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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차일드, 헤녹에게 : 잘 커 줘서 내가 고맙죠

  • 작성일 2021-01-27

디어 마이 차일드, 헤녹에게 : 박정자 후원자

 

잘 커 줘서 내가 고맙죠.”

 

 

 

▲40여 년 전, 당시 컴패션 기관인 인천의 보육원에서 근무 중 직원들과 찍은 사진.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정자 후원자. 당시 원장님도 돌아가셨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지금도 병원에서 현역으로 근무할 정도로 활력이 넘치는 박정자 후원자(만 70세).

 

 

 

 

 

둥글게 선생님, 나랑 같이 살면 안돼요?”

아이가 한 그 말에 바로 사표 냈지요 

 

 

 

스물 다섯 살 때, 교편 생활을 하던 중이었어요. 교회들이 연합해서 만든 어린이 합창단을 인솔해서 인천의 한 보육원에 위문공연을 갔거든요. 거기가 컴패션 기관이었던 거예요. 강당에서 공연하면서 제가 “둥글게 둥글게” 그 노래를 가르쳤지요. 나오는데, 결핵에 걸려 얼굴이 하얀 아이가 강당에 못 들어가고 밖에 앉아 있었어요. 그땐 결핵 걸린 아이가 많았어요. 그 아이가 제 손을 딱 잡더니, “둥글게 선생님, 나하고 같이 살면 안되요?” 그러는 거예요! 그게 감동이 되가지고 당장 학교 사표 내버리고 보육원으로 갔어요.

 

 

원장님이 저 보고 당신 같은 사람은 근무 못한다는 거예요. 시설 상황이 말이 아니었죠, 당시는. 그래도 우겼어요. 그러니까 원장님이 일주일 출퇴근해 보래요. 일주일 출퇴근했지요. 그런데 있으란 말을 안해요. 그래서 그냥 보따리 싸 갖고 들어갔어요. 그 애랑 같이 살았지요. 아이가 결핵도 다 낫고 건강해져서 잘 컸어요. 형도 거기 있었는데, 엄마는 조리부에 계시고. 나중에 시설 나가고 장가가고, 얼마 전까지 연락하고 지냈어요.

 

제가 좀 무섭게 공부시켰어요. 90년대에 4년제 대학을 일 년에 네 명씩 보냈으니까요. 이 친구들한테는 재산이 그것밖에 없잖아요. 몇 명은 지금도 이모, 이모하면서 연락이 와요. 지금 그 친구들이 다 4,50대죠. 그렇게 컴패션하고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게 1975년도 3월이었는데 1998년 7월인가, 8월인가 나왔어요. 24년 있었죠, 젊음을 다 바쳤죠.

 

후회하냐고요? 아유, 절대 후회 없어요.

 

 

 

 

쌀벌레가 둥둥 떠다니는 밥을 먹는데도,

그렇게 재미있었어요 

  

 

땡땡땡, 식당에 종이 치면, 밖에서 보다가 제일 고봉밥을 잡으러 달려가는 거예요. 반찬이라는 것은 무시래기, 무청을 미군부대에서 버린 기름통, 거기에 비닐을 씌워서 소금만 뿌린 거예요. 석유 냄새도 막 났지요. 그게 왜 이렇게 맛있어요? 지금 먹으래도 잘 먹을 것 같아요.

국도 같이 나왔는데, 시원찮았죠, 뭐. 거기에 밥을 말면, 벌레가 둥둥 떠요. 한쪽에서 누가 '월척!' 그래요. 또 한 쪽에서 '월척!' 그래요. 그러면 서로 비교해서 제일 큰 쌀벌레 나온 애한테 제일 고봉밥을 몰아 줬어요. 재밌다고 그러면서 먹었어요. 벌레가 너무 많으니까 조리부에서도 쌀 씻을 때 손으로 못 씻고 바가지로 물 붓고 휘휘 벌레가 뜨면 저어서 버리고, 또 그러고 또 그러고, 한도 끝도 없으니까, 그냥 밥을 지었던 거죠. 한 공기에 일곱 여덟마리는 나왔어요.

시설도 흙벽돌이라 흙이 와르르 쏟아지면 털어가며 살았어요. 그런데도 그때 생각하면 행복해요. 잘 자란 친구들이 정말 많아서요. 

 

 

 

 ▲1978년, 김포공항. 어린이들에게 고급스러운 한복을 입히고 꽃다발을 들려서 후원자들을 마중 나갔다. 남자 아이(가운데)는 이미 호적이 있어 입양은 하지 않았지만, 아들처럼 잘 키워 일본 유학까지 시켰다.

 
 

 

엄마 나 왔어!”

그냥 엄마하자 했어요 

 

 

 

“너 누구니?”

“엄마! 어디 있다 이제 왔어?”

81년도에 구청에서 전화가 왔어요. 그때 우리 같은 아동보육시설에는 네 살부터 아이들이 들어왔거든요. 전화로 어떤 아이가 세 살 같기도 하고 네 살 같기도 한 아이인데, 너무 똑똑해서 영아원에 보내기에는 아깝대요. 우리한테 보내겠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딸 하나 삼지?” 그래요. 기다리다 보니까, 문이 열리고 쫄랑쫄랑 한 애가 들어와서는 “엄마! 나 왔어!”라고 나를 부르는 거예요. 구청에서 아이한테 엄마한테 간다고 그랬던가 봐요. 아이가 그러면서 들어오는데, 어떻게 해요. 그래, ‘내가 엄마 하자’ 했어요. 결혼도 안했는데, 네 살 아이를 호적에 올렸어요. 원장님이 얘가 커서 자기 이야기 들으면 실망하니까 그냥 선생님이 미혼모하라잖아요. 그뒤에 딸 하나를 더 입양했어요. 호적이 이미 있어서 제 앞에 올려놓기까지는 않했지만 아들 삼은 친구도 있었어요. 일본 유학까지 시켰죠. 이 친구도 훌륭하게 잘커줬어요.

 

두 번째 딸 입양할 때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첫째 아이 때, 아이 생일을 모르니까 제 동생 생일하고 같은 날짜로 신고했거든요. 그런데 두 번째 딸이 한 살 더 많았는데, 들어 보니 생일이 같은 거예요. 요즘 즐거움이 휴대폰에 우리 딸 어릴 때 사진 저장한 거 가끔 꺼내 보는 거예요.

 

 

요즘 입양에 대해서 안 좋은 사건이 일어나서 무서워하는 일들 있고 그런 거 보면 정말 속상해요.

 

 

 

 

우리 딸이 도움 받았는데,

나도 뭔가 해야지… 

 

 

 

2001년에 나와서 구청에서 복지관 위탁공모가 있어서 서류를 제출했어요. 심사를 거쳐 사회복지시설인 미추홀 관장을 맡게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까, 컴패션 생각이 문득 나더라고요. 우리 딸이 컴패션에서 후원 받으면서 후원자한테 받았던 편지 생각도 나고, 후원금으로 10불, 15불 받아서 선물 들고 사진 찍어서 보냈던 것도 생각나고 그랬지요. 우리 딸이 도움 받았는데 나도 뭔가 다시 해야지 싶어서 한국컴패션에 전화해서 후원하게 된 거예요. 힘든 아이로 연결시켜 달라고 해서 에티오피아에 사는헤녹이랑 연결이 되었어요. 특별히 아프리카 아이를 하고 싶다 그런 건 없었어요. 추천한대로 했어요. 아이랑 연결하는 데 무슨 조건이 필요하겠어요.

 

▲2005년부터 2020년까지 박정자 후원자가 15년을 후원한 에티오피아 헤녹 학생. 4세부터 19세까지 보내온 성장사진만 여러 장이다. 마지막 편지에 대학원에 들어갔다는 기특한 소식까지 들려주었다.

 

 

 

 

헤녹이한테 할 말이 뭐가 있어요! 

그냥 “고맙다.”죠 

 

 

헤녹이를 4살 때 만났어요. 헤녹이한테 정이 많이 들었어요. 그렇게 정이 팍 들지는 그땐 몰랐지요. 이렇게 훌륭하게 클지 누가 알았겠느냐고. 대학까지 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정말 너무 훌륭해요. 가정이 다 구원받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 거잖아요. 대학교 가서 전기 관련 전공해서 너무 너무 행복해 그 친구 생각하면요. 

편지도 예쁘게 쓰고, 아버지가 안 계셨는데, 엄마랑 이모하고 세 형제 다섯 식구가 헤녹이 덕분에 이제 잘 살게 되겠지요.  

 

우리 헤녹이, 정말 이쁘고 어쩌면 이렇게 잘 자랐어요. 작년에 헤녹이가 컴패션 수료했다고 전화가 왔는데, 실감이 안 났어요.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거냐고, 그럴 수 없는데… 믿기지가 않았죠. 집에 가서 요만할 때부터 찍은 사진부터 어른 되었을 때 사진 꺼내 놓고, 세월이 많이 갔구나, 했어요. 

 

헤녹이한테 할 말이 뭐 있어요. “고맙다.”이죠. 잘 커줘서 고맙죠. 그 이상 없어요. 앞으로도 제가 고마워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면 되죠. 다 하나님 계획이었으니까, 저는 헤녹이가 바르게 자라줘서 고맙고 너는 감사하면서 살아라, 그거 이상 없음! 

 

 

 

▲2001년 사회복지기관인 미추홀 관장으로 있던 시절. 미추홀에서 65세 정년까지 마쳤다. 

 

 

 

컴패션은 서류로 아이를 보지 않았어요 

아이를 직접 만났죠 

 

 

 

지금은 보육원에 어린이가 40명 정도인데, 그때 당시에는 90명 단위였어요. 컴패션에 고마웠던 게, 보통 감사 나오면 서류를 뒤져 보잖아요. 컴패션은 아이들 한 명, 한 명 다 몸무게 재고, 키 재고 그랬어요. 몸무게가 줄면 영양공급이 안 되었느냐, 후원금 제대로 안 쓰는 줄 알고. 한 아이가 몸무게가 줄었던 적이 있어요. 왜 줄었냐고 물어봐요. 애가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다이어트한다고 줄인 거라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상담일지를 내놓으래요. 아이가 왜 그런 자극을 왜 받았는지 우리가 잘못 돌봐서 심리적으로 그런 자극을 받은 거 아닌지 보자는 거예요. (웃음) 

 

직접 감사를 하는데 아무나 애들을 뽑아서 일대일 상담을 해요. 신앙을 보는 건 상담의 기본이었어요. 예배 일지도 다 봤고요. 컴패션이 신앙지도도 정말 잘했고 신앙 상담도 깊이 있게 했어요. 그때는, 우리나라에 아직 전문적인 상담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예요. 그런데 컴패션은 만나서 아이들 만족도를 보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 건 학교 생활, 친한 친구가 몇 명이냐, 어떤 친구가 친하냐, 선생님들하고 어떠냐 정말 실질적인 감사를 했어요. 감사 나오면 애들한테 우리가 그랬다니까요, 선생님 이야기 잘해달라고. 제가 당시 공무원들한테 서류만 보지 말고 컴패션처럼 애들을 좀 보라고 할 정도였다니까요. 

 

제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컴패션이 너무 진솔하다는 거예요. 정말 아이를 사랑하는 기관. 기관을 사랑하는 게 아니고, 아이를 사랑하는 거예요. 거기에 내가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컴패션이라는 단어, 뜻이 뭔대 이 단체가 이러냐 그랬어요. 찾아봤지요. “고난에 동참하다”, 그 단어 자체가 저한테는 너무 박혔어요. 정말 고난에 동참하는 기관이었어요. 다른 데는 정말 컴패션을 못 따라왔어요. 컴패션이 저한테 굉장히 자긍심을 심어줬고, 아이들한테도 그랬죠. 그렇게 하는 데가 없었거든요.  

 

 

 

 

피 흘리는 사랑에 대해 배웠는데 

죽기 전에 기회가 왔네요  

 

 

 

 

83,4년도에 시신 기증에 사인을 했어요. 그렇게 약속했던 거니까, 살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건강할 수 있을 때 주자는 마음으로 얼마 전, 신장 기증을 했지요. 저 건강하대요. 친구들 만나면, 약 안 먹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니까요.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키우시면서 그러셨어요. “네가 피를 흘려서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지 한 번 생각해봐라.” 그게 부모님 교육이셨어요. 그런데 뭐 제가 피를 흘려서 사람 살릴 일이 뭐가 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기회가 생기네, 신장 기증하게 되어서, 그것도 어떻게 보면 피를 흘리기는 하잖아요. 비슷하게는 가보는 거죠.  

 

 

대단한 일 했다고 생각 안하고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고 그저 자연스러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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