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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페달을 밟는 사람들 강상규 후원자 2020.09.14 613

 2015 동해안 종주길(부산-통일전망대, 600km) 14,431,500원 모금

인도컴패션 어린이 205명에게 자전거 선물

 

2016 제주도 자전거길(제주공항-서귀포 제주공항, 250km) 14,633,200원 모금

엘살바도르컴패션 가정에 정수필터 1,300개 지원

 

2017 자유일정(개인당 평균 300km) 21,465,008원 모금

케냐컴패션 가정에 염소 전달

 

2018 제주일주(250km) 24,465,008원 모금

필리핀컴패션 일로일로 지역 아버지들의 자립을 위한 자전거택시, 패디캅 48대 전달

 

2019 대전-서울(320km) 24,600,000원

태국컴패션 매흥손 지역 104명 어머니들에게 재봉틀과 교육 지원

 

그리고… 2020!


 

CFC(Cycling For Compassion, Cycling For Children)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자전거를 타고 어린이들이 필요한 곳에 기금모금을 진행해왔던 홍성 읍내에서 대를 이어 동물병원을 하고 있는 강상규 후원자. 자전거를 좋아해서 자전거를 탄 것뿐이라는 그. 그래서 처음에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후원자들과 시작한 CFC가 벌써 5년을 넘었습니다. 그를 보며 응원하고 동참한 사람들의 수와 모금액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비결을 물었을 때 너털웃음과 함께 들려준 그의 대답은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백 명도 안돼요!” 비결을 모르겠다는 뜻같이 들립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천천히 페달을 밟을 줄 아는, 달리는 것만큼 멈출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와 동료들의 미덕 덕분인 것 같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특권”일 수도 있겠지요?

 

             천천히 페달을 밟는 사람들은 작은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컴패션을 알게 된 건, 2008년 12월이었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서점에서 션 씨의 책 <오늘도 사랑해>를 보고 컴패션을 알게 되었습니다. 컴패션은 그때 처음 들어봤죠. 어린이 양육도. 믿을 만한 사람이 후원한다니까 홈페이지 들어가서 봤어요. 세 가지 점으로 신뢰가 생기더라고요. 한 가지는 “한 어린이”였어요. 우물 파주고, 건물 세워주는 건 표가 나지만 아이 키우는 건 솔직히 표가 안 나잖아요. 그런 작은 것에 집중한다는 것에 신뢰가 생겼어요. 신선하기보다는 생각이 맞아 떨어지는 거죠. 두 번째는 컴패션의 시작이었죠. 컴패션이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시작했다는 게 감동이었어요. 세 번째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양육한다”는 게 신뢰가 생겼어요. 가끔 내세우는 것과 실행이 다른 단체들을 보는데, 가치를 지켜가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죠. 제가 집요한 사람이 아닌데 저녁부터 보기 시작해서 새벽까지 봤어요. 오타도 찾고. 그때 여섯 살 콜롬비아 헤이손을 결연한 거예요. 지금은 열여섯 살이에요.


 

▲ 고등학교 때 수의사로 일하시던 아버지를 보며 수의사를 꿈꾸었는데 30대 중반에 동물병원도 개원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들까지 키우면서 꿈을 이뤘다. 그때부터였다. 원인모를 편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은. 일 년쯤 뒤, 컴패션에서 결연한 헤이손이 후원자를 위해 기도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읽게 되었다. 어린 헤이손이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자신보다 크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동물병원 지하에 빈 공간이 있었는데, 지하공간을 꾸미기 시작했다. 매형이 ‘마라의 샘’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마라의 샘’ 이후로 건강도 되찾았다. 


▲ 점심 때면 강상규 후원자는 같은 동네에서 각자 자영업을 하고 있는 고향 친구들과 마실 가듯 같이 점심을 먹고 마라의 샘에서 커피를 마치며 축구를 한 판 한다. 축구는 온라인 게임. 아저씨들끼리 열중해서 한 판. 시원하게 웃고 소리 지르고 나면 개운한 마음으로 각자 일터로 돌아간다. 스크린을 올리면, 마라의 샘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동안 컴패션과 함께했던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후원 어린이와의 편지는 당연하고, 추억이 깃든 사진과 편지는 병풍 모양으로 세워 두었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아내와 함께 지인들이 후원하는 있는 아이들 사진을 지도에 붙여 놓았다. 백여 명이 넘은 것 같다. 


2013년에 자전거 좋아하는 컴패션 후원자들끼리 여행을 하고 싶었어요. 자전거 타려면 표지판(sign)을 잘 봐야 하거든요. 캐나다컴패션에서 후원자 몇 명이 자전거를 타고 5백만 원인가 장학금을 준 이야기를 보기도 했고 컴패션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지 60주년이었거든요. 하나님이 사인을 주신 것 같았어요. 이 우리의 여행이 특별할 거라고. 컴패션 직원 한 명하고 후배를 꼬셔서 여행을 시작했어요. 한국컴패션 한남동 사옥에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부산 사옥까지 500km를 탔어요. 좋았지만 다시는 안 타려고 했지요. 

 

2015년에 버려진 자전거 부품으로 노숙인들이 만드는 자전거 이야기를 들었어요. 와, 저것도 컴패션인데, 했습니다. 저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하면서 아이들을 돕는 의미를 담으면, 나 스스로한테 의미가 있겠고 자전거를 만들어준 노숙인 분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죠. 노숙인 분을 직접 만나고 의미를 말했어요. 그분이 처음에 안 믿었죠. 제가 한다고 하니까 이번에는 컴패션 직원 4명이 함께했어요. 컴패션 북한사역이 시작하는 해였는데, 통일전망대 간다고 하니까 혹한 거죠. 그리고 차인표 씨가 하루 다녀갔죠. 당시 기부금 14,431,500원의 앞자리 천 만 원은 이분이 주고 간 거예요. 그걸 보면서, 내가 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배웠어요. 매년 모금 목표액이 많아져요. 금액이 항상 부담스러워요. “나”라는 것에서 벗어나서 영향만 주자, 촛불 하나만 켜면 되지, 격려만 해주는 거지 그러면서 달라졌어요. 많은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잊지 말자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마라의 샘에 가면 볼 수 있어요.


 

▲ 곳곳에 지난 기록들이 남아 있다. 2015년 CFC 참가로 모은 당시 모금액수를 그때 탔던 자전거 체인으로 만들어 벽에 걸었다. 


컴패션 아이들이 낡은 슬리퍼를 신은 영상을 봤는데 아이들 입장에서 슬리퍼를 신고 자전거를 타보고 싶었어요. 불쌍하다기 보다는 편하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운동화 신고 다닐 때는 바다나 계곡 들어가려면 벗고 닦고 해야 하잖아요. 위험하긴 합니다. 원래는 안 신는 게 맞죠. 하지만 말로만 의미부여하고 싶지 않고 작지만 하나로 묶어주는 하나의 결을 만들고 싶었어요. 감성이 묻어나는 거죠. 같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한테도 자기만족을 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우리의 나의 여행은 특별하다고.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자기 스스로잖아요. CFC만의 특별함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거죠.

 


 

천천히 페달을 밟는 사람들은 멀리 갈 수 있다

 

우리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저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백 명이 안되요. 은혜죠. 그래서 하나의 캠페인을 놓고 모금 기간을 많이 두죠. 한국컴패션 계좌로 모금하면서 일 년 내내 스토리텔링을 해요. 계좌가 생기면, 제가 먼저 기부를 해요. 천 원이든, 10만원이든. 창구 잘 열렸나 알아보는 것도 있고(웃음), 마중물이에요. 액수와 상관없이. 참여해 주시는 분들도 마중물 같은 분들이 생기셨어요. 100%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알려드리고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기부했는지 보여주니까. 보시는 몇 분이 다른 분들께 설명해줘요. 추천하시는 거죠. 3백 명도 안 되는 분들이 다른 분들께 영향을 끼쳐서 지금까지 모금할 수 있었어요. 전체를 보면 모금 못해요. 이 몇 분 보고 하는 거예요.


▲ 이전에는 같은 장소에서 출발해서 같이 도착했는데, 2017년에는 각자 있는 곳에서 출발해서 모이기로 했다. 그러면서 더 많이 자유로워지고 참가자 스스로가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을 배웠다.


참가자 스스로 자연스럽게 특별한 의미를 만들어 가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신 아버지와 아들이 다시 도전하기도 하고. 몸이 불편한 분이 참가해서 다른 분들을 오히려 격려하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2017년 CFC가 재밌었어요. 그 전에는 같은 장소에서 같이 출발해서 같이 도착했는데 2017년에는 각자 있는 곳에서 출발하고 영덕에서 만나는 것으로 했어요. 각자 스토리를 만들었죠. 중학생 20여명이 한 팀으로 참가했어요. 인솔하신 어른들이랑 재미나게 왔더라고요. 자전거 타는 길 위에서 나름의 추억과 배움이 있었던 거예요. 백 명 넘 게 결연하게 되었고요. CFC에 대해서 내 것이 아니고 나는 자리만 만들고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겠다, 결론이 났죠. 그후 굉장히 자유워졌어요. 이젠 숙소도 각자 알아서 구해요.  

 

CFC가 나름대로는 커졌거든요. 제 의도는 그게 아니었거든요. 열 명 미만 그렇게 하는 게 있고 누군가는 다른 것을 하고 싶어 많은 후원자들이 한 가지라도 꾸준히 지속가능하게 쭉 해나가는 것들을 바랐거든요. 거대해지는 모습보다는 소소한 그룹들이 많아지는 게 화려하진 않은 걸로, 관심이 높아지면 진행하는 사람들의 부담이 커지고 타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탄다면 다 느껴요. 억지로 하는 것은 다 느껴요. 그래서 자전거만 타지 말고, 요리도 하고, 재봉틀도 다루고… 서로 각자 다 하는 거죠. 그래서 CFC라도, Creator For Children으로 내년부터는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저는 계속 자전거 타겠지만.

 

자전거는 정직해서 좋아요. 내가 밟는 만큼 굴리는 만큼 가고, 자유롭고, 혼자서 할 수 있고. 이게 자립이에요. 그리고 자전거 탈 때 정말 중요한 것은,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멈추는 것도 중요해요.


 

천천히 페달을 밟는 사람들은 같이 달릴 수 있다

 

아내는 제가 컴패션에 열심이었어도 한동안 하나보다 했어요. 같이 컴패션밴드 공연이나 모임도 가고 좋긴 좋은데 마음은 없었던 거죠. 한 일 년 그랬어요. 아내를 비전트립에 보내기로 작정하고, 필리핀 놀러갔다고 오라고 했죠. 무조건 간다고 하죠. 컴패션에서 가는 건데, 나중에 이야기했죠. 상관없다 하죠. 비전트립에서 아내가 울면서 왔어요. 은혜 받은 겁니다. 우리가 그때 소형차, 마티즈를 몰고 있었는데 아내가 비전트립 갔다 와서 뭐라도 하고 싶다고 하길래, 차에다 그림 그려보라고 했어요. 컴패션에 도안 요청해서 아내가 만들었죠. 그게 첫 번째 컴패션카예요. 첫 번째 컴패션카를 타고 식구들이랑 컴패션 알리는 캠페인하면서 전국일주했어요. 배타고 제주도까지 돌고 왔죠. 그냥 재미있었어요. 그때부터 아내가 지인들한테 추천을 많이 했어요. 애들 엄마 커뮤니티나 카페 같은데 가서 소개하고 오죠. 백 명 넘게 후원하게 되었어요. 몇 년 있다가, 아내가 마음이 좀 식었대요. 인도네시아를 다녀왔죠. 또 은혜를 받더라고요. 저한테 컴패션카를 다 지워놓으라고 해서 일주일 동안 일일이 지워서 새하얗게 만들어 놓았어요. 이번에는 우리 헤이손이 그린 그림으로 컴패션카를 만들었어요.


 


진짜 고마운 건 가족이에요. 후원해주시는 분들도 고맙고 요구가 많은데도 섬겨주는 직원들도 고맙지만 정말 고마운 건 가족들이에요. 아내는 자전거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데 재밌어 해주고 아이들도 싫을 수 있잖아요. 몇 년 동안을 CFC를 여름휴가로 가니까요. 큰아들은 CFC로 초등학교 때부터 제주도 두 번이나 돌았어요. 그만하고 싶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올해도 함께해줬어요. 우여곡절은 있었지만요.


가족들에게 컴패션이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편하게 입는 옷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아내나 아이들에게 강요하지는 않아요. 자발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죠. 좀더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건 역시 CFC죠. CFC 전의 마라의 샘은 정적이었어요. 설명회를 한다거나 공연이나 인문학 강연을 한다든지 일방적으로 듣다가 CFC 이후에는 참여형이 된 거죠. 자전거는 내가 굴려야 가는 것이라서, 체험을 하면서 뭔가 같이 하는 구나 아이들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더라고요. 애들이 뿌듯해하고 한해 한해 갈수록 믿음직스러워지죠. 올해는, “아빠 거기 길 잘못 들었어.”, “아빠 거기 아니야.” 네 가족이 함께 더운 날 자전거를 타는 걸 보고, 참가자들이 감동받기도 해요. 저희 가족에게 CFC는 감사기도이자 예배 같은 거예요. 그전까지 모금을 마무리하고 과정이 다 중요하니까요. 마지막 여행은 예배인 거죠. 이것을 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아내와 자전거 같이 타는 거 정말 좋아요 제 꿈 중 하나였는데 올해 이뤄졌어요. 아내는 2015년에 같이 참가한 아이들 때문에 동해를 따라오고 했지요. 차 타고 애들 챙기느라고. 주변에서 많이들 부러워해요. 자전거 좋아하는 아빠들 입장에서.

 

2020년, 코로나19로 다 막히게 되면서, 뭐라도 하자, 싶었어요. 각자 있는 곳에서 버츄얼로 타자고 했지요. 3백km 캠페인을 해서 모금을 했어요. 그걸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결국 홍성에서 친해진 지인 가족들과 같이 자전거를 탔어요. 제가 CFC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서울이나 타지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그러다 코로나19로 거점인 홍성에 많이 있게 되면서 세 가정 12명이 꾸준히 모이게 된 거예요. 첫째 아들 친구 가족이에요. 좋은 의미로 만난 사람들이었죠. 아이들 봉사 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엄마들이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대요. 홍성에 고려인 5세들이 많이 살아요. 외모는 한국인인데 러시아말을 해요. 이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하자고 사회복지센터를 거쳐서, 벽화도 그리고 자전거도 타고, 한글도 가르쳐줬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엄마들이 모이다가 아빠들까지 만나게 되었어요. 그러다 올해 CFC에 엄마들이 자전거 입문을 한 거예요. 엄마들이 자전거에 서툴러서 많이 넘어졌죠. 다치고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후원하는 아이들도 자랐지만, 엄마들도 자랐어요. 짧은 시간 안에 눈에 보여지는 성장이 있었던 거죠. 그렇게 넘어지던 엄마들이 자전거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어요. 자부심이 엄청났죠. 참가자 중 초등학생 막내도 부심이 엄청났어요. 친구들한테 자전거 타느라 탄 손등 보여주면서, 너희는 이런 거 모르지 하는 거죠.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과 오래 가는 거예요. 컴패션 후원자가 아니어도,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아니어도, 오래 가는 거죠. 복음이나 컴패션 후원도 급작스럽게 전하는 게 아니라, 가랑비 옷 적시듯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주입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100km 가자고 하면 누구라도 부담스러울 거예요. 하지만 천천히 자연스럽게 갔으면 좋겠어요. 누구라도 보면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게끔요. 폼 내지 않고, 성취감 가지면서.


 

 


2020년 탄자니아 400명 어린이들에게 자전거를 선물해 주는 CFC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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