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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사랑으로 가슴 뛰던 그날 하신혜 후원자ㅣ2019년 7월 탄자니아 비전트립 참가 탄자니아 2019.12.06 2,022

아프리카,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이 정말 신비로웠어요. 

하나님이 동일하게 이 곳에도 계신 것이 느껴져서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구나 싶었어요. 

상상만 하던 것이 현실이 되어 눈 앞에 확 열리는 듯했어요.



꿈이 현실이 된 것처럼

 

책이나 차인표 씨 통해서 자연스럽게 컴패션을 접하면서 언젠가 후원을 해야지 하고 있었어요. 딸, 예은이 돌 때도 돌잔치 안하고 컴패션 ‘첫생일첫마음’ 후원을 했죠. 남편도 아이들 사역에 부르심이 있었고요. 육아휴직 후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탄자니아의 에스더를 결연하게 되었어요. 


사진으로 에스더를 보는데 눈빛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제가 어린 시절에 힘들었는데 같은 마음이 느껴졌어요. 아프리카는 원래 마음에 품고 있던 곳이고, 아이 눈빛과 구멍난 옷도 마음에 다가왔죠. 에스더와 결연 후, 편지를 안 쓰다가 미안한 마음에 거의 2년만에 처음 편지를 썼던 다음날 문자로 탄자니아 비전트립 안내가 날라왔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인가 싶었어요.

 

하지만 트립 기간은 굉장히 바쁜 시기였고 더군다나 트립이 시작되는 수요일은 제가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업무도 있었죠. 아직 네 살밖에 안되는 딸 예은이와 처음으로 긴 시간 떨어져 있어야 하는 마음의 무거움이나 남편과 시댁, 모두에게 미안한 상황이 되는 것도 쉽지 않았죠. 결국 하나님께 확신을 주시면 트립에 가겠다고 기도했어요. 다음날 출근하는 길에 설교를 틀었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때로 상식적으로는 맞지 않을 때도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후 신기할 정도로 탄자니아 이야기가 들려왔어요. 라디오나 간증에서나. 저 같이 소심한 사람은 돌다리도 두들겨 봐야 하는데 마치 꼭 저를 위해 확인해 주시는 것 같았죠. 놀랍게도 굉장히 순조롭게 남편과 직장 업무 배정이 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어요. 가자, 결단했죠.



저에게 아프리카는 늘 미지의 세계였어요. 해외 여행으로 가장 멀리 가본 곳이 신혼여행 때 갔던 사이판이었죠. 에스더에게 편지를 못 쓴 이유도 실감이 나지 않는 거예요. 마침내 꿈에서 그리던 현장을 직접 봤을 때, 컴패션은 이렇게 실제적인 사역인데, 나는 어떻게 그렇게 피상적인 생각을 했었을까 싶었죠.


이번 트립 덕분에 사람이나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은 이면을 보는 노력들이 자연스럽게 많아졌어요. 뿌연 그림과 같았던 것들을 좀 더 세밀하게 보려는 노력들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아! 이곳의 아이들은 정말 부요하구나!

 

컴패션이 '하나님 안에서 어린이들을 잘 돌볼 것이다'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곳에서 아프리카의 뜨거운 감성과 열정 속에서 예배하는 현장에 가니까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예수님이 잘 전해지고 있었고 교회를 기반으로 컴패션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도 감사했지요.

 

아이들은 정말 밝고 열려 있고 행복해 보였어요. 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잘 케어를 받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마사이 부족들이 많은 어린이센터를 방문했을 때였는데 민속의상을 입고 환영인사를 해주었죠. 컴패션을 통해 부모님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한 컴패션 졸업생은 자신을 통해 부모님이 하나님을 믿게 되고 지역 사회도 변화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졸업생 대부분 자기가 컴패션을 만나서 변화되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란 모습을 보여주었죠. 한 아이를 통한 파급력이 정말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인지 한국에 돌아와 오히려 한국의 우리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어요.



장난꾸러기 에스더의 환한 웃음, 3년 동안 후원자를 기다린 버나드의 눈빛

 

다섯 살 에스더는 정말 멀리에서 왔어요. 시골 쪽에 살고 있어서 열몇 시간을 이동해서 왔다고 들었어요. 실제 에스더를 돌보는 선생님과 국가 사무실에서 파견 나온 선생님, 두 분이 에스더를 데리고 오셨죠. 트립 비용 중 아이에게도 갈 수 있도록 했다고 들었는데 그 비용으로 예쁜 원피스를 입혀서 보냈더라고요. 금빛 신발도 신고. 그것도 굽 있는. 에스더는 완전히 장난꾸러기였어요. 잠깐 쑥스러움과 낯가림도 있었지만, 아이의 밝음이 금방 표현되어 나오고 선생님도 세심하게 사랑으로 대해주시는 게 보였어요. 아이가 선생님과 거리감 없이 장난치는 모습을 보니까 제대로 돌봄 받고 사랑받고 크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감사했어요. 에스더가 처음 만났을 때, 선물로 목걸이를 가져와서 걸어주는데 마음이 이상하더라고요 그냥, 정말, 나의 아이구나 싶었죠.



탄자니아 수도 근처에서 만나 같이 놀이동산에 갔어요. 에스더는 장거리 여행에서 지치지도 않고 놀이기구가 처음이어서 그랬는지 정말 행복해했어요. 우리나라에서 방방이라고 애들 뛰는 게 있잖아요. 정말 많이 뛰면서 깔깔깔 웃으면 좋아하는 거예요. 물놀이할 때에는 추워져서 나오라고 해도 안 나왔어요. 진짜 귀여워요. 갔다 와서 감사한 것은 기도할 때에도 그 모습이 그려지니까, 지금도 그렇게 웃겠구나 싶었어요.


  


자리를 들고 일어나

 

고등학교 3년때 매일 교회에서 기도를 했어요. 마음이 여러 가지로 어려울 때잖아요. 그런데 기도할 때마다 뜨거운 마음을 부어 주셔서 선교에 가야 하나보나 싶었어요. 대개 선교는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의료 선교… 이렇게 생각하게 되잖아요. 결국 문과였는데 간호학부를 지원했어요. 그런데 학부이다 보니까 동기들이 고등학교 때보다 더 공부를 하는 거예요. 뼈 206개 이름 외우는 것 같은 암기도 너무 많고. 결국 응급구조학과를 선택했어요. 그러면서도 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마음은 갖고 있었죠. 결혼할 때에도, 둘이 결혼 전에 ‘선교한국’을 갔다가 남편도 아프리카에서 선교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어요. 같은 마음을 부어주시는 것이 예비하신 사람이 맞다 싶었어요. 그런 비전과 마인드가 있는데 아프리카에 대해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답답함이 있었어요. 현실이 될 것인가 싶었고요. 문자를 봤을 때 확 더 붙잡았던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게 정말 분명해서 행복하고 뜨겁고 좋은 체험만 가득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트립 기간 중 마음이 어려웠어요. 어릴 때 저는 우울하고 슬픈 아이였어요. 스무살 넘어서는 영적으로, 교회적으로 어려움이 와서 안 그래도 어두운 성향이 있었는데 완전히 의욕이 사라져 버렸죠. 그때 하나님을 다시 만났고, 남편도 만났어요. 결혼 후 정말 많이 회복이 되었고 다 정말 감사한 상황이 되었죠. 그런데 그때 마음이 막 올라오는 거예요. 낯선 사람들과 낯선 환경 속에서 어릴 때 느꼈던 거부당하고 환영 받지 못할 것 같았던 예전 마음이 다시 찾아왔어요.

 

제게 하나님께 사랑받았던 시간들과 간증들이 있는데 다시 찾아온 어려움 앞에 당황스러웠죠. 그때 트립 리더이셨던 컴패션 목사님이 ‘가난한 마음’ 설교를 하시면서 38년 된 병자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런데 꼭 38년 된 병자가 저 같은 거예요. 제가 38살이어서 그랬는지… 제가 여전히 주님의 회복이 필요하고 갈급함이 필요한 사람인 것 같았어요. 숙소로 돌아와서 같은 말씀으로 묵상을 하려고 성경 앱을 켰는데 첫 화면에 바로 그 말씀이 있는 거예요. 정말 놀랐어요!

 

말씀 본문에 38년 된 병자에게 자리를 들고 일어나 가라고 하시잖아요. 마음으로 외쳤죠. ‘저도 자리를 들고 일어나고 싶어요. 그러길 원해요 그런데 잘 안되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네가 정말 나로서 기뻐할 수 없겠느냐, 나로 만족할 수 없겠느냐는 거였어요.’ 제 상황으로 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는데, ‘할게요.’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기쁨이 제 안에 확 들어왔어요. 하나님 말씀이 실제가 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제가 믿음으로 붙잡는 순간, 제 안에 실제가 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진행형이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비전트립 이후 하나님은 감정과 상관없이 믿음으로 선택하고 결단하기를 원하시는 깨달았다는 것이고 조금씩이지만 좀 더 적용하고 있게 되었어요.



두근두근 생명을 살리는 일

 

저는 LSK(한국라이프세이빙소사이어티)라는 단체에서 심폐소생술 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영육혼이 다 중요하잖아요. 영과 혼도 정말 중요하지만, 육의 생명이 없으면 다른 것을 담을 수가 없잖아요. 처음에는 제가 하는 일에 그렇게까지 마음이 가지 않았는데 생명을 살리는 교육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어요. 마음이 달라졌죠.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제대로 된 교육이 되어야 하겠다 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응급조치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사건사고 후 최초 발견자가 응급조치를 해줘야지 생존율이 높아져요. 그래서 많은 교육이 중요하고 확대될수록 생존율도 높아져요. 어느 정도 깊이 압박을 해야 하는지 어느 위치에서 해야 하는지 실습이 꼭 필요해서 교육이 정말 중요하죠. 우리나라는 2008년만 해도 100명 중 응급조치를 받을 확률이 2%였어요. 98명이 도움을 주지 않았죠. 지금은 100명이 쓰러지면 20명이 도움을 받고 있다고 그래요. 일본은 50%가 넘어서 두 명 중 한 명은 도움을 받아요. 우리나라도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 가까이 되어요. 최고지역과 최저지역이. 그런데 생존율 차이도 그와 같아요. 


어렵게 복직하게 된 회사라, 각별한 애정이 있어요 원래 선한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또 중요한 일을 하니까. 최근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더욱 잘 이겨 내리라 믿고 있어요. 회사 내 신우회가 있어요. 그곳에서 제가 살기 위해 기도하고 예배드리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분들, 친밀한 교제가 없는 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게 되었죠.

 


하나님을 경험하는 아이들로 커갈 수 있기를

 

저의 원래 모습으로 산다면 너무 괴로웠을 것 같아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가 ‘너는 새 생명이고 나로 인해 살고 내 안에 거하는 거다.’라고 말씀해 주셔서 소망이 있어요. 저는 하나님이 없이는 안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은 이런 저의 갈급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계속 여러 방면으로 말씀하시고 인도해 주시고 계시죠.

 

그래서 제 아이들인 예은이나 에스더, 버나드 모두 아이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게 소망이에요. 자신의 삶의 이유와 목적, 방향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성경 공부 안에서 지식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닌, 살아 계셔서 실제적인 하나님을 경험하고 사랑이 넘치는 아이들로 커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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