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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거실이자 화장실이기도 한 빈민가 골목

  • 작성일 2023-06-12

필리핀 마닐라에서 만난 작은 골목. 작은 아이가 스스럼없이 천연덕스럽게 골목에서 볼일을 보고 있다.

많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좁디좁은 골목은 이들에게 화장실이자 거실이 되기도 하고

때로 욕실이 되기도 한다. 생활 반경이 좁아진 이들에게 이웃은 가족이나 인척처럼 경계가 없어 보였다. [사진 허호]

 

 

 

 

사진가에게 골목은 좋은 소재입니다. 소통의 공간이니까요. 골목은 집과 집을 연결해 주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소통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정겨움이랄지 스토리가 있는 곳이지요. 오래된 도시의 삐뚤빼뚤하고 좁은 골목은 실핏줄처럼 길고 가늘게 이어져 있어 미로와도 같습니다. 사실 외세 침략에 대한 방어 기능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현대의 골목에는 그런 기능이 필요 없어서인지 잘 장비되고 반듯반듯하지요.

 

컴패션 어린이의 집을 방문하러 가는 길은 늘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을 지나야 했습니다. 어깨가 닿을 정도로 좁을 때도 있고 우중충하거나 습기로 가득해 음습할 때도 있었습니다. 빨래로 가득하기도 하고 각종 소음과 음식 냄새가 나기도 했지요. 필리핀 마닐라의 골목길 사진을 보다가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찾아가는 도시 빈민가의 동네, 그들이 살아가는 주거환경에서 골목은 곧 거실이었습니다. 머리를 만져주고 반찬거리를 다듬고 애 젖을 먹이며 빨래를 너는, 심지어 비가 올 때 샴푸통을 들고나와 머리를 감는 문신 가득한 남자의 헐벗은 모습을 본 곳도 필리핀 골목이었습니다.

 

우리가 집안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이들에게는 골목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들의 집은 거의 방 하나로 구성되니까 좁아서 뭔가 하기에는 어렵죠. 골목을 거실처럼 사용하는 것입니다. 거실에서 많은 일이 이루어지고 관계가 열리는 것처럼, 이들에게 골목은 자연스러운 소통의 공간이었습니다.

 

 

 

 

필리핀 빈민가에서 만난 골목은 거실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보통 집안에서 하는 일들을 골목에서 해내며 자연스럽게 경계가 없이 소통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옛 정서에서의 골목도 정겨운 모습이었죠. 하지만 제가 기억하기로 집이 확장될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안팎이 큰 구별이 없는 거예요. TV나 라디오 소리도 어찌나 크던지요. 소리가 차단되는 집 구조도 아니었지만요. 이런 상황이 매우 독특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필리핀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슬럼가를 가봐도 골목에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고 많은 사람이 만나 뭔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TV 소리나 무슨 소리가 크든 상관하지 않는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골목 전체를 울리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화를 내거나 항의하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몇 군데에서만 그러면 특이한 사항이 되는데 어느 동네를 가든, 매번 만나는 상황이라 깜짝깜짝 놀랐죠. 슬럼가의 특징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조에서 소리를 빵빵 틀어 놓으면 시끄러워서 어떻게 살까 싶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골목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린 엄마. 아기가 울다 지친 듯 엄마의 품을 파고 들어 젖을 먹고 있다. 맨발의 엄마의 지친 표정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곳 골목에서 아기가 엄마의 품을 찾듯, 엄마도 엄마만의 쉴 짬을 찾는 것처럼.

 

 

 

 

코로나19 때문에 이들만의 이러한 소통이 어려워졌을까 싶다가도,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상 이들이 격리된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우리가 흔히 겪는 층간소음의 문제랄지, 찻길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의 문제라든지 이런 문제에 대해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우리 눈에 무례해 보이는 행위라고 할지라도 사공간이 골목으로 확장되어 공용공간을 사공간처럼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별문제 없을 게 확실해 보였습니다. 소통이었습니다. 우리가 중요시하고 꼭 이웃 간에 챙기고 싶은 배려는 바로 이러한 사람과의 소통의 문제로 조금쯤 해결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소통이 된다면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여지들이 좀 더 생겨나는 것 아닐까요.

 

사진가는 탐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조각가나 미술가는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예술을 하지요. 하지만 사진가는 있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탐구를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사진을 만들어 내는 데 관심이 농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려면 사물에 대해서나 인간에 대해 예민해져 있어야 합니다. 무신경하게 스쳐 지나가서는 탐구가 안 되지요. 이런 탐구자인 제게 골목은 정말 무수히 탐구할 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사람도, 사물도 갖가지 의미를 가득 품고 제게 말을 걸어오는 곳입니다.

  

 

 

  

 

 

원문 바로보(클릭)▼

 

[출처 : 중앙일보 더, 오래] 거실이자 화장실이기도 한 빈민가 골목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됐습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만난 작은 골목. 작은 아이가 스스럼없이 천연덕스럽게 골목에서 볼일을 보고 있다.

많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좁디좁은 골목은 이들에게 화장실이자 거실이 되기도 하고

때로 욕실이 되기도 한다. 생활 반경이 좁아진 이들에게 이웃은 가족이나 인척처럼 경계가 없어 보였다. [사진 허호]

 

 

 

 

사진가에게 골목은 좋은 소재입니다. 소통의 공간이니까요. 골목은 집과 집을 연결해 주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소통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정겨움이랄지 스토리가 있는 곳이지요. 오래된 도시의 삐뚤빼뚤하고 좁은 골목은 실핏줄처럼 길고 가늘게 이어져 있어 미로와도 같습니다. 사실 외세 침략에 대한 방어 기능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현대의 골목에는 그런 기능이 필요 없어서인지 잘 장비되고 반듯반듯하지요.

 

컴패션 어린이의 집을 방문하러 가는 길은 늘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을 지나야 했습니다. 어깨가 닿을 정도로 좁을 때도 있고 우중충하거나 습기로 가득해 음습할 때도 있었습니다. 빨래로 가득하기도 하고 각종 소음과 음식 냄새가 나기도 했지요. 필리핀 마닐라의 골목길 사진을 보다가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찾아가는 도시 빈민가의 동네, 그들이 살아가는 주거환경에서 골목은 곧 거실이었습니다. 머리를 만져주고 반찬거리를 다듬고 애 젖을 먹이며 빨래를 너는, 심지어 비가 올 때 샴푸통을 들고나와 머리를 감는 문신 가득한 남자의 헐벗은 모습을 본 곳도 필리핀 골목이었습니다.

 

우리가 집안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이들에게는 골목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들의 집은 거의 방 하나로 구성되니까 좁아서 뭔가 하기에는 어렵죠. 골목을 거실처럼 사용하는 것입니다. 거실에서 많은 일이 이루어지고 관계가 열리는 것처럼, 이들에게 골목은 자연스러운 소통의 공간이었습니다.

 

 

 

 

필리핀 빈민가에서 만난 골목은 거실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보통 집안에서 하는 일들을 골목에서 해내며 자연스럽게 경계가 없이 소통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옛 정서에서의 골목도 정겨운 모습이었죠. 하지만 제가 기억하기로 집이 확장될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안팎이 큰 구별이 없는 거예요. TV나 라디오 소리도 어찌나 크던지요. 소리가 차단되는 집 구조도 아니었지만요. 이런 상황이 매우 독특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필리핀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슬럼가를 가봐도 골목에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고 많은 사람이 만나 뭔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TV 소리나 무슨 소리가 크든 상관하지 않는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골목 전체를 울리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화를 내거나 항의하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몇 군데에서만 그러면 특이한 사항이 되는데 어느 동네를 가든, 매번 만나는 상황이라 깜짝깜짝 놀랐죠. 슬럼가의 특징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조에서 소리를 빵빵 틀어 놓으면 시끄러워서 어떻게 살까 싶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골목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린 엄마. 아기가 울다 지친 듯 엄마의 품을 파고 들어 젖을 먹고 있다. 맨발의 엄마의 지친 표정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곳 골목에서 아기가 엄마의 품을 찾듯, 엄마도 엄마만의 쉴 짬을 찾는 것처럼.

 

 

 

 

코로나19 때문에 이들만의 이러한 소통이 어려워졌을까 싶다가도,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상 이들이 격리된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우리가 흔히 겪는 층간소음의 문제랄지, 찻길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의 문제라든지 이런 문제에 대해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우리 눈에 무례해 보이는 행위라고 할지라도 사공간이 골목으로 확장되어 공용공간을 사공간처럼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별문제 없을 게 확실해 보였습니다. 소통이었습니다. 우리가 중요시하고 꼭 이웃 간에 챙기고 싶은 배려는 바로 이러한 사람과의 소통의 문제로 조금쯤 해결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소통이 된다면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여지들이 좀 더 생겨나는 것 아닐까요.

 

사진가는 탐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조각가나 미술가는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예술을 하지요. 하지만 사진가는 있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탐구를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사진을 만들어 내는 데 관심이 농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려면 사물에 대해서나 인간에 대해 예민해져 있어야 합니다. 무신경하게 스쳐 지나가서는 탐구가 안 되지요. 이런 탐구자인 제게 골목은 정말 무수히 탐구할 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사람도, 사물도 갖가지 의미를 가득 품고 제게 말을 걸어오는 곳입니다.

  

 

 

  

 

 

원문 바로보(클릭)▼

 

[출처 : 중앙일보 더, 오래] 거실이자 화장실이기도 한 빈민가 골목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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