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 건너뛰기 링크공감함께 쓰는 에세이
[빛과소금2월호] 진정한 ‘쉼’을 얻고 삶의 ‘기쁨’을 발견했습니다 김혜미 후원자 인도네시아 2019.01.29 562





“현대인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긍정성에 입각해 성과를 쌓으며 존재감을 확인하지만 그로 인해 늘 피곤하고 목표에 미치지 못하면 우울증을 겪게 된다.” 「피로사회」에 나온 한 구절이다. 김혜미(31) 씨 또한 이러한 현대인 중 한 명이었다. 적어도 ‘비전트립’을 떠나기 전까지는. 세밑한파가 거센 겨울날, 삶의 기쁨을 찾았다는 그녀를 만나니 봄날이 느껴졌다.


삶의 가치를 찾아 떠난 여행


어느덧 만 6년째 접어든 회사원 김혜미 씨. 취업에 성공해 남부럽지 않게 회사 생활을 했지만, 유독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비전트립 가기 전 몇 개월 동안 침체되는 시간을 보냈어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왜 살아야 할까. 내가 직장을 왜 다녀야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왜 맺어야 하는지, 모든 것들에 대해서. 여행도 가고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공부도 하고. 누가 봐도 생산적인 것들을 함으로써 답을 찾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때뿐이고 지나고 보면 잘 모르겠더라고요. 다양한 방법을 찾아 헤맸는데도 채워지지 않으니까 이게 인생이구나, 하고 와 닿는 게 없었어요.” ‘가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떠나기 전날 가방을 싸면서도 확신하지 못했단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실함이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2018년 12월 5일, 그녀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뭔가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어요. 여행을 좋아해서 일 년에 두세 번은 해외여행을 가요. 하지만 저를 위해 시간과 돈을 들이는 여행은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시간을 보내거나 나를 위한 보상으로서의 여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요.”


‘절망’과 ‘희망’ 사이


인도네시아의 ‘발리’가 아닌 자카르타의 ‘아이들’만 보고 오는 시간들…. 숱하게 관광지를 밟으며 다녔던 지난 여행과는 사뭇 다른 일정이었다. “사실 아기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별로 감흥이 없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날 쓰레기가 널려 있는 방 한 칸에 식구 네 명이 사는 가정을 방문했는데, 그 가정의 깡마른 체구의 엄마와 아빠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기쁨 하나 없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죠. 그때 아이에게 꿈을 물었는데 의사라고 대답하더군요. 듣고 있던 아빠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어요.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질 텐데, 아이들에게 어떤 기쁨이 있을까 싶었어요.” 가난의 실체와 아픔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가난이 주는 ‘절망’ 가운데 ‘희망’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그녀의 마음에 남았다. 이 땅을 밟기 전에는 헤아리기 힘든 삶의 고통. 그녀는 문득 서울에 두고 온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저의 고민들이 작아 보였어요. 어쩌면 제 생활이 너무나 평안하거나 결핍이 없어서 스스로 결핍을 만든 건 아니었을까 싶었죠.”





아이가 자랄 때 ‘희망’의 힘도 자란다


그녀는 바쁘다는 핑계로 어느 순간부터 교회 공동체와도 멀어진 자신과 물질만 보내며 무관심하게 후원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그래서였을까. 유독 비전트립 현장에서 눈물이
많았다는 김혜미 씨.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하루를 버틸 수 있는 동력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기쁨의 눈물이었어요. 후원하는 기쁨을 모르고 살았다가 ‘삶에 이런 기쁨이 있었구나!’ 라는 걸 발견한 거죠. 마지막 날 후원받고 자라난 열 명의 아이들을 만났어요. 그 아이들 모두 훌륭하게 잘 자라서 직업도 있고 결혼도 했더군요.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서 명확하게 얘기해 줄 때는 감동이었어요. 후원자들에게 단순히 물질적 지원만 받은 것이 아니라, 희망의 힘도 함께 키워간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어요. 그 만남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고 기뻤어요. 아이와 후원자인 나와의 일대일 만남이 마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후원자가 왔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고 반겨주던 아이들. 아이들이 편지를 기다리는 것이 요식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됐다.

“아이들이 편지를 붙여 놓고 하루 세 번 후원자를 위해 기도한대요. 나는 나를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는데, 아이들이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도에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렇게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건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서였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죠.”




기쁨이 생겼어요, 진짜 신기하게


그녀는 쉬는 것조차도 마음 안에 강박으로 느껴졌었다. 황금같이 주어진 토요일 역시 마음 놓고 쉬지 못한 지 오래였다. “조바심이 사라졌어요. 압박감이 있었거든요. 주말에 쉴 때도 쉬지 못하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검열을 끊임없이 했어요. 너무 많은 생각을 했는데, 좀 더 자유로워진 거죠.” 무엇을 위해 달려왔을까. 그녀는 좀 더 안정적이고 좀 더 경쟁력 있는 사회적 지위를 원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저를 억압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인생을 살고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았어요. 단순히 월급 받고 일하는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도. 내가 돈을 벎으로써 어떤 누군가도 같이 밥 먹고 일하고 미래가 생긴다는 것을. 그래서 기쁨이 생겼어요. 진짜 신기하게도.” 복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땅속 깊이 감춰져 있던 귀중한 보화를 발견한 것처럼 삶의 값진 보화를 발견한 김혜미 씨. 그녀는 삶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짐을 느꼈다.




김혜미가 생각하는 ‘나눔’



물질은 풍요롭지만 한국의 많은 아이들은 내면 가운데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힘든 현실에 쫓겨 지낸다. 그러나 이곳 아이들은 열악한 환경 가운데 물질이 아닌 ‘사랑’과 ‘관심’을 더욱 필요로 한다. 가난 속에 천국이 있고, 부요와 풍요 속에 고통이 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녀가 한 일은 편지 쓰기.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이와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단다. ‘나’만 보이던 그녀에게 ‘이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리라. 그리고 물질보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서는 관심과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리라.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과 감사가 많아졌다는 그녀는 나눔에 대해 당당히 말하고 싶단다. “내게 주어진 것이 다 제 덕이 아니고 누군가의 수고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면 오로지 나를 위해서 쓰지는 않을 거 같아요.”


댓글 입력창 댓글  {{total}} 0 / 300자
  • {{item.user_id}} {{item.body}}
    수정 삭제 {{item.reg_date | date : 'yyyy-MM-dd HH:mm:ss' }}
    0/300자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