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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태풍만 오면 오물 하수가 허리까지 차는 마닐라 뚝방촌

  • 작성일 2024-06-10

컴패션 어린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본 뚝방보다 낮은 지대에 위치한 집들. 태풍이 오면 온 동네가 도시에서 흘러나온 하수로 집이 잠긴다. 매년 스무 개 정도의 태풍을 만난다는 필리핀. 한 해에도 몇 번씩 어린이들은 침수된 집에서 피난처를 찾는다. [사진 허호]

 

 

방죽의 사투리인 뚝방은 물이 침범하지 않도록 쌓은 둑을 말하지요. 경상도 출신이어서 그런지 제게는 방죽보다는 뚝방이 더 친숙하게 들립니다. 몇 년 전에 방문한 한 컴패션 어린이의 집은 이 뚝방보다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 아이 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골목의 모든 집이 그랬고,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는 이런 골목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물이 침범하지 말라고 뚝방을 세웠는데, 태풍이 오면 어김없이 물이 넘쳤고, 뚝방보다 낮은 이 지역은 마치 저수지처럼 일대가 물에 잠긴다고 했습니다. 2층 지붕 같은 곳에서 물이 빠질 때까지 버티는데, 때로는 그 지붕마저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립니다. 배수가 안 되는 겁니다. 태풍으로 인한 홍수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배수 시설만 어느 정도 갖춰져 있으면 그렇게 매년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뚝방보다 낮은 지역, 초입에 위치한 계단.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로 인해 절반 이상이 짙은 그늘로 덮여 있다. 수해 침수로 마를 날이 없는 골목은 녹색 물이끼가 가득했는데 마침 이날 햇빛에 훤히 드러났다.

 

 

희한하게도 필리핀을 그렇게 많이 방문하는데 저는 방문할 때마다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종종 태풍 피해 지역을 방문해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현장을 경험한 적은 없었습니다.

 

컴패션 후원자인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자, 그가 마닐라에 갔을 때는 마침 비가 왔다고 했습니다. 거센 비바람은 아니었고 우리나라로 치면 여름에 종종 만나는 평범한 비였는데, 어린이들이 위험해 센터로 올 수 없어 후원자 만남을 못하겠다는 겁니다. 이들 일행은 의논 후, 자신들이 어린이 집으로 가기로 했고, 골목에는 이미 물이 가득 들어차 있어 허리까지 오는 오물 가득한 물을 헤치고 가야 했답니다.

 

지인은 맨살이 드러나는 칠부바지 같은 걸 입고 갔는데 다리에 쓰레기 더미가 휘감겨 걷기가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기분까지 나빴다고 했습니다. 그 와중에, 골목의 아이들은 두꺼운 스티로폼이나 커다란 고무 대야 같은 것을 타고 손으로 노를 저으며 놀았다죠. 양쪽 벽 쪽으로 한뼘 남짓한 검은 띠가 죽 둘러져 있었는데, 검은 띠가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 같아 자세히 보니, 바퀴벌레들이 쏟아져 나와 뒤집어진 채, 물살에 밀려 양쪽 벽에 부딪쳐 띠를 만들었답니다. 지인이 경악한 마음을 다독이며 어린이 집에 갔을 때였습니다. 아이가 창으로 후원자들이 오는 것을 보고 있었고 그 눈빛이 더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답니다. 아이의 집은 마루까지 물이 차 지붕으로 대피하기 직전이었는데, 아이의 부모는 후원자들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답니다. 다섯 살짜리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선물을 펴보고 있었고요.

 

 

골목 가득 들어찬 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생활 하수에는 음식물 찌꺼기, 배설물까지 온갖 오물이 물에 둥둥 떠내려간다. 이를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논다.

 

 

방문자들은 가끔 가난한 지역이니까 골목이 미로 같이 고불고불하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당연하다고, 원래 이렇지 않느냐는 태도를 취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자신이 사는 곳이 위험해 거주지가 안 되는 지역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위험하지만, 도시라서, 생활이 되니까, 사는 것입니다. 시골의 가난한 지역이라면 이조차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를 잇는 가난 때문입니다.

 

한 어린이의 가정 방문에서, 그 집에 얼마나 오래 살았냐고 물어보면 할머니 때부터 산 집이라고 답을 합니다. 최소한 그 집에 산 지가 40~50년 되는 거지요. 허술하게 얼기설기 만든 집에서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한테 “우리 어릴 때 그랬어”라고 하는 이야기를 이들에게는 그냥 계속되는 현실인 것입니다.

 

 바짝 긴장하며 걸었던 좁고 낡은 나무 다리. 낭창낭창한 흔들림에도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잘들 건넜다. 사실 이 다리가 긴장했던 높이나 다리의 허술함 때문이라기 보다는 생활오수와 배변 등이 섞여 진득하게 늪을 이룬 하천 때문이었다. 그 냄새며 색이 미끄러져 발 하나라도 빠지면 얼마나 난감할지를 실감 나게 해주었다.

 

 

어제 우리 동네에도 비가 왔습니다.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은 눅눅함에 창문을 열고 시원하게 바람을 맞았습니다. 그러다 재작년에 방문했던 맑은 하늘의 뚝방보다 낮은 동네가 생각났습니다. 이런 정도 비가 내리면 그 골목은 잠겼겠지요. 나였으면 감당할 수 있었을까, 생각에 잠겼습니다. 쉽게 답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마침 컴패션에서 필리핀 태풍으로 물에 빠진 집을 도와주는 캠페인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긍휼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단어 ‘컴패션’을 컴패션 사람들은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같이 아파할 수 있는 정도라면, 뭐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일어서겠지요. 매년 20여 개의 태풍이 지나간다는 필리핀, 이 캠페인으로 제가 만났던 골목에 사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원문 바로보기(클릭)▼

[출처 : 중앙일보 더, 오래] 태풍만 오면 오물 하수가 허리까지 차는 마닐라 뚝방촌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됐습니다.

 

 

 

 

 

 

컴패션 어린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본 뚝방보다 낮은 지대에 위치한 집들. 태풍이 오면 온 동네가 도시에서 흘러나온 하수로 집이 잠긴다. 매년 스무 개 정도의 태풍을 만난다는 필리핀. 한 해에도 몇 번씩 어린이들은 침수된 집에서 피난처를 찾는다. [사진 허호]

 

방죽의 사투리인 뚝방은 물이 침범하지 않도록 쌓은 둑을 말하지요. 경상도 출신이어서 그런지 제게는 방죽보다는 뚝방이 더 친숙하게 들립니다. 몇 년 전에 방문한 한 컴패션 어린이의 집은 이 뚝방보다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 아이 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골목의 모든 집이 그랬고,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는 이런 골목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물이 침범하지 말라고 뚝방을 세웠는데, 태풍이 오면 어김없이 물이 넘쳤고, 뚝방보다 낮은 이 지역은 마치 저수지처럼 일대가 물에 잠긴다고 했습니다. 2층 지붕 같은 곳에서 물이 빠질 때까지 버티는데, 때로는 그 지붕마저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립니다. 배수가 안 되는 겁니다. 태풍으로 인한 홍수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배수 시설만 어느 정도 갖춰져 있으면 그렇게 매년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뚝방보다 낮은 지역, 초입에 위치한 계단.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로 인해 절반 이상이 짙은 그늘로 덮여 있다. 수해 침수로 마를 날이 없는 골목은 녹색 물이끼가 가득했는데 마침 이날 햇빛에 훤히 드러났다.

 

희한하게도 필리핀을 그렇게 많이 방문하는데 저는 방문할 때마다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종종 태풍 피해 지역을 방문해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현장을 경험한 적은 없었습니다.

 

컴패션 후원자인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자, 그가 마닐라에 갔을 때는 마침 비가 왔다고 했습니다. 거센 비바람은 아니었고 우리나라로 치면 여름에 종종 만나는 평범한 비였는데, 어린이들이 위험해 센터로 올 수 없어 후원자 만남을 못하겠다는 겁니다. 이들 일행은 의논 후, 자신들이 어린이 집으로 가기로 했고, 골목에는 이미 물이 가득 들어차 있어 허리까지 오는 오물 가득한 물을 헤치고 가야 했답니다.

 

지인은 맨살이 드러나는 칠부바지 같은 걸 입고 갔는데 다리에 쓰레기 더미가 휘감겨 걷기가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기분까지 나빴다고 했습니다. 그 와중에, 골목의 아이들은 두꺼운 스티로폼이나 커다란 고무 대야 같은 것을 타고 손으로 노를 저으며 놀았다죠. 양쪽 벽 쪽으로 한뼘 남짓한 검은 띠가 죽 둘러져 있었는데, 검은 띠가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 같아 자세히 보니, 바퀴벌레들이 쏟아져 나와 뒤집어진 채, 물살에 밀려 양쪽 벽에 부딪쳐 띠를 만들었답니다. 지인이 경악한 마음을 다독이며 어린이 집에 갔을 때였습니다. 아이가 창으로 후원자들이 오는 것을 보고 있었고 그 눈빛이 더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답니다. 아이의 집은 마루까지 물이 차 지붕으로 대피하기 직전이었는데, 아이의 부모는 후원자들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답니다. 다섯 살짜리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선물을 펴보고 있었고요.

 

골목 가득 들어찬 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생활 하수에는 음식물 찌꺼기, 배설물까지 온갖 오물이 물에 둥둥 떠내려간다. 이를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논다.

 

방문자들은 가끔 가난한 지역이니까 골목이 미로 같이 고불고불하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당연하다고, 원래 이렇지 않느냐는 태도를 취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자신이 사는 곳이 위험해 거주지가 안 되는 지역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위험하지만, 도시라서, 생활이 되니까, 사는 것입니다. 시골의 가난한 지역이라면 이조차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를 잇는 가난 때문입니다.

 

한 어린이의 가정 방문에서, 그 집에 얼마나 오래 살았냐고 물어보면 할머니 때부터 산 집이라고 답을 합니다. 최소한 그 집에 산 지가 40~50년 되는 거지요. 허술하게 얼기설기 만든 집에서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한테 “우리 어릴 때 그랬어”라고 하는 이야기를 이들에게는 그냥 계속되는 현실인 것입니다.

 바짝 긴장하며 걸었던 좁고 낡은 나무 다리. 낭창낭창한 흔들림에도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잘들 건넜다. 사실 이 다리가 긴장했던 높이나 다리의 허술함 때문이라기 보다는 생활오수와 배변 등이 섞여 진득하게 늪을 이룬 하천 때문이었다. 그 냄새며 색이 미끄러져 발 하나라도 빠지면 얼마나 난감할지를 실감 나게 해주었다.

 

어제 우리 동네에도 비가 왔습니다.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은 눅눅함에 창문을 열고 시원하게 바람을 맞았습니다. 그러다 재작년에 방문했던 맑은 하늘의 뚝방보다 낮은 동네가 생각났습니다. 이런 정도 비가 내리면 그 골목은 잠겼겠지요. 나였으면 감당할 수 있었을까, 생각에 잠겼습니다. 쉽게 답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마침 컴패션에서 필리핀 태풍으로 물에 빠진 집을 도와주는 캠페인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긍휼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단어 ‘컴패션’을 컴패션 사람들은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같이 아파할 수 있는 정도라면, 뭐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일어서겠지요. 매년 20여 개의 태풍이 지나간다는 필리핀, 이 캠페인으로 제가 만났던 골목에 사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원문 바로보기(클릭)▼

[출처 : 중앙일보 더, 오래]

태풍만 오면 오물 하수가 허리까지 차는 마닐라 뚝방촌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2019년 11월 18일부터 연재됐습니다.

 

 

 

 

 

 

댓글
0 / 300자
  • estellesu
    2024-06-21 18:50:27

    존경하는 허호작가님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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