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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네컷] 쓰임에 관한 모든 것: 퇴사를 꿈꾸는 당신에게

  • 작성일 2021-02-28

김은숙 인생네컷   

 

 

 

어릴 적부터 간직했던 나만의 꿈.

꿈이란 게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포기해야 하는 그런 것이 된 세상.

나이가 들면서 현실은 두터운 벽처럼

단단해서 깨버릴 수 없는 존재 같고요.

어쩌면 퇴사를 꿈꾸는 당신에게,

더 쓰임 받고자 꿈을 향해 달리고 있는

한 분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집을 나오기로

결심한 우리 엄마 

 

 

안녕하세요,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향기를 만드는 '핸드메이드 아티스트(Handmade Artist)' 김은숙이라고 합니다.

원래부터 외향적인 성격인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며 풍족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요.

그런데 아빠가 하시던 사업이 어느 날 너무 안좋아진 거예요.

저희 집은 참 신기했어요(신앙적으로요). 친가는 유교셨고, 아빠는 성당을 다니시고,

엄마는 외가댁이 불교셨지만 독실한 크리스천 이셨어요.

하지만 엄마는 끊임없이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정말 신실하신 분이셨습니다.

그 덕분에 동생과 저는 어린시절부터 동네 교회에 나갔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어요.

어느 날, 엄마는 저와 동생을 데리고 방에서 가정예배를 드리시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물론 참석하시지 않았고요. 동생과 저도 엄마를 따라

교회는 다녔지만, 가정예배가 뭐지? 왜하는 거지? 어리둥절했었지요. 그게 제가 6학년, 엄마가 분가를 결심했을 때였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 시부모님의 뜻을 거역하고 분가를 한다는 건 참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엄마는 동생과 저를 붙잡고 분가하기 전부터 가정예배와 기도를 통해 마음을 단단히 하셨던 것 같아요.

철없는 저는 그저 할아버지 집을 나온 것이 싫었어요.

왜 따뜻하고 좋은 집이 있는데 이렇게 나와야 하는 건지, 엄마가 미워보이기도 했어요.

이제와 생각해보면 엄마는 더이상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 집중하며 기도하는 삶을 사시기 위해 참 어려운 선택을 하셨던 것 같아요. 결국 아빠도 제가 고3때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엄마는 매일 매일 기도하시는 분이셨어요.

가족 한 사람 한사람을 위해 기도로 새벽을 여시는 분이시고요. 언젠가 제가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엄마 옛날에 분가할 무섭지 않았어?"

"아니. 외로웠지만 (하나님이 계시기에)든든했어!" 

 

 

 

 

 

 

꼭 타야만한다, 너!

(feat.장학금)


 

저는 중학교때부터 시화전 같은 것을 하면 상도 받고, 손재주가 있는 편이었어요. 가정 형편이 좋지는 않았어서

주로 학교에서 데생이나 그림연습을 했죠. 특별활동도 미술반이었고요.

하지만 입시미술을 하고 재수를 경험하면서 그때가 가장 힘들었고 부모님께 죄송했던 것 같아요.

대학에 가면 무조건 장학금을 타리라 결심했습니다.

 

시각디자인과에 합격한 저는, 부모님께 손벌리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고 싶었어요. 집-학교-교회, 저의 대학생활은 그게 다였어요.

한 번 놓쳤지만 나머지는 모두 장학금을 탔고, 차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지금와 생각하면 대학생활을 즐기지 못한 게 좀 아쉽고 후회되기도 해요.

하지만 그때는 그것밖에 안보이더라고요.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제 성격이 정말 그래요. 뭐든지 내가 직접 해야하고, 다 이루어야 직성이 풀린다고나 할까요(웃음).

나만의 브랜드를 꿈꾸다

 

 


교수님의 추천으로 졸업하자마자 다니게 된 첫 직장. 디자인회사라지만 막둥이인 저는 2년여간 거의 노가다(육체노동)만 했어요. 회사 숙직실에서 살다시피 했고요. 그 다음 회사에서는 본받을 점이 많은 좋은 멘토를 만나기도 했고, 일하면서 점차 저만의 디자인 스킬도 키워가며 나날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력이 쌓일수록 점차 틀에 박힌 디자인, 전혀 창의적이지 않고 뽑아내는 디자인만 하는 제 모습에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어요. 어렴풋이 제 안에 품고 있던, 오랜 동안 간직했던 꿈을 꺼내보았습니다. 

 

어릴적 저의 꿈, 기도는 이랬어요.

"하나님 영광을 위해 쓰임받게 해주세요."

"유명한 사람이 되어 쓰임받게 해주세요." 

 

그러다가 내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을 즈음, 제 꿈은 더 구체화 되었죠.

"하나님, 40살이 되기 전에 나만의 브랜드를 꼭 만들고 싶어요. 그 브랜드로 주님께 기쁘게 쓰임받게 해주세요!"

1년을 고민하고 마지막 회사를 나왔습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계속 불안하고 두렵고 그랬죠.

만나는 사람에게 물어보며 제 선택을 확인받고 싶었고요.

그런데 대부분은 '하지마, 지금 회사생활은 전쟁터지만 나가면 지옥이야'라고 말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몇몇은 조금이라도 어릴 때 도전하라며 격려해주시기도 했지만요.

망하면 어쩌나, 아무도 내 브랜드를 안찾아주면 어떻하지···제 두려움에 대해 고백했어요.

엄마, 나 솔직히 너무 무서워요.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라고요.

"은숙아, 내가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참 편안한 마음을 주시더라!"

 

엄마의 마음이 편해졌다는 말. 그 한마디를 들으니 얼마나 안심이 되고 평안해지는지,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김은숙 후원자가 운영하는 '더쓰임'의 굿즈 

 

 

 

2009년 12월. 연말 분위기가 한참이던 그때 친구의 권유로 어떤 콘서트에 갔어요.

연예인 분들도 나오고 따뜻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차에 MC를 보시던 주영훈 씨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풍선을 선물로 받아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무 생각없이 풍선을 터뜨렸고 그 속에 들어있던 카드를 열었습니다.

그 속에 저의 첫 아이 '아비가일'의 사진이 들어있었어요. 온두라스에 사는 귀여운 꼬마 여자아이였죠.

 

 

아비가일 어린이(왼쪽)와 어린이의 그림편지들   

 

 

사실 처음에는 후원이 망설여졌어요.

컴패션 후원은 15~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아이와 계속 관계를 맺는 일대일양육인데, 과연 끝까지 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에서요.

 

하지만 이 사진이 내게 온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 믿고 또 엄마의 격려를 받으며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아비가일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너무 행복했어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가 커가는 사진, 선물을 받고 행복해하는 미소, 알록달록 그림도 잘 그리는(저를 닮아서일까요?)

모습을 보며 저 또한 너무 행복하고 그저 사랑스러웠어요.

후원을 하면서 일반인홍보대사, VOC(VOICE OF COMPASSION) 활동도 하면서 한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의 깊은 의미도 알아갔고요.

제 작은 재능으로 후원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게 참 기뻤습니다. 

그리고 2013년에 글라디스, 2018 12월에는 마치 운명처럼 똑같이, 온두라스에 사는 5 노렐리아도 만났고요.

 

17살의 아비가일 모습 (오른쪽)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뿐이라 

 

 


비록 얼마전에 슬프지만 기쁜(?) 소식을 들었지만요.

아비가일의 엄마가 하시는 샵이 잘되어서, 이제는 후원을 받지 않을 정도로 집안 형편이 나아진 것 같아요.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해온 정때문에 너무너무 아쉽더라고요. 서운한 마음도 들고요.

지난 번 보낸 편지가 마지막 편지일 줄이야, 아이가 컴패션을 졸업해서 멋지게 축하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을 바꿔주셨어요.

이 아이가 졸업하는 것이 후원의 목적이 아니고, 아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하고 함께한 것이 중요한 거라고.

제가 지금껏 아비가일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길 기도했고, 그런 사람으로 아이가 성장한 것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말이에요.

또 무엇보다 아비가일의 가정이 경제적인 자립이 됐다는 것이 큰 이슈니까요. 참 감사하더라고요.

 

나중에는 이렇게 생각했죠. 우리 아비가일은 조기졸업 한거라고

 

온두라스의 노렐리아

 

컴패션을 만나 한 아이를 만나고 후원을 하면서, 하나님이랑 후원 어린이랑 저랑 삼겹줄처럼 끊어지지 않고 함께함을 느낍니다.

이건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앞에 서 계시고 이끌어주셔서 이렇게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후원도 더쓰임도 저희 가정도 말이죠. 

 

부르시는 그 날까지 잘 쓰임받는 것이 제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함께하심, 쓰임받는다는 감정을 후원어린이를 통해서 알려주시는 같아요.

앞으로도 내가 손을 잡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쓰임받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가 나와 우리 가정을 위해 그렇게 매일 새벽을 여시고 늘 기도하신 것처럼 먼 곳에 있는 이 아이들을 위해 저도 똑같이 기도할 거예요.

 

 

 

  

 

 

[인생네컷]은 한국컴패션 블로그에 2020년 7월 16일부터 연재되고 있는

컴패션 후원자님들의 보다 깊은 삶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컴패션 블로그 바로 가기 >>> 

 

 

 

 

 

  

1:1 어린이양육  

 

어린이와 후원자가 함께 자라는 그 특별한 후원을 지금 시작해보세요.  

 

 

 

 

 

 

 

 

  

 

 

 

김은숙 인생네컷   

 

 

 

어릴 적부터 간직했던 나만의 꿈.

꿈이란 게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포기해야 하는 그런 것이 된 세상.

나이가 들면서 현실은 두터운 벽처럼

단단해서 깨버릴 수 없는 존재 같고요.

어쩌면 퇴사를 꿈꾸는 당신에게,

더 쓰임 받고자 꿈을 향해 달리고 있는

한 분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집을 나오기로

결심한 우리 엄마 

 

 

안녕하세요,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향기를 만드는 '핸드메이드 아티스트(Handmade Artist)' 김은숙이라고 합니다.

원래부터 외향적인 성격인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며 풍족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요.

그런데 아빠가 하시던 사업이 어느 날 너무 안좋아진 거예요.

저희 집은 참 신기했어요(신앙적으로요). 친가는 유교셨고, 아빠는 성당을 다니시고,

엄마는 외가댁이 불교셨지만 독실한 크리스천 이셨어요.

하지만 엄마는 끊임없이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정말 신실하신 분이셨습니다.

그 덕분에 동생과 저는 어린시절부터 동네 교회에 나갔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어요.

어느 날, 엄마는 저와 동생을 데리고 방에서 가정예배를 드리시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물론 참석하시지 않았고요. 동생과 저도 엄마를 따라

교회는 다녔지만, 가정예배가 뭐지? 왜하는 거지? 어리둥절했었지요. 그게 제가 6학년, 엄마가 분가를 결심했을 때였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 시부모님의 뜻을 거역하고 분가를 한다는 건 참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엄마는 동생과 저를 붙잡고 분가하기 전부터 가정예배와 기도를 통해 마음을 단단히 하셨던 것 같아요.

철없는 저는 그저 할아버지 집을 나온 것이 싫었어요.

왜 따뜻하고 좋은 집이 있는데 이렇게 나와야 하는 건지, 엄마가 미워보이기도 했어요.

이제와 생각해보면 엄마는 더이상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 집중하며 기도하는 삶을 사시기 위해 참 어려운 선택을 하셨던 것 같아요. 결국 아빠도 제가 고3때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엄마는 매일 매일 기도하시는 분이셨어요.

가족 한 사람 한사람을 위해 기도로 새벽을 여시는 분이시고요. 언젠가 제가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엄마 옛날에 분가할 무섭지 않았어?"

"아니. 외로웠지만 (하나님이 계시기에)든든했어!" 

 

 

 

 

 

 

꼭 타야만한다, 너!

(feat.장학금)


 

저는 중학교때부터 시화전 같은 것을 하면 상도 받고, 손재주가 있는 편이었어요. 가정 형편이 좋지는 않았어서

주로 학교에서 데생이나 그림연습을 했죠. 특별활동도 미술반이었고요.

하지만 입시미술을 하고 재수를 경험하면서 그때가 가장 힘들었고 부모님께 죄송했던 것 같아요.

대학에 가면 무조건 장학금을 타리라 결심했습니다.

 

시각디자인과에 합격한 저는, 부모님께 손벌리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고 싶었어요. 집-학교-교회, 저의 대학생활은 그게 다였어요.

한 번 놓쳤지만 나머지는 모두 장학금을 탔고, 차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지금와 생각하면 대학생활을 즐기지 못한 게 좀 아쉽고 후회되기도 해요.

하지만 그때는 그것밖에 안보이더라고요.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제 성격이 정말 그래요. 뭐든지 내가 직접 해야하고, 다 이루어야 직성이 풀린다고나 할까요(웃음).

나만의 브랜드를 꿈꾸다

 

 


교수님의 추천으로 졸업하자마자 다니게 된 첫 직장. 디자인회사라지만 막둥이인 저는 2년여간 거의 노가다(육체노동)만 했어요. 회사 숙직실에서 살다시피 했고요. 그 다음 회사에서는 본받을 점이 많은 좋은 멘토를 만나기도 했고, 일하면서 점차 저만의 디자인 스킬도 키워가며 나날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력이 쌓일수록 점차 틀에 박힌 디자인, 전혀 창의적이지 않고 뽑아내는 디자인만 하는 제 모습에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어요. 어렴풋이 제 안에 품고 있던, 오랜 동안 간직했던 꿈을 꺼내보았습니다. 

 

어릴적 저의 꿈, 기도는 이랬어요.

"하나님 영광을 위해 쓰임받게 해주세요."

"유명한 사람이 되어 쓰임받게 해주세요." 

 

그러다가 내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을 즈음, 제 꿈은 더 구체화 되었죠.

"하나님, 40살이 되기 전에 나만의 브랜드를 꼭 만들고 싶어요. 그 브랜드로 주님께 기쁘게 쓰임받게 해주세요!"

1년을 고민하고 마지막 회사를 나왔습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계속 불안하고 두렵고 그랬죠.

만나는 사람에게 물어보며 제 선택을 확인받고 싶었고요.

그런데 대부분은 '하지마, 지금 회사생활은 전쟁터지만 나가면 지옥이야'라고 말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몇몇은 조금이라도 어릴 때 도전하라며 격려해주시기도 했지만요.

망하면 어쩌나, 아무도 내 브랜드를 안찾아주면 어떻하지···제 두려움에 대해 고백했어요.

엄마, 나 솔직히 너무 무서워요.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라고요.

"은숙아, 내가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참 편안한 마음을 주시더라!"

 

엄마의 마음이 편해졌다는 말. 그 한마디를 들으니 얼마나 안심이 되고 평안해지는지,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김은숙 후원자가 운영하는 '더쓰임'의 굿즈 

 

 

 

2009년 12월. 연말 분위기가 한참이던 그때 친구의 권유로 어떤 콘서트에 갔어요.

연예인 분들도 나오고 따뜻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차에 MC를 보시던 주영훈 씨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풍선을 선물로 받아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무 생각없이 풍선을 터뜨렸고 그 속에 들어있던 카드를 열었습니다.

그 속에 저의 첫 아이 '아비가일'의 사진이 들어있었어요. 온두라스에 사는 귀여운 꼬마 여자아이였죠.

 

 

아비가일 어린이(왼쪽)와 어린이의 그림편지들   

 

 

사실 처음에는 후원이 망설여졌어요.

컴패션 후원은 15~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아이와 계속 관계를 맺는 일대일양육인데, 과연 끝까지 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에서요.

 

하지만 이 사진이 내게 온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 믿고 또 엄마의 격려를 받으며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아비가일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너무 행복했어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가 커가는 사진, 선물을 받고 행복해하는 미소, 알록달록 그림도 잘 그리는(저를 닮아서일까요?)

모습을 보며 저 또한 너무 행복하고 그저 사랑스러웠어요.

후원을 하면서 일반인홍보대사, VOC(VOICE OF COMPASSION) 활동도 하면서 한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의 깊은 의미도 알아갔고요.

제 작은 재능으로 후원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게 참 기뻤습니다. 

그리고 2013년에 글라디스, 2018 12월에는 마치 운명처럼 똑같이, 온두라스에 사는 5 노렐리아도 만났고요.

 

17살의 아비가일 모습 (오른쪽)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뿐이라 

 

 


비록 얼마전에 슬프지만 기쁜(?) 소식을 들었지만요.

아비가일의 엄마가 하시는 샵이 잘되어서, 이제는 후원을 받지 않을 정도로 집안 형편이 나아진 것 같아요.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해온 정때문에 너무너무 아쉽더라고요. 서운한 마음도 들고요.

지난 번 보낸 편지가 마지막 편지일 줄이야, 아이가 컴패션을 졸업해서 멋지게 축하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을 바꿔주셨어요.

이 아이가 졸업하는 것이 후원의 목적이 아니고, 아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하고 함께한 것이 중요한 거라고.

제가 지금껏 아비가일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길 기도했고, 그런 사람으로 아이가 성장한 것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말이에요.

또 무엇보다 아비가일의 가정이 경제적인 자립이 됐다는 것이 큰 이슈니까요. 참 감사하더라고요.

 

나중에는 이렇게 생각했죠. 우리 아비가일은 조기졸업 한거라고

 

온두라스의 노렐리아

 

컴패션을 만나 한 아이를 만나고 후원을 하면서, 하나님이랑 후원 어린이랑 저랑 삼겹줄처럼 끊어지지 않고 함께함을 느낍니다.

이건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앞에 서 계시고 이끌어주셔서 이렇게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후원도 더쓰임도 저희 가정도 말이죠. 

 

부르시는 그 날까지 잘 쓰임받는 것이 제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함께하심, 쓰임받는다는 감정을 후원어린이를 통해서 알려주시는 같아요.

앞으로도 내가 손을 잡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쓰임받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가 나와 우리 가정을 위해 그렇게 매일 새벽을 여시고 늘 기도하신 것처럼 먼 곳에 있는 이 아이들을 위해 저도 똑같이 기도할 거예요.

 

 

 

  

 

 

[인생네컷]은 한국컴패션 블로그에 2020년 7월 16일부터 연재되고 있는

컴패션 후원자님들의 보다 깊은 삶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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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어린이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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