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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탄자니아 소년과 해바라기, 수많은 사진서 건진 한 컷

  • 작성일 2021-12-06

 

킬리만자로 공항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탄자니아 아루샤 지역 소도시에서 만난 한 아이의 모습. 해바라기에 코를 파묻고 꽃 향기를 맡고 있다.
  
  

고전영화 중에 ‘25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전쟁의 비극을 담은 영화인데 해바라기밭이 끝없이 펼쳐진 이미지의 충격 같은 게 있었죠. 그런데 바로 그런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을 탄자니아에서 만났습니다. 


킬리만자로 방문자들이 많아져 형성된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만났죠. 이 동네가 옥수수와 해바라기가 정말 많았습니다. 옥수수는 식용이 아니었고 해바라기도 화훼용이 아니었습니다. 기름을 짜기 위한 농작물이었습니다. 하루종일 해바라기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종종 어린 아이들이 일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가 물기를 머금고 있던 해바라기밭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걸어가고 있더라고요. 꽃잎마다 빗물이 맺혀 있고 비를 맞으면서 아이들이 즐거워했죠. 수많은 사진을 찍었고, 나중에 그중 한장의 사진을 선택했습니다. 선택의 기준은 동심이었어요. 장난스러울 수 있지만 해바라기가 얼굴로 느껴지고, 아이가 꽃과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컴패션 트립을 가면 3일 동안 보통 2000~2500컷 정도의 사진을 찍어요. 하루 일정이 보통 5시간인데 밥 먹는 시간 빼면 4시간 동안 그만큼 열심히 찍는 겁니다. 그렇게 해도 건질 때도 있고 못 건질 때도 있지요. 한장 찍은 사람과 백장 찍은 사람은 당연히 사진의 완성도와 자신감에서 전혀 달라집니다. 그리고 제 의도는 이 수천장의 사진 중에 어떤 사진을 선택하는 가에서 드러나죠.



 

해바라기 밭에서 찍은 수십 장의 사진 중 고른 한 장의 사진.



 

어디에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피카소의 한 추상화를 보면서 누가 그에게 말했답니다. “이런 그림은 내가 눈감고도 얼마든지 그리겠다”라고. 피카소가 그 사람한테 보여줄 게 있다고 하면서 어디론가 데려갔다고 합니다. 그것은 화실이었고 그 안에 캐비닛을 열어서 보여주는데,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한 스케치가 캐비닛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천재 작가 피카소도 어떻게 보면 막 그린 듯한 추상화이지만, 수많은 습작 가운데 하나를 내놓는 것이지 그냥 막 기분 내키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있었는데 왜 자기가 찍은 사진과 제가 찍은 사진이 다르냐고 묻곤 합니다. 칭찬으로 들린다기보다는,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 많이 찍는 것이 잘 찍는 법이라고요.
 

 

우리나라 1세대 사진작가 중에 임응식 작가가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종군기자도 했죠. 대학 때 이분께 배웠는데 수업 시간에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지금은 폐간됐지만, 미국에 라이프지라는 강력한 사진 시사 잡지가 있었어요. 이 잡지의 창간호를 찍었을 만큼 전설적인 사진가 마거릿 버크화이트가 한국전쟁 후 모습을 찍으려고 파견을 왔어요. 임 작가가 안내를 맡았다고 그래요. 그런데 버크화이트가 엄청나게 큰 뷰 카메라를 가지고 정말 많이 찍더래요. 그래서 “당신처럼 많이 찍으면 자기도 잘 찍겠다”고 했더랍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대요. “나는 이렇게 많이 찍어도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을 못 건질 때가 있는데, 당신은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요. 피카소 일화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지요.


 

사진을 많이 찍는 평소 훈련이 현장에서 많이 찍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지요. 많이 찍으면 선택할 수 있는 눈을 키워줍니다. 영화가 편집하는 행위로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고 스토리가 완성되는 것처럼, 사진도 선택을 통해 의도를 드러내죠. 하지만, 많이 찍는 것뿐 아니라 그 훈련 속에서 길러진 순발력도 사진가에게는 필요한 덕목입니다.



 

마사이족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어린아이. 흙바닥을 뒹굴며 울던 아이는 컴패션 직원, 찰스가 건네 준 사탕을 받아 들고 금방 울음을 멈췄다.


 

길에서 울고 있던 아이를 꼭 안아주는 찰스의 모습.



 

가끔 현지 컴패션 직원이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데 어떤 사람이 오는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탄자니아 마사이족 동네에 갔을 때, 찰스라는 직원이 왔어요.
 

 

찰스는 굉장히 후덕함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동네에서 어른으로 대해주더라고요. 덕담도 하고 족장이나 동네 어른들하고 너스레를 하면서, 분위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우리 역시 환대받는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었죠. 처음 보는 길거리 아이를 안아주고 눈을 맞춰주고 막대사탕을 건네주는 찰스였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울던 아이가 찰스가 건넨 사탕을 보며, 피시시 웃는 것을 찍었습니다. 표정이 작게 찍혔어도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이런 사진은 몇 컷 찍지 않았는데도 건진 사진이에요. 순발력, 순발력이죠.



 

동네 어린이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찰스의 모습. 그의 따뜻함과 푸근함이 그립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도 찰스가 생각납니다. 사실 그가 갖고 있던 정서와 푸근함이 그립습니다. 탄자니아 시골 마을을 함께 거닐며, 그가 가진 깊은 통찰과 시선, 어른이나 아이 상관없이 아우를 줄 아는 아버지와 같은 넉넉한 품성이 그립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현대화된 속에서 잃어버리고 있던 무언가를 그에게서 본 것 같아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요즘처럼 서로의 온기와 따뜻한 시선이 더욱 필요한 때라면 말입니다.

 





[출처: 중앙일보] 탄자니아 소년과 해바라기, 수많은 사진서 건진 한 컷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되고 있습니다.

 

  

 

 

 

킬리만자로 공항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탄자니아 아루샤 지역 소도시에서 만난 한 아이의 모습. 해바라기에 코를 파묻고 꽃 향기를 맡고 있다.
  
  

고전영화 중에 ‘25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전쟁의 비극을 담은 영화인데 해바라기밭이 끝없이 펼쳐진 이미지의 충격 같은 게 있었죠. 그런데 바로 그런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을 탄자니아에서 만났습니다. 


킬리만자로 방문자들이 많아져 형성된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만났죠. 이 동네가 옥수수와 해바라기가 정말 많았습니다. 옥수수는 식용이 아니었고 해바라기도 화훼용이 아니었습니다. 기름을 짜기 위한 농작물이었습니다. 하루종일 해바라기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종종 어린 아이들이 일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가 물기를 머금고 있던 해바라기밭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걸어가고 있더라고요. 꽃잎마다 빗물이 맺혀 있고 비를 맞으면서 아이들이 즐거워했죠. 수많은 사진을 찍었고, 나중에 그중 한장의 사진을 선택했습니다. 선택의 기준은 동심이었어요. 장난스러울 수 있지만 해바라기가 얼굴로 느껴지고, 아이가 꽃과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컴패션 트립을 가면 3일 동안 보통 2000~2500컷 정도의 사진을 찍어요. 하루 일정이 보통 5시간인데 밥 먹는 시간 빼면 4시간 동안 그만큼 열심히 찍는 겁니다. 그렇게 해도 건질 때도 있고 못 건질 때도 있지요. 한장 찍은 사람과 백장 찍은 사람은 당연히 사진의 완성도와 자신감에서 전혀 달라집니다. 그리고 제 의도는 이 수천장의 사진 중에 어떤 사진을 선택하는 가에서 드러나죠.



 

해바라기 밭에서 찍은 수십 장의 사진 중 고른 한 장의 사진.



 

어디에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피카소의 한 추상화를 보면서 누가 그에게 말했답니다. “이런 그림은 내가 눈감고도 얼마든지 그리겠다”라고. 피카소가 그 사람한테 보여줄 게 있다고 하면서 어디론가 데려갔다고 합니다. 그것은 화실이었고 그 안에 캐비닛을 열어서 보여주는데,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한 스케치가 캐비닛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천재 작가 피카소도 어떻게 보면 막 그린 듯한 추상화이지만, 수많은 습작 가운데 하나를 내놓는 것이지 그냥 막 기분 내키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있었는데 왜 자기가 찍은 사진과 제가 찍은 사진이 다르냐고 묻곤 합니다. 칭찬으로 들린다기보다는,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 많이 찍는 것이 잘 찍는 법이라고요.
 

 

우리나라 1세대 사진작가 중에 임응식 작가가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종군기자도 했죠. 대학 때 이분께 배웠는데 수업 시간에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지금은 폐간됐지만, 미국에 라이프지라는 강력한 사진 시사 잡지가 있었어요. 이 잡지의 창간호를 찍었을 만큼 전설적인 사진가 마거릿 버크화이트가 한국전쟁 후 모습을 찍으려고 파견을 왔어요. 임 작가가 안내를 맡았다고 그래요. 그런데 버크화이트가 엄청나게 큰 뷰 카메라를 가지고 정말 많이 찍더래요. 그래서 “당신처럼 많이 찍으면 자기도 잘 찍겠다”고 했더랍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대요. “나는 이렇게 많이 찍어도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을 못 건질 때가 있는데, 당신은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요. 피카소 일화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지요.


 

사진을 많이 찍는 평소 훈련이 현장에서 많이 찍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지요. 많이 찍으면 선택할 수 있는 눈을 키워줍니다. 영화가 편집하는 행위로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고 스토리가 완성되는 것처럼, 사진도 선택을 통해 의도를 드러내죠. 하지만, 많이 찍는 것뿐 아니라 그 훈련 속에서 길러진 순발력도 사진가에게는 필요한 덕목입니다.



 

마사이족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어린아이. 흙바닥을 뒹굴며 울던 아이는 컴패션 직원, 찰스가 건네 준 사탕을 받아 들고 금방 울음을 멈췄다.


 

길에서 울고 있던 아이를 꼭 안아주는 찰스의 모습.



 

가끔 현지 컴패션 직원이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데 어떤 사람이 오는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탄자니아 마사이족 동네에 갔을 때, 찰스라는 직원이 왔어요.
 

 

찰스는 굉장히 후덕함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동네에서 어른으로 대해주더라고요. 덕담도 하고 족장이나 동네 어른들하고 너스레를 하면서, 분위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우리 역시 환대받는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었죠. 처음 보는 길거리 아이를 안아주고 눈을 맞춰주고 막대사탕을 건네주는 찰스였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울던 아이가 찰스가 건넨 사탕을 보며, 피시시 웃는 것을 찍었습니다. 표정이 작게 찍혔어도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이런 사진은 몇 컷 찍지 않았는데도 건진 사진이에요. 순발력, 순발력이죠.



 

동네 어린이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찰스의 모습. 그의 따뜻함과 푸근함이 그립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도 찰스가 생각납니다. 사실 그가 갖고 있던 정서와 푸근함이 그립습니다. 탄자니아 시골 마을을 함께 거닐며, 그가 가진 깊은 통찰과 시선, 어른이나 아이 상관없이 아우를 줄 아는 아버지와 같은 넉넉한 품성이 그립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현대화된 속에서 잃어버리고 있던 무언가를 그에게서 본 것 같아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요즘처럼 서로의 온기와 따뜻한 시선이 더욱 필요한 때라면 말입니다.

 





[출처: 중앙일보] 탄자니아 소년과 해바라기, 수많은 사진서 건진 한 컷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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