 하겠다고. 고아들이 들고 있던 깡통을 들어 외치며.

                      스완슨 목사님 일기(61.09.16)에서 발췌


Q. 블루코너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컴패션 제작물마다 오른쪽 상단 한쪽에 있는, 파란색 네모상자가 계속 제 눈에 들어왔어요. 컴패션 직원분은 추수할 때 한쪽 모퉁이를 어려운 사람들에게 남겨주자는 성경말씀에서 비롯된 컴패션의 상징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때 벽돌을 자기 몸짓 만하게 쌓아 어깨에 짊어진 어린이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한국이면 책가방 메고 학교에 갔을 아이일 텐데 말이죠. 그런데 하루 종일 일하던 그 아이가 컴패션에 들어와 학교에 가는 스토리를 보며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리게 된 것이 블루코너 시리즈의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콘텐츠 애드보킷으로 재능나눔을 하는 것도 제 삶에 블루코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마음 속에 비어 있는 공간이 있을 텐데요. 그 자리를 블루코너로 채우셨으면 합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코너, the corners)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위기 23:22)


Q. 지금까지 했던 블루코너 시리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컴패션 어린이, 후원자의 스토리를 블루코너 시리즈로 그리면서 각자 인생의 모양, 깊이, 색깔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하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잊을 수 없던 건, 낡은 판지를 지붕삼아 수레 굴 속에서 강아지와 함께 사는 어린이들의 사진이었어요. 이 모습을 본 후원자가 아이를 후원하고, 새로운 집에서 살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처한 가난만이 아닌 컴패션이 말하는 꿈과 소망을 덧입혀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고민하며 작업했던,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Q. 20년 전에 그래피티가 생소했을 텐데요. 그래피티를 한다고 할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그거 되겠어? 냄새도 많이 날 거 같고. 건강도 안 좋아질 것 같은데. 계획 있어? 나이 들어서는 어떻게 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취미로 하다가 막상 직업이 된다는 건 다른 차원인 거 같습니다.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죠. 2년 정도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에는 그래피티를 했습니다. 돈이 된다고 생각은 안 했어요.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여 발을 더 깊숙이 내딛었습니다. 어머니와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의 지지도 힘이 되었습니다.

 

Q. 특별히 사회적 메시지나 독립운동가를 그려온 이유가 있나요?

 

공간에서 소통하는 그래피티로 단순한 관심을 넘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영향력을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나중에 부끄럽지 않은 작가로 기억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가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했죠.

독립운동가나 근현대사 인물들이 대상이다 보니 아무래도 자료 확보가 중요합니다. 잘못 그려서 역사나 사실을 왜곡시키면 안 되니까요.

그래피티가 낯설거나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쉽게 낙서처럼 생각하고 즐기며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낙서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드러낸다고 생각하면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요.  

 

Q. 다음세대, 어린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초등학교 시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어린 마음에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교회 목사님이 해주셨던 얘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가난은 죄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다만 불편할 뿐이다.” 물론 과거의 가난과 오늘의 가난의 모습이 다르겠지만 잠깐 불편한 것뿐. 지나간다. 많이 얽매이지 말라는 말을 건네 주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래피티 수업이 있는데 이런 말을 가장 많이 해줍니다. “너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봐!” 머릿속으로는 별도 따고, 달나라도 가고, 다 할 수 있잖아요. 마음으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고 일단 시도해보라고 합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말아라. 목표를 설정한 부분까지 올라가봐라.” 아마 제 성장과 경험에서 온 건지도 모르겠네요.

 


댓글 입력창 댓글  {{total}} 0 / 300자
  • {{item.user_id}} {{item.body}}
    수정 삭제 {{item.reg_date | date : 'yyyy-MM-dd HH:mm:ss' }}
    0/300자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