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컴패션현장

에버렛 스완슨, 한 사람으로부터 컴패션

  • 작성일 2022-11-03

   

  

에버렛 스완슨, 한 사람으로부터 컴패션

  

  

 

  

[사진=컴패션]

  

  

  

  

컴패션은 한국에서 시작됐습니다.

지금 컴패션을 통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흘러가고 있는 사랑,

 

그 시작에는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진정으로 사랑했던 한 사람,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있었습니다.

 

 

 

  

ㅣ한 사람의 순종으로

  

    

   

[사진=컴패션]

  

   

  

   

에버렛 스완슨 목사는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10대 후반부터 설교를 시작했고, 20대 초반에는 결혼 후에도 캠핑카에서 지내며 미국 전역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렵게 사역했지만 항상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시카고의 한 교회로부터 담임목사직을 초청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안정적인 목회 사역을 10여 년 넘게 섬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더 위대한 일을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부르심 앞에서 스완슨 목사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과 진실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며 치열하게 기도한 끝에 일어나 5가지 기도 제목을 정리했습니다. 매우 실제적인 기도였고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의지함과 부르심에 대한 순종의 마음이 단호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게 스완슨 목사는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때가 1950년, 스완슨 목사는 36세였습니다.

    

    

   

[기도제목 5가지]

   

  1. 전 세계 어느 곳이든 풀타임 전도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다.
  2. 1951년 1월 1일부 사임을 위해, 9월 10일 현재 목회에서 사직한다.
  3. 나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채우실 것을 신뢰한다. (빌립보서 4:19)
  4. 하나님께서 나의 가족을 영적, 신체적, 물질적으로 지켜 주실 것을 신뢰한다.
  5. 믿지 않는 자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부흥을 위해 기도하며 내 노력을 배가한다.

  

  

    

스완슨 목사는 정리한 기도 제목을 바로 실천했습니다. 그다음 해에 목회에서 사임하고 하나님의 이끄심에 따라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 해 동안 일본, 중국, 홍콩, 필리핀, 인도, 에티오피아, 파키스탄, 한국까지 수많은 나라를 다니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만났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ㅣ절박한 사랑을 받은, 한국

    

   

    

한국 전쟁 당시 어린이들의 모습 [사진=컴패션]

  

  

  

  

한국전쟁 소식을 듣고 전장에 선 젊은이들을 향한 애타는 마음에 한국으로 달려왔습니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의 최전선에까지 들어가 사역하던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길거리에서 천막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예배드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고 스완슨 목사는 몸을 아끼지 않고 설교하고 집회를 열었습니다. 전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전하던 그가 한국에 주목하게 된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전쟁 속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전쟁고아들과 과부들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 담겼습니다. 특히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집도 없이 떠돌아 다녔고, 더러운 깡통을 들고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을 따라와서 구걸을 하는 어린이들도 많았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처참한 어린이들의 모습이 머리와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한국의 어느 날 새벽녘, 군용 트럭이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었습니다. 스완슨 목사는 쓰레기 중에 어린이의 시신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부들에게 이는 쓰레기가 아니라 어린이였다고 말리려던 순간, 차에 가득했던 것이 어린이들이었던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일 쓰레기를 치운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겨울을 못 버티고 추위와 굶주림에 생명이 다한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참혹한 전쟁의 단면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느끼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스완슨 목사의 귓가에 강렬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한 가지 질문이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게 다가왔습니다.

  

  

  

  

[사진=컴패션]

 

 

 

“너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이냐?”

  

  

  

그때 한국을 직접 보고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계속해서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거대한 필요와 거대한 기회가 눈앞에 있었지만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었기에 그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앞으로 한국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천 달러 수표가 전해졌습니다. 명백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한 사람으로 부름받은 순간이었습니다.

  

  

 

  

ㅣ텅 빈 ‘깡통’에서 시작된 희망

  

   

  

[사진=컴패션]

  

  

  

  

스완슨 목사는 미국 전역을 돌며 ‘깡통’을 들고 설교했습니다. 한국에 방문했을 당시 자신의 옷과 지갑을 훔친 한국 어린이가 버리고 간 깡통이었습니다. 깡통은 스완슨 목사에게는 쓰레기가 아니었습니다. 깡통은 한국의 전쟁고아들이 유일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깡통을 들고 다니는 어린이들을 위해, 이 어린이들을 하나님 품에 안겨 드리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곳곳에서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952년 10월, 본격적으로 한국 어린이를 돕기 위한 사역이 시작됐습니다. 받았던 천 달러 수표로 전쟁고아들을 위한 보육원 ‘신애원’을 강원도 삼척에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보육원을 통해 쌀과 연료 등 일차적인 필요를 지원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어린이들을 돌보던 그는 어린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실질적인 부모님의 사랑이 가장 필요했습니다.

   

  

  

  

선물과 사진을 보내준 후원자에게 전달할 사진을 찍은 어린이들 [사진=컴패션]

   

    

  

   

1954년, 스완슨 목사는 한국의 전쟁고아들과 미국의 후원자들을 연결해 주는 1:1 결연 프로그램을 고안했습니다. 미국에 한국 어린이들의 사진과 소개를 보냈고, 미국의 후원자들은 어린이들의 손을 잡으며 가족이 되어 주었습니다. 후원자는 어린이에게 매월 2~3달러를 지원하고 편지와 선물도 보내며, 사랑을 나눴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은 후원자에게 영적 부모, ‘영친’이라는 말로 감사와 사랑을 담은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비로소 마음의 결핍을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 어린이들을 왜 도와야 하죠?”

“하나님은 천국에 우리만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실 거예요.”

  

  

  

미국에 있는 후원자님들이 모두 생활이 넉넉해서 어린이를 후원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는 미국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인 한국의 어린이를 후원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스완슨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백인들만 있는 것을 바라시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한국의 어린아이들이 미국의 후원자들을 통해 천국으로 오게 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의 어려움과 결핍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알렸습니다.

  

그의 대답은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한국의 어린이를 결연하면서, 후원자도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워지게 됐습니다. 그들은 한국 어린이들을 후원하며 경험하게 된 삶의 의미와 큰 기쁨을 고백했습니다.  

  

   

  

  

ㅣ한국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긍휼

  

  

    

한국 어린이와 에버렛 스완슨 목사 [사진=컴패션]

  

  

  

  

스완슨 목사는 한국의 어린이들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이 처음 보는 외국인의 모습에 놀랄까 봐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갓을 쓰고 도포도 입으면서 어린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스완슨 목사의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통로가 되어, 어둠 속에 있던 한국 땅에 전해졌습니다.

 

한국의 전쟁고아들은 보육원을 통해 안정적으로 먹을 것, 입을 것을 받고 지낼 곳이 생겼으며, 정기 건강검진 혜택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미래가 될 어린이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양육하기 위해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한 어린이를 위한 전인적 양육의 기초가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한국 땅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그날을 기대하며, 수많은 전도사를 양육하고, 교회 개척도 도왔습니다. 

   

  

   

  

 

후원자에게 전달한 ‘WARM 프로젝트’를 통해 겨울옷을 받은 한국 어린이들의 사진 [사진=컴패션]

   

 

  

   

1960년대 초에는 추운 겨울에 쉽게 동상에 걸리는 한국 어린이들을 위해 WARM(Winter Aid Relief Money, 겨울 구호) 프로젝트을 시작했습니다. 누구보다 시린 겨울을 보내는 어린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한 사랑으로 녹이기 위해, 후원자들은 후원금과 함께 겨울옷, 장갑, 속옷 등을 전달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Jesus called his disciples to him and said, "I have compassion for these people;

they have already been with me three days and have nothing to eat.

I do not want to send them away hungry, or they may collapse on the way.

      

 마태복음 15:32 (개역개정, NIV)

   

  

  

1963년, 마태복음 말씀에서 영감을 받아 기관명을 ‘컴패션(compassion)’으로 정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그대로 담은 이름이었습니다.

   

한국 땅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긍휼은, 사역을 시작한 지 약 10년 만에 1백여 개의 보육원에서 1만 명의 어린이가 1:1 결연을 통해 양육을 받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또한 한센병 환자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 과부들을 위한 시설, 청각·시각·언어 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과 직업 훈련을 위한 학교 등을 세웠습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소외된 자들에게 손을 뻗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안아주었습니다. 한국을 위해 헌신한 공을 인정받아, 스완슨 목사는 윤보선 전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윤보선 전 대통령과 에버렛 스완슨 목사의 기념 사진 [사진=컴패션]

  

  

  

  

ㅣ온 힘과 마음을 다 쏟은 사역

     

     

스완슨 목사는 오로지 한국 어린이들을 위해 전심으로 달렸습니다. 자신의 열정과 아이디어를 전부 한국 어린이들이 온전하게 설 수 있도록 헌신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더욱 귀하게 열매 맺도록 해주셨습니다.

 

1965년, 컴패션이 사역을 시작한 지 13년째에 전국 170개 보육원에 있는 2만여 명의 어린이를 돌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매일 10만 끼 이상의 식사를 지원했으며, 의식주 외에도 어린이와 가정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교육, 직업학교, 농사도 지원했습니다. 게다가 379명의 사역자들이 교회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모든 사역을 위해 매년 약 2백만 달러가 사용됐습니다.

   

  

  

   

[사진=컴패션]

 

 

    

처음 이 사역을 시작했을 때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고,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필요한 모든 것들이 채워졌습니다.

  

지금 뒤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아름답게 인도하시고 공급하셨는지 모릅니다!

 

에버렛 스완슨 목사

(1913-1965, 컴패션 창립자)

  

 

  

  

그 해 에버렛 스완슨 목사는 투병 끝에, 51세의 나이로 하나님 곁으로 가게 됩니다. 스완슨 목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 어린이들을 위해 살고 싶어 했습니다. 몸이 아픈 가운데에서도 미국 후원자들이 한국 어린이들을 만나는 첫 번째 컴패션 비전트립을 준비하였고 직접 인솔하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몸은 날로 약해져 갔지만, 그의 사랑과 믿음은 어느 때보다 강력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비전트립에 합류할 수 없게 되었고 그는 공항까지 나와 그들을 배웅하였습니다. 미국 후원자들이 한국에서 후원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는 동안 스완슨 목사는 천국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삶의 마지막을 한국 어린이들 곁에 있고자 했던 한 사람의 사랑은 예수님으로부터 온 사랑이었습니다. 가장 힘겹고 어려운 시절, 에버렛 스완슨 목사님처럼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던 수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을 통해 우리가 받은 축복에 감사드립니다.

 

   

 

  

[사진=한국컴패션]

   

  

  

   

에버렛 스완슨 목사,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컴패션.

 컴패션을 통해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역사.

 

그렇게 이어진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으며,

우리 안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당신으로부터, 컴패션.

이제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전 세계에 흘러갑니다.

 

 

  

  

  

 

  

     

    

에버렛 스완슨,

한 사람으로부터 컴패션

  

  

 

   

[사진=컴패션]

   

   

   

   

컴패션은 한국에서 시작됐습니다.

지금 컴패션을 통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흘러가고 있는 사랑,

  

그 시작에는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진정으로 사랑했던 한 사람,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있었습니다.

 

 

 

   

ㅣ한 사람의 순종으로

   

    

    

[사진=컴패션]

  

   

  

   

에버렛 스완슨 목사는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10대 후반부터 설교를 시작했고, 20대 초반에는 결혼 후에도 캠핑카에서 지내며 미국 전역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렵게 사역했지만 항상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시카고의 한 교회로부터 담임목사직을 초청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안정적인 목회 사역을 10여 년 넘게 섬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더 위대한 일을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부르심 앞에서 스완슨 목사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과 진실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며 치열하게 기도한 끝에 일어나 5가지 기도 제목을 정리했습니다. 매우 실제적인 기도였고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의지함과 부르심에 대한 순종의 마음이 단호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렇게 스완슨 목사는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때가 1950년, 스완슨 목사는 36세였습니다.

     

     

  


  

[기도제목 5가지]

   

  1. 전 세계 어느 곳이든 풀타임 전도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다.
  2. 1951년 1월 1일부 사임을 위해, 9월 10일 현재 목회에서 사직한다.
  3. 나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채우실 것을 신뢰한다. (빌립보서 4:19)
  4. 하나님께서 나의 가족을 영적, 신체적, 물질적으로 지켜 주실 것을 신뢰한다.
  5. 믿지 않는 자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부흥을 위해 기도하며 내 노력을 배가한다.

  


   

   

 

스완슨 목사는 정리한 기도 제목을 바로 실천했습니다. 그다음 해에 목회에서 사임하고 하나님의 이끄심에 따라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 해 동안 일본, 중국, 홍콩, 필리핀, 인도, 에티오피아, 파키스탄, 한국까지 수많은 나라를 다니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만났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ㅣ절박한 사랑을 받은, 한국

    

   

  

한국 전쟁 당시 어린이들의 모습 [사진=컴패션]

   

   

  

   

한국전쟁 소식을 듣고 전장에 선 젊은이들을 향한 애타는 마음에 한국으로 달려왔습니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의 최전선에까지 들어가 사역하던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길거리에서 천막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예배드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고 스완슨 목사는 몸을 아끼지 않고 설교하고 집회를 열었습니다. 전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전하던 그가 한국에 주목하게 된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전쟁 속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전쟁고아들과 과부들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 담겼습니다. 특히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집도 없이 떠돌아 다녔고, 더러운 깡통을 들고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을 따라와서 구걸을 하는 어린이들도 많았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처참한 어린이들의 모습이 머리와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한국의 어느 날 새벽녘, 군용 트럭이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었습니다. 스완슨 목사는 쓰레기 중에 어린이의 시신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부들에게 이는 쓰레기가 아니라 어린이였다고 말리려던 순간, 차에 가득했던 것이 어린이들이었던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일 쓰레기를 치운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겨울을 못 버티고 추위와 굶주림에 생명이 다한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참혹한 전쟁의 단면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느끼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스완슨 목사의 귓가에 강렬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한 가지 질문이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게 다가왔습니다.

   

  

  

  

[사진=컴패션]

 

 

 

“너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이냐?”

   

  

  

그때 한국을 직접 보고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계속해서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거대한 필요와 거대한 기회가 눈앞에 있었지만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었기에 그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앞으로 한국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천 달러 수표가 전해졌습니다. 명백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한 사람으로 부름받은 순간이었습니다.

  

  

  

    

ㅣ텅 빈 ‘깡통’에서 시작된 희망

  

  

  

[사진=컴패션]

  

  

  

  

스완슨 목사는 미국 전역을 돌며 ‘깡통’을 들고 설교했습니다. 한국에 방문했을 당시 자신의 옷과 지갑을 훔친 한국 어린이가 버리고 간 깡통이었습니다. 깡통은 스완슨 목사에게는 쓰레기가 아니었습니다. 깡통은 한국의 전쟁고아들이 유일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깡통을 들고 다니는 어린이들을 위해, 이 어린이들을 하나님 품에 안겨 드리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곳곳에서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952년, 본격적으로 한국 어린이를 돕기 위한 사역이 시작됐습니다. 우선 받았던 천 달러 수표로 전쟁고아들을 위한 보육원 ‘신애원’을 강원도 삼척에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보육원을 통해 쌀과 연료 등 일차적인 필요를 지원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어린이들을 돌보던 그는 어린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실질적인 부모님의 사랑이 가장 필요했습니다. 

    

   

  

    

선물과 사진을 보내준 후원자에게 전달할 사진을 찍은 어린이들 [사진=컴패션]

   

    

  

   

1954년, 스완슨 목사는 한국의 전쟁고아들과 미국의 후원자들을 연결해 주는 1:1 결연 프로그램을 고안했습니다.

   

미국에 한국 어린이들의 사진과 소개를 보냈고, 미국의 후원자들은 어린이들의 손을 잡으며 가족이 되어 주었습니다. 후원자는 어린이에게 매월 2~3달러를 지원하고 편지와 선물도 보내며, 사랑을 나눴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은 후원자에게 영적 부모, ‘영친’이라는 말로 감사와 사랑을 담은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비로소 마음의 결핍을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 어린이들을

왜 도와야 하죠?

 

하나님은 천국에 우리만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실 거예요.

  

  

  

미국에 있는 후원자님들이 모두 생활이 넉넉해서 어린이를 후원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는 미국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인 한국의 어린이를 후원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스완슨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백인들만 있는 것을 바라시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한국의 어린아이들이 미국의 후원자들을 통해 천국으로 오게 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의 어려움과 결핍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알렸습니다.

  

그의 대답은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한국의 어린이를 결연하면서, 후원자도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워지게 됐습니다. 그들은 한국 어린이들을 후원하며 경험하게 된 삶의 의미와 큰 기쁨을 고백했습니다.    

 

   

   

  

  

ㅣ한국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긍휼

  

  

  

한국 어린이와 에버렛 스완슨 목사 [사진=컴패션]

    

 

  

  

스완슨 목사는 한국의 어린이들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이 처음 보는 외국인의 모습에 놀랄까 봐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갓을 쓰고 도포도 입으면서 어린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스완슨 목사의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통로가 되어, 어둠 속에 있던 한국 땅에 내려왔습니다.

  

한국의 전쟁고아들은 보육원을 통해 안정적으로 먹을 것, 입을 것을 받고 지낼 곳이 생겼으며, 정기 건강검진 혜택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미래가 될 어린이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양육하기 위해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때부터 한 어린이를 위한 전인적 양육의 기초가 시작된 것입니다. 또한 한국 땅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그날을 기대하며, 수많은 전도사를 양육하고, 교회 개척도 도왔습니다.

   

  

 

  

 

후원자에게 전달한 ‘WARM 프로젝트’를 통해 겨울옷을 받은 한국 어린이들의 사진 [사진=컴패션]

   

 

  

   

1960년대 초에는 추운 겨울에 쉽게 동상에 걸리는 한국 어린이들을 위해 WARM(Winter Aid Relief Money, 겨울 구호) 프로젝트을 시작했습니다.

  

누구보다 시린 겨울을 보내는 어린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한 사랑으로 녹이기 위해, 후원자들은 후원금과 함께 겨울옷, 장갑, 속옷 등을 전달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Jesus called his disciples to him and said,

"I have compassion for these people;

they have already been with me three days

and have nothing to eat.

I do not want to send them away hungry,

or they may collapse on the way.

   

마태복음 15:32 (개역개정, NIV)

    


 

 

 

1963년, 마태복음 말씀에서 영감을 받아 기관명을 ‘컴패션(compassion)’으로 정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그대로 담은 이름이었습니다.

   

한국 땅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긍휼은, 사역을 시작한 지 약 10년 만에 1백여 개의 보육원에서 1만 명의 어린이가 1:1 결연을 통해 양육을 받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또한 한센병 환자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 과부들을 위한 시설, 청각·시각·언어 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과 직업 훈련을 위한 학교 등을 세웠습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소외된 자들에게 손을 뻗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안아주었습니다.

 

한국을 위해 헌신한 공을 인정받아, 스완슨 목사는 윤보선 전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윤보선 전 대통령과 에버렛 스완슨 목사의 기념 사진 [사진=컴패션]

  

  

  

  

ㅣ온 힘과 마음을 다 쏟은 사역

    

   

스완슨 목사는 오로지 한국 어린이들을 위해 전심으로 달렸습니다. 자신의 열정과 아이디어를 전부 한국 어린이들이 온전하게 설 수 있도록 헌신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더욱 귀하게 열매 맺도록 해주셨습니다.

 

1965년, 컴패션이 사역을 시작한 지 13년째에 전국 170개 보육원에 있는 2만여 명의 어린이를 돌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매일 10만 끼 이상의 식사를 지원했으며, 의식주 외에도 어린이와 가정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교육, 직업학교, 농사도 지원했습니다. 게다가 379명의 사역자들이 교회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모든 사역을 위해 매년 약 2백만 달러가 사용됐습니다.

  

  

  

   

[사진=컴패션]

 

 

    

처음 이 사역을 시작했을 때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고,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필요한 모든 것들이 채워졌습니다.

  

지금 뒤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아름답게 인도하시고

공급하셨는지 모릅니다!

 

에버렛 스완슨 목사

(1913-1965, 컴패션 창립자)

  

 

  

  

그 해 에버렛 스완슨 목사는 투병 끝에, 51세의 나이로 하나님 곁으로 가게 됩니다.

 

스완슨 목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 어린이들을 위해 살고 싶어 했습니다. 몸이 아픈 가운데에서도 미국 후원자들이 한국에 방문해서 어린이들을 만나는 첫 번째 컴패션 비전트립을 준비하였고 직접 인솔하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몸은 날로 약해져 갔지만, 그의 사랑과 믿음은 어느 때보다 강력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비전트립에 합류할 수 없게 되었고 그는 공항까지 나와 그들을 배웅하였습니다. 미국 후원자들이 한국에서 후원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는 동안 스완슨 목사는 천국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삶의 마지막을 한국 어린이들 곁에 있고자 했던 한 사람의 사랑은 예수님으로부터 온 사랑이었습니다.

 

가장 힘겹고 어려운 시절, 에버렛 스완슨 목사님처럼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던 수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을 통해 우리가 받은 축복에 감사드립니다.

 

   

 

  

[사진=한국컴패션]

   

  

  

   

에버렛 스완슨 목사,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컴패션.

 컴패션을 통해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역사.

 

그렇게 이어진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으며,

우리 안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당신으로부터, 컴패션.

이제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전 세계에 흘러갑니다.

 

  

  

   

   

댓글
0 / 300자

최신 콘텐츠

  • 2024-05-13

가난 속에서도 꽃처럼 피어난 어린이들의 웃음에 매료돼 18년째 컴패션 아이들의 미소를 사진에 담고 있는 38년차 허호 사진작가가 들려주는 인생 여행기.

  • 2024-05-01

가난과 열악한 환경 속 자신의 미래를 가두지 않는 어린이들, 그들이 마주할 세상이 봄처럼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5월도 전 세계 29개국 컴패션 어린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세요.

  • 2024-04-30

어린 시절의 원망과 상처가 기쁨의 노래로 변화하기까지, 주영훈 후원자가 전하는 크리스천의 삶, 지금 컴패션 인터뷰 시리즈 [그사세✝]에서 만나보세요!

안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페이지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안내

삭제하시겠습니까?

뉴스레터 구독

이메일
이메일주소

인증코드 메일이 발송되었습니다.

이메일주소를 입력해주세요.

이메일주소를 정확히 입력해주세요.

입력하신 이메일에서 인증코드를 클릭하여 인증 후 인증확인 버튼을 눌러주세요.

인증 완료되었습니다.

인증코드를 클릭하여 인증해주세요.

정보수집 및 약관동의
이용목적 수집항목 보유기간
컴패션 소식 및 이벤트/캠페인 안내를 위한 이메일 발송 이메일 회원탈퇴 시 또는 제공동의 철회 시까지

※동의하지 않을 시 입력하신 정보는 즉시 파기되며, 동의 거부 시 뉴스레터를 수신할 수 없습니다.

컴패션 소식 및 이벤트/캠페인 수집 및 이용 동의 여부에 체크해주세요.

컴패션 소식 및 이벤트/캠페인 수집 및 이용 미동의 시
뉴스레터 구독신청을 할 수 없습니다

안내

OOO 후원자님,

혹시 이전에도 회원가입을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후원자님 정보와 일치하는 계정이 확인되었습니다.

컴패션은 보다 나은 후원서비스 제공을 위해
후원정보 통합에 대한 안내를 드리고 있습니다.

후원정보 통합 안내 서비스를 신청하시겠습니까?

(관련문의 : 02-740-1000)

안내

통합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처리완료까지 3~4일의 시간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빠른 처리를 원하실 경우 한국컴패션으로 전화 부탁 드립니다. (02-740-1000)

안내

통합 신청이 실패되었습니다.

1:1문의하기로 관련 내용을 남겨 주시면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내

후원금 결제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모바일웹 또는 PC에서 결제해 주시면, 소중한 후원금 어린이에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관련문의 02-740-1000 (평일 9시~6시)

안내

'후원정보 확인 요청' 신청이 접수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 후 연락 드리겠습니다.

(영업일 기준 1~2일 내)

로딩중

주소검색

검색어 예 : 도로명(반포대로 58), 건물명(독립기념관), 지번(삼성동 25)

안내

찜한 후원에 담았습니다.

안내

안내

찜한 후원을 먼저 진행해주세요.
(1:1 어린이양육 : 최대 5명, 1:3 같이양육 : 최대 1회, 양육보완후원 : 최대 5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