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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한국컴패션] 17년을 한결같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

  • 작성일 2023-04-07

  

[스무 살, 한국컴패션]

17년을 한결같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

   

   

- 김고은 • 이홍석 후원자 -

  

  

  

  

서울 성수동에서 ‘쓰리캣메이커리’ 나무 도마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홍석 후원자(좌), 통역사로 활약하는 아내 김고은 후원자(우)

 

 

 

 

이홍석 후원자(63세)와 김고은 후원자(57세)가

컴패션과 함께한 지 벌써 17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위대하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요.

부부가, 그리고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걸었던 그 길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컴패션이 함께 했던 긴 시간, 그 길이 크고 넓은 대로가 아니라,

소담하고 정겨운 오솔길이 될 수 있어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컴패션보다 먼저 만난 하나님

 

 

 

김고은  남편이 무슨 '밴드'를 한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잘 모르고 잘해 보라고 그랬죠. (웃음)

 

이홍석  제가 먼저 컴패션에 왔고 아내에게 소개해서 같이 컴패션밴드 활동을 했어요.

 

김고은  남편이 컴패션밴드한다고 맨날 늦게 들어왔는데, 모임 마치고 와서 우리를 붙들고 하나님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이홍석  처음에는 성경공부 모임으로 시작했어요. 알고 보니 그게 컴패션이었어요. 얼마 안 있다, 동인도 비전트립 간다고 그래서 빚 내서 갔죠. 

 

김고은  남편이 사업하던 게 크게 실패하고 힘들 때였거든요.

 

이홍석  2006년 4월에 인도 콜카타로 가는 컴패션 비전트립을 갔더니 거기 배우 차인표 후원자가 와 있었어요. 초창기 컴패션밴드, 애드보킷 멤버들이었죠.

 

 

 

  

2006년 결성된 컴패션밴드는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이 사랑으로 양육 받을 수 있도록, 공연과 봉사활동으로 재능을 나누는 100% 자원봉사 모임입니다. 총 5백 회 이상 재능기부로 공연했고, 3만 5천명 어린이들이 이들의 재능기부로 후원자를 만났습니다.

  

  

  

 

이홍석  그때, 차인표 씨가 처음 이틀 동안은 방에서 안 나왔어요. 삼 일째 되는 날인데, 저녁마다 나눔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나와서 이야기하더라고요. ‘참 오기 싫었는데 아내가 못 간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대신 왔다’고요. 낮에, 어린이들을 만나는데 비전트립 인솔자이신 한국컴패션 대표 서정인 목사님이 인표 씨한테 애들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고 안아 달라고 안아주라고 해서, 그건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대요. 아이의 손을 잡은 순간, 40년 동안 만나고 듣고 싶었던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다고요. “인표야, 반갑다. 사랑한다."고요.

 

트립 갔다 와서 얼마 후에, 차인표 후원자한테 전화가 왔어요. “감독님, 감독님! 현지 가면, 애들이 우리를 위해서 노래하고 춤추는데 우리도 애들 위해서 노래하고 춤추려고요. 같이 하시겠습니까?” 

  

  

 

  

2009년, 컴패션밴드 1집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위는 앨범 내지에 수록된 이홍석 후원자가 찍은 아이티 비전트립 현장 사진. 차인표 후원자는 앨범에 컴패션 동인도 비전트립 이후 달라진 삶을 적어 놓았습니다. 그 이야기 중 트립에 동행한 사람들에 대해 ‘사업이 망해 도망치듯 온 사람’도 있었다고 했는데, 이홍석 후원자였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았어!”

 

 

 

이홍석  사실 저도 그 트립에서 차인표 씨와 같은 경험을 했어요. 사업은 완전히 실패했고 많이 힘들었거든요. 하나님하고 일대일 관계가 만들어졌죠. 교회 특별 새벽 기도회를 두 번 완주하고 성경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매일 밤 밴드에서 신나서 하나님 이야기하고 집에 들어오면 두 딸이 놀라서 아빠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하고요.

 

김고은   남편이 인도 갔다 와서 처음 저한테 한 얘기가 지금도 기억나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았어! 발견했어!” 저도 조금씩 스며들었고 특히 남편이 변화되는 걸 보니까, 더 확신이 섰죠. 

 

이홍석   아내한테 처음으로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그때 들었어요. 하나님 앞에 똑바로 선 것도 아니고 그냥 똑바로 서려고 하는 절 보고 그렇게 말해 주더라고요.

 

김고은  온 가족이 컴패션에 매진하게 되었어요. 그 시간들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은 없어요. 

 

  

  

 

컴패션밴드는 선데이마다 특송과 간증으로 예배를 섬기며 어린이들의 손을 잡아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이홍석 후원자와 김고은 후원자는 매 행사 뒤에서 현장을 섬겼고 사진 촬영으로도 함께했습니다. 2012년, 직접 찍은 ‘신림동 아름다운 교회‘ 컴패션 선데이 사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름진 손에 들린 꾸깃꾸깃한 돈 몇 만 원과

갈변 되고 군내 나는 밥

 

 

 

이홍석  처음 동인도 갔었을 때, 어쩌다 보니까, 서정인 대표님하고 둘이 있게 되었어요. 나도 모르게 대표님에게 말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쓰레기를 주어서라도 컴패션하고 하고 싶다고요. 그후에 행사가 정말 많았어요. 뒷정리하면서 쓰레기 많이 주웠죠. (웃음) 밴드에 유명인들이 많이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누구 하나, 유명인이라고 생색내는 법이 없었어요. 다 같이 궂은일 하고 뒷정리까지 안 빠지고 했죠. 정말 보기 좋았어요. 그런데 정말 기억에 남는 건, 그런 유명인 분들이 아니에요.

 

이홍석  거의 매주 주일에 컴패션밴드랑 컴패션 선데이 예배를 갔었어요. 서울 어느 작은 교회에 갔던 때였는데 신림동 개발 안 된 동네였어요. 다들 어렵고 고시촌 많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많이 사시는 곳이요. 성도님들이 정말 많이 후원해 주셨어요. 한 할머니가 1만 원짜리 몇 장을 꼬깃꼬깃해 쥐여 줬어요. 결연은 못하겠으니 그걸로라도 도와달라고요. 

 

이홍석   2009년에 아이티로 간 비전트립도 기억에 남아요. 현장에서 밥을 먹는데, 밥이 간장하고 버터에 볶은 것 같았어요. 한 숟갈 딱 쓰는데 욱, 헛구역질이 나서 못 넘기겠는 거예요. 간장이 아니라 쌀을 너무 오래된 걸 써서 갈변된 거였어요. 군내가 났던 거죠. 옆에서 아내가 울고 있었어요. 아내가 보라고 하는데, 창가에 애들이 옹기종기 보고 있는 거예요. 저 아이들, 밥 안 먹었냐고 물어봤더니 그때 너무 어려워서 매일 못 주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 못 먹는 날이었던 거죠. 애들이 하루 종일 굶은 거예요. 배는 고픈데 냄새가 솔솔 나니까 몰려든 거였어요. 그 애들 앞에서 숟가락 내려놓을 수 없잖아요. 꾸역꾸역 다 먹었어요. 그래도 밥이 많이 남았어요. 선생님이 애들 데리고 들어와서 먹이는데 애들이 너무너무 맛있게 먹는 거예요. 

 

김고은  그때가 곡물값이 올라서 후원금 인상했을 때였어요.

 

 

 

  

2009년 아이티에서.

 

 

 

 

 

 

멈출 수 없던 발걸음과 커다란 선물

 

 

 

이홍석  생명을 살리는 일이 바로 후원이잖아요. 정말 중요하잖아요. 멈출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을 집으로 데려와서 많이 먹였어요. 우리끼리 ‘컴패션 나이트’라고 이름 붙였는데, 많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적게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사람들을 불러서 일단 밥을 해 먹였어요. 

 

이홍석  집에 컴패션 관련 물품이 많이 있거든요. 그거 보고, 호기심을 갖거나 예의상 “저거 뭐예요?” 물어보면, 기회를 잡은 거지요. “컴패션이라는 데가 있는데...”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요. 못다하면 다음에 또 만나고. 그러다 보면 결연서에 사인하시는 거죠. 결연서는 항상 집에 있으니까요. 사인받아서 컴패션 사무실에 갖다 주고 그랬어요.

 

김고은  남편이 노트북을 켜고 본격적으로 현지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서 쭉 보여주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웃음) 처음에는 해외여행 사진인가 보다 하는 거죠.  

   

이홍석  2008년인가, 정혜영 후원자가 필리핀 갔다 오면서, 집을 사는 대신 100명 어린이 후원한다고 했잖아요. 그거 보고 정말 도전이 되더라고요. 제가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데, 그만큼 후원할 수가 없잖아요. 기도했어요. 아이디어를 주시더라고요. 어린이를 100명 후원할 수는 없어도, 후원자를 100명을 만들면 되겠다는. 그해 열심히 했는데, 첫해에 118명이 후원을 해주셨어요. 그 뒤로는 몇 명이나 후원에 동참하게 했는지 세어보지 않았어요.

 

이홍석  아내는 통역으로도 많이 섬겼어요. 미국에서 국제컴패션 총재가 오셨는데 통역이 필요했었어요. 그때 아내가 외국 출장 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출장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어요.

 

김고은  그게 너무 당연했어요.  

 

 

 

  

공방 오픈 초반, 알음알음 맛집으로 소문이 났던 성수동 ‘쓰리캣메이커리’. 방문자들에게 그때그때 신선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직접 만든 나무 도마에 플레이팅 해 대접하다 보면, 절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면서 마음도 활짝 열리곤 했습니다. 지금은 도마 공방으로만 운영 중입니다. 그래도 옛 친구들이 가끔 놀러와 맛있는 커피와 음식을 먹고 가곤 하지요.

 

 

 

 

 

 

하나님을 바라봤는데 주신 선물,

회복된 가정과 좋은 공동체라는 '사람'들

   

 

 

김고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은 가족이 하나 된 거였어요. 이게 정말 컸어요. 후원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같이하고 있다는, 그 목표가 같으니까 부부가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부모로서도 크리스천으로서 사실 딱히 모범을 보여준 게 없어요. 그냥 후원금을 냈을 뿐이죠. 손 안 대고 코 푼다 그러잖아요.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우리의 진심을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아이들도 그래서 좋아했던 것 같아요.

 

김고은  컴패션에서 좋은 사람들하고 함께하는 게 좋았죠. 공동체를 선물로 받은 거예요. 그 속에서도 우리의 확신은 변함이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상반되는 것 같죠. 하나님을 바라보았는데, 귀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선물이었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큰 선물이었죠. 시간이 오래갔어도, 그때의 특별함은 우리에게 큰 힘이에요.

 

 

 

 

 

 

전혀 다른 나라, 성별, 연령, 행사…

특별한 기준이 없었던 '어린이 후원'의 비밀은?

  

 

 

김고은  많은 분들이 행사나 예배에서 결연하실 때, 어린이 사진을 보고 예쁜 어린이들을 선택하기도 하고 언젠가 만날 거라면서 가까운 나라를 선택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행사 마치고 정리까지 하니까 남은 어린이들 사진이 눈에 밟혀서 그 아이들 결연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비전트립도 잘 안 열리는 먼 나라에 결연 날짜도 다 제각각이었죠. 트립 가서 직접 결연한 아이들도 있고요.

 

김고은  사실 후원금이 많이 들었어요. 그만큼 많은 어린이들을 졸업시키고 아이들이 컴패션을 떠나기도 했죠. 정말 감사한 게, 컴패션을 떠난 어린이들이 다 잘 돼서 나갔어요. 신기한 게, 우리 아이들 학비랑 이 어린이들 후원금은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떨어지지 않게 공급해 주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했어요.

 

김고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요? 후원자분들은 다 비슷하실 거예요. 하나님께서 널 사랑하시고 우리는 널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요. 또 절대 잊어버리지 말았으면 하는 건, 누가 뭐라고 그래도 너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이라고요. 우리 애들한테 해주는 얘기랑 똑같아요.

  

 

  

  

2012년 우간다에서 직접 결연한 나무욤바(Namuyomba) 어린이와 함께.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쓰리캣메이커리

 

 

 

이홍석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2019년에 정말 힘들더라고요. 원래 하던 감독 일이 똑떨어진 거예요. 애들이 미국에 유학을 갔는데, 뭘 해서라도 학비를 보내야 했는데 코로나 터지고. 아내도 일이 떨어졌어요. 거의 폐인이 돼서 집에 있었는데, '불멍'이라고 아시죠? 그것처럼 '샌딩멍'이라는 게 있는데, 사포질하면서 머리를 비우는 거예요. 기본적인 장비만 가져다 놓고 도마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게 쓰리캣메이커리 공방의 출발이에요. 집에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는데, 이름은 거기에서 따서 지었어요. 

 

김고은  남편이 요리는 따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맛있는 걸 즐기고 좋아해서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레시피나 요리책 안 보고 사진으로 보거나 이전에 먹어본 거 집에 와서 다시 만들어 보는 거 잘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이홍석  저를,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거에 심취해 있는 아티스트로 표현해 주세요. (웃음) 처음 쓰리캣메이커리를 할 때 평안함과 기쁨이 있는 곳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요. 한 번은 비하라는 요가 선생님이 오셨는데, 손님들 배웅하고 인사하는 모습이 행복하고 기쁨이 느껴지더래요. 그래서 들어 왔대요. 기분이 좋더라고요. 최고의 찬사를 들은 거죠.

 

이홍석  공방에서 도마를 만들고 있어요. 내추럴한 무늬를 그대로 살리죠. 하나님이 이미 완벽하게 아름답게 만드신 것을 그러니까, 저는 창조자가 아니고, 발견자인 거죠. 

 

김고은  기도 제목은 여기에서 앞으로도 어린이를 더 많이 후원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스무 살, 한국컴패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이홍석  저는 후원금을 80:20 원칙이 정말 좋았어요. 그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는 게 더욱 좋았죠. 그걸 지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해요. 기적 같은 일인데, 그거 하나만 가지고도 설득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김고은   20년은 정말 특별하죠. 우리 애들이 큰 거 생각하니까, 그만큼 한국컴패션도 많이 시간이 지나 갔네요. 저는 지금도 선데이 예배나 행사 가면 눈물이 나요. 17년째, 왜 매번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는 나름대로 컴패션에 참여하면서 가족들 관계나 애들 키우는 데에도 큰 도움을 받았는데요. 젊은 분들이 더 좋게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홍석  실제적으로는, 비전트립이 좀 많이, 저렴하게 열렸으면 좋겠어요. 현지에 가 보면 정말 많이 다르잖아요. 현지 직원들 헌신하는 것 보면 정말 눈물 나죠. 현지뿐 아니라, 특별히 젊은 분들이 컴패션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부부가 40대에 들어 컴패션 활동을 시작했으니까, 만약 더 젊을 때 들어왔다면 다르게 활동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김고은  맞아요. 컴패션이라는 큰 맥락은 변할 수가 없으니까요. 

  

  

  

  

2016년, 세계적인 슬럼가 케냐의 키베라에서. 

 

 

 

 

  

  

  

  

[스무 살, 한국컴패션]

17년을 한결같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

   

   

- 김고은 • 이홍석 후원자 -

  

  

  

  

서울 성수동에서 ‘쓰리캣메이커리’ 나무 도마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홍석 후원자(좌), 통역사로 활약하는 아내 김고은 후원자(우)

 

 

 

 

이홍석 후원자(63세)와

김고은 후원자(57세)가

컴패션과 함께한 지

벌써 17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위대하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요.

부부가, 그리고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걸었던

그 길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컴패션이 함께 했던 긴 시간,

그 길이 크고 넓은 대로가 아니라,

소담하고 정겨운 오솔길이 될 수 있어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컴패션보다 먼저 만난 하나님

 

 

 

김고은  남편이 무슨 '밴드'를 한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잘 모르고 잘해 보라고 그랬죠. (웃음)

 

이홍석  제가 먼저 컴패션에 왔고 아내에게 소개해서 같이 컴패션밴드 활동을 했어요.

 

김고은  남편이 컴패션밴드한다고 맨날 늦게 들어왔는데, 모임 마치고 와서 우리를 붙들고 하나님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이홍석  처음에는 성경공부 모임으로 시작했어요. 알고 보니 그게 컴패션이었어요. 얼마 안 있다, 동인도 비전트립 간다고 그래서 빚 내서 갔죠. 

 

김고은  남편이 사업하던 게 크게 실패하고 힘들 때였거든요.

 

이홍석  2006년 4월에 인도 콜카타로 가는 컴패션 비전트립을 갔더니 거기 배우 차인표 후원자가 와 있었어요. 초창기 컴패션밴드, 애드보킷 멤버들이었죠.

 

 

 

  

2006년 결성된 컴패션밴드는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이 사랑으로 양육 받을 수 있도록, 공연과 봉사활동으로 재능을 나누는 100% 자원봉사 모임입니다. 총 5백 회 이상 재능기부로 공연했고, 3만 5천명 어린이들이 이들의 재능기부로 후원자를 만났습니다.

  

  

  

 

이홍석  그때, 차인표 씨가 처음 이틀 동안은 방에서 안 나왔어요. 삼 일째 되는 날인데, 저녁마다 나눔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나와서 이야기하더라고요. ‘참 오기 싫었는데 아내가 못 간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대신 왔다’고요. 낮에, 어린이들을 만나는데 비전트립 인솔자이신 한국컴패션 대표 서정인 목사님이 인표 씨한테 애들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고 안아 달라고 안아주라고 해서, 그건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대요. 아이의 손을 잡은 순간, 40년 동안 만나고 듣고 싶었던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다고요. “인표야, 반갑다. 사랑한다."고요.

 

트립 갔다 와서 얼마 후에, 차인표 후원자한테 전화가 왔어요. “감독님, 감독님! 현지 가면, 애들이 우리를 위해서 노래하고 춤추는데 우리도 애들 위해서 노래하고 춤추려고요. 같이 하시겠습니까?” 

  

  

 

  

2009년, 컴패션밴드 1집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위는 앨범 내지에 수록된 이홍석 후원자가 찍은 아이티 비전트립 현장 사진. 차인표 후원자는 앨범에 컴패션 동인도 비전트립 이후 달라진 삶을 적어 놓았습니다. 그 이야기 중 트립에 동행한 사람들에 대해 ‘사업이 망해 도망치듯 온 사람’도 있었다고 했는데, 이홍석 후원자였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았어!”

 

 

 

이홍석  사실 저도 그 트립에서 차인표 씨와 같은 경험을 했어요. 사업은 완전히 실패했고 많이 힘들었거든요. 하나님하고 일대일 관계가 만들어졌죠. 교회 특별 새벽 기도회를 두 번 완주하고 성경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매일 밤 밴드에서 신나서 하나님 이야기하고 집에 들어오면 두 딸이 놀라서 아빠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하고요.

 

김고은   남편이 인도 갔다 와서 처음 저한테 한 얘기가 지금도 기억나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았어! 발견했어!” 저도 조금씩 스며들었고 특히 남편이 변화되는 걸 보니까, 더 확신이 섰죠. 

 

이홍석 아내한테 처음으로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그때 들었어요. 하나님 앞에 똑바로 선 것도 아니고 그냥 똑바로 서려고 하는 절 보고 그렇게 말해 주더라고요.

 

김고은  온 가족이 컴패션에 매진하게 되었어요. 그 시간들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은 없어요. 

 

   

  

 

컴패션밴드는 선데이마다 특송과 간증으로 예배를 섬기며 어린이들의 손을 잡아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이홍석 후원자와 김고은 후원자는 매 행사 뒤에서 현장을 섬겼고 사진 촬영으로도 함께했습니다. 2012년, 직접 찍은 ‘신림동 아름다운 교회‘ 컴패션 선데이 사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름진 손에 들린

꾸깃꾸깃한 돈 몇 만 원과

갈변 되고 군내 나는 밥

 

 

 

이홍석  처음 동인도 갔었을 때, 어쩌다 보니까, 서정인 대표님하고 둘이 있게 되었어요. 나도 모르게 대표님에게 말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쓰레기를 주어서라도 컴패션하고 하고 싶다고요. 그후에 행사가 정말 많았어요. 뒷정리하면서 쓰레기 많이 주웠죠. (웃음) 밴드에 유명인들이 많이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누구 하나, 유명인이라고 생색내는 법이 없었어요. 다 같이 궂은일 하고 뒷정리까지 안 빠지고 했죠. 정말 보기 좋았어요. 그런데 정말 기억에 남는 건, 그런 유명인 분들이 아니에요.

 

이홍석  거의 매주 주일에 컴패션밴드랑 컴패션 선데이 예배를 갔었어요. 서울 어느 작은 교회에 갔던 때였는데 신림동 개발 안 된 동네였어요. 다들 어렵고 고시촌 많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많이 사시는 곳이요. 성도님들이 정말 많이 후원해 주셨어요. 한 할머니가 1만 원짜리 몇 장을 꼬깃꼬깃해 쥐여 줬어요. 결연은 못하겠으니 그걸로라도 도와달라고요. 

 

이홍석   2009년에 아이티로 간 비전트립도 기억에 남아요. 현장에서 밥을 먹는데, 밥이 간장하고 버터에 볶은 것 같았어요. 한 숟갈 딱 쓰는데 욱, 헛구역질이 나서 못 넘기겠는 거예요. 간장이 아니라 쌀을 너무 오래된 걸 써서 갈변된 거였어요. 군내가 났던 거죠. 옆에서 아내가 울고 있었어요. 아내가 보라고 하는데, 창가에 애들이 옹기종기 보고 있는 거예요. 저 아이들, 밥 안 먹었냐고 물어봤더니 그때 너무 어려워서 매일 못 주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 못 먹는 날이었던 거죠. 애들이 하루 종일 굶은 거예요. 배는 고픈데 냄새가 솔솔 나니까 몰려든 거였어요. 그 애들 앞에서 숟가락 내려놓을 수 없잖아요. 꾸역꾸역 다 먹었어요. 그래도 밥이 많이 남았어요. 선생님이 애들 데리고 들어와서 먹이는데 애들이 너무너무 맛있게 먹는 거예요. 

 

김고은  그때가 곡물값이 올라서 후원금 인상했을 때였어요.

 

 

 

  

2009년 아이티에서.

 

 

 

 

 

멈출 수 없던 발걸음과 커다란 선물

 

 

 

이홍석  생명을 살리는 일이 바로 후원이잖아요. 정말 중요하잖아요. 멈출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을 집으로 데려와서 많이 먹였어요. 우리끼리 ‘컴패션 나이트’라고 이름 붙였는데, 많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적게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사람들을 불러서 일단 밥을 해 먹였어요. 

 

이홍석  집에 컴패션 관련 물품이 많이 있거든요. 그거 보고, 호기심을 갖거나 예의상 “저거 뭐예요?” 물어보면, 기회를 잡은 거지요. “컴패션이라는 데가 있는데...”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요. 못다하면 다음에 또 만나고. 그러다 보면 결연서에 사인하시는 거죠. 결연서는 항상 집에 있으니까요. 사인받아서 컴패션 사무실에 갖다 주고 그랬어요.

 

김고은  남편이 노트북을 켜고 본격적으로 현지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서 쭉 보여주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웃음) 처음에는 해외여행 사진인가 보다 하는 거죠.  

   

이홍석  2008년인가, 정혜영 후원자가 필리핀 갔다 오면서, 집을 사는 대신 100명 어린이 후원한다고 했잖아요. 그거 보고 정말 도전이 되더라고요. 제가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데, 그만큼 후원할 수가 없잖아요. 기도했어요. 아이디어를 주시더라고요. 어린이를 100명 후원할 수는 없어도, 후원자를 100명을 만들면 되겠다는. 그해 열심히 했는데, 첫해에 118명이 후원을 해주셨어요. 그 뒤로는 몇 명이나 후원에 동참하게 했는지 세어보지 않았어요.

 

이홍석  아내는 통역으로도 많이 섬겼어요. 미국에서 국제컴패션 총재가 오셨는데 통역이 필요했었어요. 그때 아내가 외국 출장 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출장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어요.

 

김고은  그게 너무 당연했어요.  

 

 

 

  

공방 오픈 초반, 알음알음 맛집으로 소문이 났던 성수동 ‘쓰리캣메이커리’. 방문자들에게 그때그때 신선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직접 만든 나무 도마에 플레이팅 해 대접하다 보면, 절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면서 마음도 활짝 열리곤 했습니다. 지금은 도마 공방으로만 운영 중입니다. 그래도 옛 친구들이 가끔 놀러와 맛있는 커피와 음식을 먹고 가곤 하지요.

 

 

 

 

 

 

하나님을 바라봤는데 주신 선물,

회복된 가정과

좋은 공동체라는 '사람'들

   

 

 

김고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은 가족이 하나 된 거였어요. 이게 정말 컸어요. 후원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같이하고 있다는, 그 목표가 같으니까 부부가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부모로서도 크리스천으로서 사실 딱히 모범을 보여준 게 없어요. 그냥 후원금을 냈을 뿐이죠. 손 안 대고 코 푼다 그러잖아요.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우리의 진심을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아이들도 그래서 좋아했던 것 같아요.

 

김고은  컴패션에서 좋은 사람들하고 함께하는 게 좋았죠. 공동체를 선물로 받은 거예요. 그 속에서도 우리의 확신은 변함이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상반되는 것 같죠. 하나님을 바라보았는데, 귀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선물이었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큰 선물이었죠. 시간이 오래갔어도, 그때의 특별함은 우리에게 큰 힘이에요.

 

 

 

 

 

 

전혀 다른 나라, 성별, 연령, 행사…

특별한 기준이 없었던

'어린이 후원'의 비밀은?

  

 

 

김고은  많은 분들이 행사나 예배에서 결연하실 때, 어린이 사진을 보고 예쁜 어린이들을 선택하기도 하고 언젠가 만날 거라면서 가까운 나라를 선택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행사 마치고 정리까지 하니까 남은 어린이들 사진이 눈에 밟혀서 그 아이들 결연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비전트립도 잘 안 열리는 먼 나라에 결연 날짜도 다 제각각이었죠. 트립 가서 직접 결연한 아이들도 있고요.

 

김고은  사실 후원금이 많이 들었어요. 그만큼 많은 어린이들을 졸업시키고 아이들이 컴패션을 떠나기도 했죠. 정말 감사한 게, 컴패션을 떠난 어린이들이 다 잘 돼서 나갔어요. 신기한 게, 우리 아이들 학비랑 이 어린이들 후원금은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떨어지지 않게 공급해 주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했어요.

 

김고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요? 후원자분들은 다 비슷하실 거예요. 하나님께서 널 사랑하시고 우리는 널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요. 또 절대 잊어버리지 말았으면 하는 건, 누가 뭐라고 그래도 너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이라고요. 우리 애들한테 해주는 얘기랑 똑같아요.

  

 

  

  

2012년 우간다에서 직접 결연한 나무욤바(Namuyomba) 어린이와 함께.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쓰리캣메이커리

 

 

 

이홍석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2019년에 정말 힘들더라고요. 원래 하던 감독 일이 똑떨어진 거예요. 애들이 미국에 유학을 갔는데, 뭘 해서라도 학비를 보내야 했는데 코로나 터지고. 아내도 일이 떨어졌어요. 거의 폐인이 돼서 집에 있었는데, '불멍'이라고 아시죠? 그것처럼 '샌딩멍'이라는 게 있는데, 사포질하면서 머리를 비우는 거예요. 기본적인 장비만 가져다 놓고 도마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게 쓰리캣메이커리 공방의 출발이에요. 집에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는데, 이름은 거기에서 따서 지었어요. 

 

김고은  남편이 요리는 따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맛있는 걸 즐기고 좋아해서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레시피나 요리책 안 보고 사진으로 보거나 이전에 먹어본 거 집에 와서 다시 만들어 보는 거 잘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이홍석  저를,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거에 심취해 있는 아티스트로 표현해 주세요. (웃음) 처음 쓰리캣메이커리를 할 때 평안함과 기쁨이 있는 곳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요. 한 번은 비하라는 요가 선생님이 오셨는데, 손님들 배웅하고 인사하는 모습이 행복하고 기쁨이 느껴지더래요. 그래서 들어 왔대요. 기분이 좋더라고요. 최고의 찬사를 들은 거죠.

 

이홍석  공방에서 도마를 만들고 있어요. 내추럴한 무늬를 그대로 살리죠. 하나님이 이미 완벽하게 아름답게 만드신 것을 그러니까, 저는 창조자가 아니고, 발견자인 거죠. 

 

김고은  기도 제목은 여기에서 앞으로도 어린이를 더 많이 후원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스무 살, 한국컴패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이홍석  저는 후원금을 80:20 원칙이 정말 좋았어요. 그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는 게 더욱 좋았죠. 그걸 지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해요. 기적 같은 일인데, 그거 하나만 가지고도 설득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김고은   20년은 정말 특별하죠. 우리 애들이 큰 거 생각하니까, 그만큼 한국컴패션도 많이 시간이 지나 갔네요. 저는 지금도 선데이 예배나 행사 가면 눈물이 나요. 17년째, 왜 매번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는 나름대로 컴패션에 참여하면서 가족들 관계나 애들 키우는 데에도 큰 도움을 받았는데요. 젊은 분들이 더 좋게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홍석  실제적으로는, 비전트립이 좀 많이, 저렴하게 열렸으면 좋겠어요. 현지에 가 보면 정말 많이 다르잖아요. 현지 직원들 헌신하는 것 보면 정말 눈물 나죠. 현지뿐 아니라, 특별히 젊은 분들이 컴패션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부부가 40대에 들어 컴패션 활동을 시작했으니까, 만약 더 젊을 때 들어왔다면 다르게 활동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김고은  맞아요. 컴패션이라는 큰 맥락은 변할 수가 없으니까요. 

  

 

 

  

2016년, 세계적인 슬럼가 케냐의 키베라에서. 

 

 

 

  

 

  

  

댓글
0 / 300자
  • pj961113@kakao.com
    2023-04-17 13:48:58

    낭만 적인 삶 응원해요. 닮고 싶어요.

  • hkh-1004@hanmail.net
    2023-04-15 07:51:07

    감독님 지난 케냐 함께갔던일이 생각납니다 아이들과 함께하시는 천진난만한 감독님의 모습을 보며 이래서 아이들을 사랑하시는구나 생각했어요 주님의 마음을 아시고 삶의 가치를 아시는 감독님 존경합니다^^

  • cwjdream
    2023-04-14 19:57:07

    너무 멋있는 인생을 맛있게 살고 계십니다. ^^

  • jiha8888@naver.com
    2023-04-14 18:53:49

    두분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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