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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가슴 깊이 새긴 군복 차림 미얀마 소녀의 미소

  • 작성일 2024-02-12

2019년 태국 북부 고산지대에 흐르는 강을 배를 타고 지나간 적이 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얀마를 옆으로 둔 채 지났던 기억이다. [사진 허호]

 

 

태국의 컴패션 어린이센터는 주로 태국 북부 지역인 치앙마이나 그보다 더 위쪽인 치앙라이나 매홍손 등에 자리하고 있었고, 특별히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밀림에도 종종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밀림 속 고산지대에 가볼 기회가 있었지요. 어린이센터에서 어린이센터로 이동하다 보면 밀림 속을 가로지르며 장거리로 차를 타고 가야 했는데 차창으로 드문드문 집이 보였습니다. 멈춰 서서 들른 적은 없지만,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나 싶어 안내인에게 물어보면, 소수민족의 거주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이른바 소수민족 수용소 같은 곳이었습니다.

 

미얀마, 라오스와 접경에 있는 태국 북부 고산지대에 사는 소수민족만 해도 10여 민족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태국의 소수민족이라고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그 땅이 태국에 속했는지 미얀마에 속했는지 큰 의미가 없었겠지요. 타인에 의해 자신의 국적이 정해진 셈입니다. 그런데 태국 국민이 된 소수민족은 국민으로서 교육이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그들 당사자만이 느끼는 소외감과 차별이 분명 있었겠지요. 그런데 미얀마는 국민으로서의 혜택과 권리를 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소수민족을 핍박하는 군부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민족임에도 운명이 갈린 것이지요.

 

 

2016년 태국에서 오토바이로 국경을 넘어 만났던 미얀마 국경지역에 위치한 샨 족의 마을. 한가로운 마을 풍경을 카메라에 담자 길 한가운데서 늘어지게 낮잠 자던 개가 깨어나 물끄러미 내 쪽을 돌아보았다.

 

 

일방적인 폭력으로 소수민족은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 여차하면 피신할 수 있는 국경지대로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국경을 넘으면 군부가 쫓아올 수 없으니까요. 군부를 피해 도망쳐온 소수 민족을 위해 태국에는 이들이 살 수 있도록 수용시설을 마련했습니다. 포로수용소는 아니니까 훨씬 자유로웠겠지만, 시민권이 없었습니다. 취업을 할 수 없어 경제생활이 어렵고, 교육이나 의료 혜택 도 받지 못했습니다. 시민권을 얻는 방법은 아이가 태국 땅에서 태어나 자라면, 부모도 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2년 전, 우리나라 뉴스에도 보도됐던 태국 동굴 소년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중 유창한 영어로 자신들을 구하러 온 다이버들과의 대화로 시선을 끌었던 소년, 아둔의 부모도 와 족이라는 소수민족이었습니다. 물론 미얀마에서 온 소수민족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민권이 없었기에 컴패션에 등록되어서야 교육과 음식,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집도 없어 컴패션 협력교회 목사님의 집에서 부모, 다섯 형제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맏 아들인 아둔은 그때까지도 시민권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어쩌면 그 일로 더 유리한 위치에 올랐을 수도 있겠지요.

 

이처럼 지난한 시간, 긴 세월이 흘러야 비로소 국민으로서 안정된 삶의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조차 폭력을 피해 도망 다니는 난민들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미얀마 밀림 속에 샨 족 피난민 마을에서 만난 한 아버지. 전투에 나가 싸우다 다리 한쪽을 잃었다. 플라스틱 의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연일 뉴스에서 미얀마 상황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군부가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모습이 매일 보여지는 가운데, 저는 우연히 이루어졌던 미얀마 방문이 생각났고 이미 소수 민족이 받았던 폭력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국 국경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십여 분, 미얀마 국경을 지나 만난 난민들, 샨 족 마을. 넓은 운동장에서 군복 입은 소녀들을 만나게 된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왜 군복을 입었는지에 대해 물었고 이를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처지를 알았기에 외부에 보여줄 수 없어 간직하고만 있었죠. 그때 만난 군복을 입고 있던, 중학생 정도의 앳된 소녀가 계속 기억이 납니다. 해맑고 사랑스런러모습이었습니다. 미얀마가 평화로워지고 사진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에도 군부의 폭력으로 암담하고 암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 그로부터 항거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들끓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굉장히 오랫동안 보호받지 못하고 심각한 차별과 폭력에 시달려왔던 소수민족의 처지 또한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단 하루 듣고, 보고 왔을 뿐이지만 그저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그것밖에 원하는 것이 없었던 그들이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삶과 가깝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처한 상황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고,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자결권을 얻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각자의 자리에서 응원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원문 바로보기(클릭)▼

[출처 : 중앙일보 더, 오래] 가슴 깊이 새긴 군복 차림 미얀마 소녀의 미소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됐습니다.

 

 

 

 

 

 

 

2019년 태국 북부 고산지대에 흐르는 강을 배를 타고 지나간 적이 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얀마를 옆으로 둔 채 지났던 기억이다. [사진 허호]

 

 

태국의 컴패션 어린이센터는 주로 태국 북부 지역인 치앙마이나 그보다 더 위쪽인 치앙라이나 매홍손 등에 자리하고 있었고, 특별히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밀림에도 종종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밀림 속 고산지대에 가볼 기회가 있었지요. 어린이센터에서 어린이센터로 이동하다 보면 밀림 속을 가로지르며 장거리로 차를 타고 가야 했는데 차창으로 드문드문 집이 보였습니다. 멈춰 서서 들른 적은 없지만,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나 싶어 안내인에게 물어보면, 소수민족의 거주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이른바 소수민족 수용소 같은 곳이었습니다.

 

미얀마, 라오스와 접경에 있는 태국 북부 고산지대에 사는 소수민족만 해도 10여 민족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태국의 소수민족이라고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그 땅이 태국에 속했는지 미얀마에 속했는지 큰 의미가 없었겠지요. 타인에 의해 자신의 국적이 정해진 셈입니다. 그런데 태국 국민이 된 소수민족은 국민으로서 교육이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그들 당사자만이 느끼는 소외감과 차별이 분명 있었겠지요. 그런데 미얀마는 국민으로서의 혜택과 권리를 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소수민족을 핍박하는 군부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민족임에도 운명이 갈린 것이지요.

 

 

2016년 태국에서 오토바이로 국경을 넘어 만났던 미얀마 국경지역에 위치한 샨 족의 마을. 한가로운 마을 풍경을 카메라에 담자 길 한가운데서 늘어지게 낮잠 자던 개가 깨어나 물끄러미 내 쪽을 돌아보았다.

 

 

일방적인 폭력으로 소수민족은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 여차하면 피신할 수 있는 국경지대로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국경을 넘으면 군부가 쫓아올 수 없으니까요. 군부를 피해 도망쳐온 소수 민족을 위해 태국에는 이들이 살 수 있도록 수용시설을 마련했습니다. 포로수용소는 아니니까 훨씬 자유로웠겠지만, 시민권이 없었습니다. 취업을 할 수 없어 경제생활이 어렵고, 교육이나 의료 혜택 도 받지 못했습니다. 시민권을 얻는 방법은 아이가 태국 땅에서 태어나 자라면, 부모도 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2년 전, 우리나라 뉴스에도 보도됐던 태국 동굴 소년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중 유창한 영어로 자신들을 구하러 온 다이버들과의 대화로 시선을 끌었던 소년, 아둔의 부모도 와 족이라는 소수민족이었습니다. 물론 미얀마에서 온 소수민족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민권이 없었기에 컴패션에 등록되어서야 교육과 음식,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집도 없어 컴패션 협력교회 목사님의 집에서 부모, 다섯 형제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맏 아들인 아둔은 그때까지도 시민권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어쩌면 그 일로 더 유리한 위치에 올랐을 수도 있겠지요.

 

이처럼 지난한 시간, 긴 세월이 흘러야 비로소 국민으로서 안정된 삶의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조차 폭력을 피해 도망 다니는 난민들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미얀마 밀림 속에 샨 족 피난민 마을에서 만난 한 아버지. 전투에 나가 싸우다 다리 한쪽을 잃었다. 플라스틱 의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연일 뉴스에서 미얀마 상황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군부가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모습이 매일 보여지는 가운데, 저는 우연히 이루어졌던 미얀마 방문이 생각났고 이미 소수 민족이 받았던 폭력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국 국경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십여 분, 미얀마 국경을 지나 만난 난민들, 샨 족 마을. 넓은 운동장에서 군복 입은 소녀들을 만나게 된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왜 군복을 입었는지에 대해 물었고 이를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처지를 알았기에 외부에 보여줄 수 없어 간직하고만 있었죠. 그때 만난 군복을 입고 있던, 중학생 정도의 앳된 소녀가 계속 기억이 납니다. 해맑고 사랑스런러모습이었습니다. 미얀마가 평화로워지고 사진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에도 군부의 폭력으로 암담하고 암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 그로부터 항거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들끓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굉장히 오랫동안 보호받지 못하고 심각한 차별과 폭력에 시달려왔던 소수민족의 처지 또한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단 하루 듣고, 보고 왔을 뿐이지만 그저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그것밖에 원하는 것이 없었던 그들이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삶과 가깝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처한 상황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고,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자결권을 얻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각자의 자리에서 응원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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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앙일보 더, 오래] 가슴 깊이 새긴 군복 차림 미얀마 소녀의 미소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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