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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취재] 손편지의 주인공, 장혜원 후원자 2019.07.23 660


애틋한 손편지로 글로벌 취재에 응모한 주인공!

 

편지 안에 담은 간절한 마음이

영상 속 어린이들을 보자

눈물이 되어 녹아내렸습니다.

 

휠체어를 타는 삶은 힘들지만

그래서 어린이들의 아픔에 함께할 수 있고

포기할 수 없다는 그녀,

장혜원 후원자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장혜원 후원자가 ‘글로벌 취재’ 이벤트에 지원하면서 보낸 손편지

 

△ 장혜원 후원자가 후원 어린이 자스민, 프린스의 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

 


꿈에서 만날까, 아른아른

 

안녕하세요. 저는 천안에 사는 장혜원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글로벌 취재에 지원했어요. 제 후원 어린이들은 제 삶의 굽이굽이마다 저를 버티게 해줬어요. 힘든 순간마다 편지가 도착했고 어린이들의 응원으로 위로를 받았거든요. 첫 후원 어린이는 7살짜리가 편지에 ‘엄마가 정진하는 삶을 사는 게 존경스럽다’며 저를 꼭 만나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직접 만나러 가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막연하게 그 미소를 상상하다 글로벌 취재를 알게 됐지요. 필리핀의 내 아이들, 자스민(Jasmine)과 프린스(Prince)를 사진과 영상으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어요.

 

△ 후원 어린이 자스민(왼쪽부터 2017년, 2018년)

 

△ 후원 어린이 프린스(왼쪽부터 2017년, 2018년)

 


별이 된 첫 아이

 

제가 처음 컴패션을 알게 된 건 몇 년 전 우연히 본 신애라, 차인표 씨 영상 때문이었어요. 컴패션의 양육에 마음이 반쯤 빼앗기고 투명성에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당시 부산에서 컴패션 사진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까지 찾아가 마주친 문구에 얼어붙고 말았죠. ‘네 눈물이 내 눈물이 되고 네 웃음이 내 웃음이 되고’라는 말이었습니다.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용돈에 의존하던 대학생이라 선뜻 한 어린이를 바로 후원하진 못하고 양육보완 등의 후원을 결심하고 돌아왔는데 어린이를 향한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어요. 며칠간 기도하며 한 아이가 떠올랐고 컴패션 홈페이지에서 정말 그 아이를 찾는 신기한 경험을 하며 첫 어린이, 존(John)을 만났습니다.

 

△ 첫 후원어린이 존


존은 편지에서 저에게 아름답다고 해주며 제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말해줬습니다. ‘작은 별’ 동요 가사에 존의 이름을 넣어 보냈더니 ‘저는 엄마의 별이 되었어요’라며 고맙다고 답장이 오기도 했어요. 존의 아버지 병환이 호전되고 오리 농장을 하며 경제 사정이 나아져서 더 이상 후원을 받지 않게 되었고, 감사하게 떠나보냈지만 지금도 그리운 마음을 안고 존 생각을 합니다. 아름답다는 말, 처음 들어봤거든요.

 

 

나에게 ‘힘든’ 매일, 어린이에겐 ‘살아남아야 하는’ 매일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다 보면 시설도 불편하고 알게 모르게 차별도 받습니다. 이 땅에서 이렇게 태어나 사는 일이 참 힘들더라고요. 살아남기 위해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고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 열심히 공부해 심리치료사가 됐습니다. 광야 학교를 종류별로 지나오면서 제가 겪었던 아픔이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눈물은 눈물을 흘려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어린이들의 가난은 아픔을 아는 제가 겪은 것보다도 더 절대적이에요. 그래서 포기할 수 없어요.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으니 제 삶을 포기할 수 없고, 결국 삶에 최선을 다하게 되고요. 어린이들도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며 걷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 손을 잡아주고 싶어요. 분명 예수님께서도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계실 거예요.

 


저는 ‘양육 전문가’입니다

 

저는 심리치료 중에서도 놀이 치료 전문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내담자를 심리 치료하는 과정은 일종의 양육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란 초등학교 5, 6학년 학생들이 찾아오면 첫 만남에 아기처럼 교실을 기어 다니거나 “응애응애” 울기도 해요. 치료할 때 사랑으로 양육하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효과가 분명합니다. 아이들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 선생님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금방 알아채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컴패션이 어린이를 양육한다는 개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컴패션의 서정인 대표님도 CBS 교양 프로그램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사람을 키운다’고 말씀하셨어요. 경제적으로 넉넉한 아이를 내담자로 맞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에도 1~2년의 세월이 꼬박 걸리는데 가난 속 한 어린이를 세워가는 데에는 그야말로 오랜 시간이 걸리죠.

 

△ 왼쪽부터 후원 어린이 프린스, 자스민, 새롭게 후원을 시작한 마델린


 

후원 그 이상의 후원

 

한 생명, 한 어린이의 존엄함을 생각하다 보니, 후원금 45,000원을 보내는 것 이상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었어요. 한국컴패션 일반인홍보대사 VOC(Voice of Compassion)를 알게 됐죠. 어린이들의 ‘목소리(voice)’가 되자는 취지에 빠져들었습니다. 더 많은 어린이가 후원자를 만날 수 있도록 고민하면서 활동했어요. 서울에서 모임이 늦게 끝나면 기차역에서 전동 휠체어에 기대 날을 새고 천안 집으로 돌아갔던 적이 있을 정도로 열정을 발휘하기도 했고요.

 

△ 일반인홍보대사(VOC, Voice of Compassion)로 활동하는 장혜원 후원자의 모습


△ 다른 일반인홍보대사(VOC)들과 함께

 

대전·충청 일반인홍보대사들과 함께 자주 활동해요. 한 후원자가 자신의 집 지하실을 컴패션 소개의 장으로 만들고 ‘마라의 샘’이라고 이름 붙인 곳에서 바자회가 열린 적이 있어요. 저는 도예로 만든 물건을 팔았는데 컴패션을 전하는 또 다른 후원자들을 보며 도전을 받았어요. 제가 ‘걷기대회’도 참가했답니다. 걸은 걸음만큼 후원금을 계산해 기부하는 활동이었는데 저는 휠체어 한 바퀴를 한 걸음으로 계산해 참여했어요. 언젠가는 휠체어 탄 후원자들을 모아 함께 달려보는 꿈을 꾼답니다. 사람을 만나 친해지면 컴패션을 소개하게 돼요.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도 컴패션을 알리고 싶어 집을 꾸며놨어요. 제 소개로 후원을 시작한 분들이 행여나 어린이의 손을 놓지 않도록 기도도 하게 됐습니다.

 

심리치료는 제가 업으로 삼은 사명이지만 컴패션 또한 저의 중요한 사명이에요. 가끔은 제 업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하)

  

△ 집 한쪽 면을 컴패션과 관련된 이야기로 꾸민 모습.

가운데 장혜원 후원자의 시 <춤 추는 아이>가 보입니다.

 


춤 추는 아이

- 장혜원


사랑해 숫자가 없어질 때까지

너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받은 자니까

 

아물어라 피어라

아물어라 피어라

 

상처는 아물고

꿈을 꾸는 보배야

너는 피어라

 

이제 나 함께 가시나무 위

구름돗자리 펴 놓을 테니

 

질그릇 속에 담긴 생명력이여

기나긴 밤이 무색하도록 춤을 추어라

 

짙은 어둠도 가리울 수 없는

새벽별 너는 어여쁘다


 

△ 장혜원 후원자가 자신의 시에 대한 감상을 함께 적어놓았습니다.



충분히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원래도 가진 게 많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늘 있었죠. 자스민, 프린스 외에 새롭게 도미니카공화국의 마델린(Madelyn)을 후원하고 있는데, 이렇게 후원을 늘릴 땐 뭔가를 희생해야 해요. 먹던 우유도 끊고 가고 싶은 곳도 가끔 포기하면서요. 때로는 한 달에 3-4백 정도 벌어서 더 많은 어린이를 후원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막대한 수련비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공부도 더 할 수 있잖아요. 휠체어를 탔지만 가고 싶은 곳에 더욱더 자유롭게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고요.

 

그러다 3~4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지하철에 끼는 사고까지 당하면서 몸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누워서 생활하느라 체중이 20~30kg 늘었죠. 원래도 장애가 있었는데 사고로 더 중증이 됐습니다. 몸에도 마음에도 번아웃이 찾아오며 끝내 주저앉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공부하고 이렇게 30대가 되기까지 정말 어렵게 걸어왔는데, 어려운 일이 또 일어나더라고요. 제가 너무 볼품없어서 내일쯤 주님 오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때 알았습니다. 제 마음의 가난이 ‘사랑’을 가렸다는 것을요. 가난이 제 눈을 가려 제가 받은 그리고 줄 수 있는 사랑을 볼 수 없게 가리더군요. 가난이 저를 어둠 속으로 끌고 갔습니다. 전 세계 가난 속 어린이들은 후원을 받기 전에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는데, 밥 세 끼 먹는 제가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을 위해 다시 일어나야겠다는 단단함이 생겼어요.

 

 

 

글로벌 취재의 주인공 장혜원 후원자에게

후원 어린이 자스민, 프린스의 인사를

영상으로 전했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던 어린이들을 만나자

장혜원 후원자는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너무 예쁘다, 얘들아.

내가 휠체어를 탔고 부자는 아니지만

난 놀이하는 선생님이라서 잘 놀아줄 수 있는 재주가 있어.

너희들과 재미있게 놀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어.”

 


△ (왼쪽부터) 자스민, 프린스


 

나를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자스민, 프린스를 영상으로 만난 지금 저는 다시 일어나는 기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만 같아요. “그렇지 않다. 난 너의 가능성을 믿는단다.” 제가 놀이 치료하는 아이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인데, 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은 듣지 못했을까요?

 

직장은 그만둘 수 있지만 부모는 사표 수리가 안 된다’는 말을 부모님들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양육자이신 하나님도 사표수리가 안 된답니다. 그래서 저도 어린이들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한 어린이를 후원하면서 후원자와 어린이가 서로의 생애를 주기별로 동행하고 순간순간 일으켜주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붙여주신 어린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 저도 힘들지만 저와 같이 지금이 힘든 어린이를 위해 힘을 내고 싶어요.

 

컴패션의 양육은 하나님이 지으신 우리의 본모습을 회복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어린이들도 저도요. 우리는 모두 천하보다 귀하니까요.

 

△ 어린이 사진에 입맞춤해주는 장혜원 후원자

 


오랜 동행을 소망합니다


자스민, 프린스에게 바라는 건 많이 없어요. 그 땅에서 잘 자라줬으면 좋겠어요.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잘 만들어나가길, 또 누군가의 길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한 어린이가 자람으로써 마을이 변화되고 그런 어린이들이 많아지면서 나라가 변할 거라고 믿어요. 제가 어린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동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장혜원 후원자의 마음 속 어린이들

자스민, 프린스 스토리 보러 가기



장혜원 후원자와 같이

어린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주세요! (신청 : 8/25까지)



컴패션이 직접 후원자님의 어린이를 만나고 옵니다!

글로벌 취재 시즌2 신청하기 (신청 : 8/31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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