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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을 사랑할 때 진짜 회복이 시작되는 거죠.”

  • 작성일 2024-06-13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을 사랑할 때
진짜 회복이 시작되는 거죠.”

- 태국컴패션 졸업생 시아(Sia)-

 

 

 

미얀마와 태국 국경 사이에는 국적이 없는 소수 민족들이 존재합니다. 군부로부터의 위협 등 각자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 태국 국경 지역이나 밀림에 자리를 잡은 이들. 시아의 부모님도 그중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난민 가정으로 겪는 차별과 극도의 가난, 가정폭력이라는 상처를 가진 소녀는 어느새 자라,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는 이들을 품으며 위로하는 힘을 가진 리더로 세워졌습니다. 컴패션의 졸업생이자 태국 국경지역 취약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돕는 비영리기구(FRP)의 설립자인 시아(Sia)의 이야기입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 거듭난 그녀의 이야기, 지금 들려 드릴게요.

 

 

 

 

|

한 어린이를 후원한다는 것은,
어린이 삶의 변화를 일으킬 뿐 아니라
생각보다 더 큰 파급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에요.


- 시아(Sia), 태국컴패션 졸업생-

 

 


  

 

가난한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사랑스러운 소녀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와차라폰 쿠케와카셈입니다. 그냥 시아라고 불러주세요(웃음). 저는 현재 태국과 미얀마 국경에 있는 ‘매솟(Mae Sot)’이라는 도시의 작은 마을에서 움이 필요한 엄마와 어린이들을 위해 임상 사회복지사이자 옹호자로 일하고 있어요.

 

 | 태국 아카족 출신이라고 들었는데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나 자라온 배경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아카족은 예로부터 산 위에 작은 마을에 모여 살던 소수민족인데요, 최근에는 많은 이들이 도시나 마을에 살고 있어요. 제가 알기로 현재 아카족은 라오스와 미얀마, 중국과 태국 등에 분포하여 거주하고 있는데요, 저희 부모님의 경우, 10대 때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이주해 오신 케이스예요. 당시에는 태국 내 신분증을 포함해 법적인 서류들을 받을 수 없으셨고, 때문에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하셨다고 해요.

 

어린 시절 시아와 어머니

 

어렸을 적 살던 마을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당시 저희 가족은 직접 채소와 닭, 돼지 등을 키우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소박한 생활을 했습니다. 마을 가정들이 대부분 가난했고, 부모님 두 분 모두 많은 교육이나 기회를 받지 못하셨어요.

정말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럼에도 어머니는 제가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셨어요. 학교를 입학할 때가 되면, 이웃들에게 교통비와 학비, 그리고 교복을 위한 돈을 빌리러 다니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나요.

 

 

어두웠던 어린 시절,
나의 울타리가 되어준 컴패션

 

| 컴패션에 등록된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당시 경험하고, 배우고 느낀 것들 중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컴패션에 등록되었을 때, 저는 아마 4-5살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매주 토요일 열리던 컴패션 어린이센터 수업에 가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성경 구절을 빨리 찾는지 겨루는 게임이었어요. 저는 항상 누구보다 빨리 성경 구절을 찾는 아이였답니다. (웃음) 이런 활동들 덕분에 재미있게 즐기면서 성경에 대해 더 배울 수 있었죠.

 

| 후원자님에 대한 기억이 어떠셨는지도 궁금해요. 

 

사실 처음엔 후원자가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어요. 너무 어린 나이였으니까요. 점차 커가면서 후원자님 가족과 반려동물의 사진과 함께 편지를 받았는데, 당시에는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후원자라는 분은 편지와 사진을 보내주시는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렸을 때는 글을 읽거나 쓸 줄 몰랐기 때문에 선생님들께서 편지를 읽어 주셨고, 답장을 쓰는 데 도움을 주셨던 기억이 나요. 또 매번 크리스마스 때마다 보내주시는 사랑이 담긴 편지와 선물을 받을 때마다 정말 행복했고, 그때 느꼈던 기쁨은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습니다.

 

시아의 어린 시절 사진

 

| 어린 시절 가정 폭력을 겪으셨다고 들었어요. 쉽지 않은 어린 날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존재가 있으셨다면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일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 끔찍한 순간을 목격할 때, 아무것도 도울 수 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던 것은 저를 무기력하고 겁에 질리게 만들었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엄마를 죽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압도되기도 했죠. 그런 마음들은 매번 반복되는 악몽처럼 저를 괴롭혔어요. 엄마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죄책감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도 기억해요.

당시 제 삶은 예수님을 알기 전이었고, 저는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나 믿음이 없었죠. 그런 저의 어린 시절을 지탱해 준 것은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사랑과 보살핌이었습니다. 폭력 속에 있으면서도 엄마는 저와 동생들을 향해 변함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보여주셨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저희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저희를 지지해 주는 조부모님도 어린 시절 흔들리던 제 삶 속 안정감을 주셨던 분이셨어요.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아(가운데)의 어린 시절.

 

자라면서는 예수님을 만났고, 그 이후 저는 다른 차원의 회복과 힘을 찾았습니다. 그 길을 따라, 제 삶에 허락된 수많은 이들을 만났고, 도움을 받고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삶의 여정 속에서 긍정적인 면들에 집중하고,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는 법과 희망을 잡는 법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어요.

 

| 예수님을 만난 후 삶의 변화(관점의 변화)에 대해 말해주세요.

 

컴패션에서 성경 말씀을 배우고 교회에 다니긴 했지만 인격적으로 예수님과 관계를 맺게 된 순간은 대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을 다시 한번 마주했던 시기였는데요, 이번에는 어린 시절과는 달랐습니다. 제가 처한 상황과 일들을 듣고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진심으로 마음을 함께해 주었고 관심을 가져주어서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어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함을 느끼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렇게 사랑으로 기도해 주고 도움을 준 이들을 통해 저는 예수님이 저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제 곁에서 저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교회 공동체를 통해 예수님을 닮은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 셈이죠. 이 경험은 제 삶에 정말 큰 변화를 가져왔어요.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예수님 안에는 항상 희망과 힘이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꿈을 위한 여정,
미국 유학에 도전하다

 

|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계신 데요, 이 분야를 공부하기로 마음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7년부터 매솟 지역에서 소외된 자들을 위한 일을 시작하면서, 저에게 열정은 있지만 전문적인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들이 직면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제가 조금 더 준비되어야 한다고 느꼈죠. 그래서 저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조금 더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떤 분야를 더 연구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매솟 지역 내 취약한 어린이들과 여성들에게 심리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임상 사회복지학을 연구분야로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상황과 잘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학을 찾던 중 미국 대학의 임상 사회사업 프로그램들이 제게 필요한 지식과 현장 경험들을 제공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주실 수 있나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 있던 저에게 당시 해외 유학은 불가능한 꿈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딱 맞아떨어지듯 해결되었어요, 마치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조율하시는 것 같았죠. 유학 초기 여러 가지 비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당시 친구들이 개인적으로 저에게 월세와 식비로 매달 100~200달러씩 모아서 도움을 줬고, 그 덕분에 월세와 식비를 지불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매번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재정이 채워지는 것들을 경험했어요.

그렇게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은 저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며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결단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성공적으로 졸업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서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현장 인턴십을 이수하는 시간도 소홀히 하지 않았죠. 가끔 편안한 환경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유학생들과 함께하며 위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한 울타리가 되다

 

 시아는 현재 2017년부터 FRP(Freedom Restoration Project)를 설립하여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역의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한국컴패션 사옥에 방문하여 인터뷰를 진행했던 시아의 모습.

 

| 직접 설립하신 비정부기구인 자유회복프로젝트(FRP)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소개해 주세요.

 

FRP(자유 회복 프로젝트, Freedom Restoration Project)는 가정 폭력의 영향을 받은 여성과 어린이를 지원하는 일을 중점으로 일하는 기관인데요, 언어 장벽과 법적 지위 문제로 인해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태국 내 이주민들을 위해 이들이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고 생존과 자립을 위한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주요 사업은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뉩니다. 첫째로는 가정 폭력을 경험한 생존 여성들의 개별 상담과 네트워킹 등을 진행하는 정신건강 서비스, 두 번째로 부모 자녀 사이 비폭력적 방식의 소통을 교육하고 장려함으로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지역사회 교육 지원, 마지막으로는 가정폭력 생존자와 그 자녀를 위한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쉼터 사업입니다.

 

| 가정 폭력의 피해자이거나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입은 여성들과 많은 상담을 해오셨을 것 같은데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희와 함께 일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재정적 자립이에요. 재정적 독립은 학대와 의존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들 중 현재 상당수는 법적 지위 부족, 언어 장벽, 어린 자녀를 둔 미혼모, 제한된 지원 네트워크 등의 요인으로 인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일부 여성들은 구직에 성공하지만 그 비율은 여전히 낮으며, 일자리를 구했음에도 재정적 안정에 도달한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는 여성들이 정기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모두의 온전한 자립을 위하여

 

| 해당 지역 내 취약한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정서적, 물질적 도움을 제공함으로 이들의 자립을 돕고 계신 데요,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는지 말씀해 주세요.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함께 일하는 어머니들이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 판매한 일이에요. 카드를 판매한 후 모든 어머니들과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수익금을 배분할 때였는데요, 많은 어머니들이 봉투를 열고 돈을 세어 보시다가 눈물을 흘리셨어요. 한 분께 그 이유를 물었더니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 번도 이렇게 많은 돈(약 7,000~8,000바트, 한화로 약 26만 원에서 29만 원 사이)을 손에 쥐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셨다고요.
그 어머니께서는 남편과 함께 살 당시, 아주 작은 돈을 써야 할 때에도 허락을 받아야 했고, 항상 ‘너와 아이들은 나 없으면 살 수 없고 매춘을 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라는 식의 말을 들어왔었는데,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게 너무 놀랍고 기뻐서 눈물이 난다고 말씀하셨어요.

 

 

국경지역 취약한 어머니들을 위해, 시아는 직접 엽서 도안을 제작하고 바느질을 가르쳐 이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사진 속 매솟지역 여성들이 직접 만든 엽서를 들고 있는 시아의 모습.

 

저희 기관의 많은 어머니들이 모두 비슷해요.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경험하신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겪는 와중에도 자녀를 부양하고 스스로의 삶을 끝까지 꾸려 나가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삶의 통제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저는 이런 용기 있는 고백과 회복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에게도 영감을 주고 힘을 실어준다고 믿어요.

 

| 아직도 빈곤에 시달리고 가정 폭력 등의 어려움에 직면한 어린이들이 많은데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필요한 것은 제도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요. 한 개인의 문제 해결을 넘어, 광범위한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정부는 사회적 불평등과 성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시스템을 정비하고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이웃, 법 집행 기관, 사회 전체가 책임을 지는 문화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가정 폭력을 '가정 내 문제'로 치부하지 않아야 하죠. 외부의 개입이 없다면 학대의 악순환은 지속될 수밖에 없어요.

저는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학대를 목격할 때 목소리를 내고 제도적 변화를 위해 옹호해야 합니다. 또한 개인으로서 우리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와 그 가정을 지원할 수 있어요. 직접적인 개입, 옹호 또는 정책 변화를 통해 우리 모두는 빈곤과 가정 폭력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아는 한국컴패션 사옥 방문 당시 직원 예배에서 간증을 전하며, 컴패션 직원들에게 “여러분들의 헌신과 열정을 통해,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던 것처럼, 도움이 필요한 전 세계 수많은 어린이들의 삶에 계속해서 기적을 만들어주세요.”라는 말을 전했다.

 

 

|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 제목에 대해 알려주세요.

 

저에게는 세 가지 비전이 있어요. 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째로는 제가 설립한 FRP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하는 거예요. 쉼터에 있는 어머니들과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한데, 현재 저희가 사용하고 있는 공간은 임대 계약이 된 곳이에요. 충분한 공간이 안정적으로 확보된다면 어머니들을 위한 직업 훈련과 보육 시설까지 저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입니다.

두 번째로는 가정폭력 가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가해자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여 가족 구성원 사이 신뢰를 구축하고 ‘존중’과 ‘공동 책임’의 중요성을 배우는 시간을 보내며, 스트레스와 분노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제공하고 싶어요.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한 해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으로부터 접근하는 이 방식이 가족과 커뮤니티 내에서 더 건강한 관계를 조성할 수 있다고 믿어요.

마지막으로, 기관에 등록된 어머니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취업의 기회와 기술 교육 제공을 통해 여성들이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장 11절-

   

 

 


어린 시절 상처를 
딛고 일어나,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수많은 컴패션 졸업생들을 응원합니다.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을 사랑할 때
진짜 회복이 시작되는 거죠.”

- 태국컴패션 졸업생 시아(Sia)-

 

 

 

미얀마와 태국 국경 사이에는 국적이 없는 소수 민족들이 존재합니다. 군부로부터의 위협 등 각자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 태국 국경 지역이나 밀림에 자리를 잡은 이들. 시아의 부모님도 그중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난민 가정으로 겪는 차별과 극도의 가난, 가정폭력이라는 상처를 가진 소녀는 어느새 자라,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는 이들을 품으며 위로하는 힘을 가진 리더로 세워졌습니다.

컴패션의 졸업생이자 태국 국경지역 취약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돕는 비영리기구(FRP)의 설립자인 시아(Sia)의 이야기입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 거듭난 그녀의 이야기, 지금 들려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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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린이를 후원한다는 것은,
어린이 삶의 변화를 일으킬 뿐 아니라
생각보다 더 큰 파급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에요.


- 시아(Sia), 태국컴패션 졸업생-

 

 


  

 

가난한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사랑스러운 소녀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와차라폰 쿠케와카셈입니다. 그냥 시아라고 불러주세요(웃음). 저는 현재 태국과 미얀마 국경에 있는 ‘매솟(Mae Sot)’이라는 도시의 작은 마을에서 움이 필요한 엄마와 어린이들을 위해 임상 사회복지사이자 옹호자로 일하고 있어요.

 

 | 태국 아카족 출신이라고 들었는데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나 자라온 배경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아카족은 예로부터 산 위에 작은 마을에 모여 살던 소수민족인데요, 최근에는 많은 이들이 도시나 마을에 살고 있어요. 제가 알기로 현재 아카족은 라오스와 미얀마, 중국과 태국 등에 분포하여 거주하고 있는데요, 저희 부모님의 경우, 10대 때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이주해 오신 케이스예요. 당시에는 태국 내 신분증을 포함해 법적인 서류들을 받을 수 없으셨고, 때문에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하셨다고 해요.

 

어린 시절 시아와 어머니

 

어렸을 적 살던 마을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당시 저희 가족은 직접 채소와 닭, 돼지 등을 키우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소박한 생활을 했습니다. 마을 가정들이 대부분 가난했고, 부모님 두 분 모두 많은 교육이나 기회를 받지 못하셨어요. 정말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럼에도 어머니는 제가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셨어요. 학교를 입학할 때가 되면, 이웃들에게 교통비와 학비, 그리고 교복을 위한 돈을 빌리러 다니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나요.

 

 

어두웠던 어린 시절,
나의 울타리가 되어준 컴패션

 

| 컴패션에 등록된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당시 경험하고, 배우고 느낀 것들 중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컴패션에 등록되었을 때, 저는 아마 4-5살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매주 토요일 열리던 컴패션 어린이센터 수업에 가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성경 구절을 빨리 찾는지 겨루는 게임이었어요. 저는 항상 누구보다 빨리 성경 구절을 찾는 아이였답니다. (웃음) 이런 활동들 덕분에 재미있게 즐기면서 성경에 대해 더 배울 수 있었죠.

 

| 후원자님에 대한 기억이 어떠셨는지도 궁금해요. 

 

사실 처음엔 후원자가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어요. 너무 어린 나이였으니까요. 점차 커가면서 후원자님 가족과 반려동물의 사진과 함께 편지를 받았는데, 당시에는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후원자라는 분은 편지와 사진을 보내주시는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렸을 때는 글을 읽거나 쓸 줄 몰랐기 때문에 선생님들께서 편지를 읽어 주셨고, 답장을 쓰는 데 도움을 주셨던 기억이 나요. 또 매번 크리스마스 때마다 보내주시는 사랑이 담긴 편지와 선물을 받을 때마다 정말 행복했고, 그때 느꼈던 기쁨은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습니다.

 

시아의 어린 시절 사진

 

| 어린 시절 가정 폭력을 겪으셨다고 들었어요. 쉽지 않은 어린 날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존재가 있으셨다면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일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 끔찍한 순간을 목격할 때, 아무것도 도울 수 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던 것은 저를 무기력하고 겁에 질리게 만들었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엄마를 죽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압도되기도 했죠. 그런 마음들은 매번 반복되는 악몽처럼 저를 괴롭혔어요. 엄마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죄책감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도 기억해요.

당시 제 삶은 예수님을 알기 전이었고, 저는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나 믿음이 없었죠. 그런 저의 어린 시절을 지탱해 준 것은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사랑과 보살핌이었습니다. 폭력 속에 있으면서도 엄마는 저와 동생들을 향해 변함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보여주셨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저희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저희를 지지해 주는 조부모님도 어린 시절 흔들리던 제 삶 속 안정감을 주셨던 분이셨어요.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아(가운데)의 어린 시절.

 

자라면서는 예수님을 만났고, 그 이후 저는 다른 차원의 회복과 힘을 찾았습니다. 그 길을 따라, 제 삶에 허락된 수많은 이들을 만났고, 도움을 받고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삶의 여정 속에서 긍정적인 면들에 집중하고,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는 법과 희망을 잡는 법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어요.

 

| 예수님을 만난 후 삶의 변화(관점의 변화)에 대해 말해주세요.

 

컴패션에서 성경 말씀을 배우고 교회에 다니긴 했지만 인격적으로 예수님과 관계를 맺게 된 순간은 대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을 다시 한번 마주했던 시기였는데요, 이번에는 어린 시절과는 달랐습니다. 제가 처한 상황과 일들을 듣고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진심으로 마음을 함께해 주었고 관심을 가져주어서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어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함을 느끼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렇게 사랑으로 기도해 주고 도움을 준 이들을 통해 저는 예수님이 저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제 곁에서 저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교회 공동체를 통해 예수님을 닮은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 셈이죠. 이 경험은 제 삶에 정말 큰 변화를 가져왔어요.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예수님 안에는 항상 희망과 힘이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꿈을 위한 여정,
미국 유학에 도전하다

 

|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계신 데요, 이 분야를 공부하기로 마음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7년부터 매솟 지역에서 소외된 자들을 위한 일을 시작하면서, 저에게 열정은 있지만 전문적인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들이 직면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제가 조금 더 준비되어야 한다고 느꼈죠. 그래서 저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조금 더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떤 분야를 더 연구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매솟 지역 내 취약한 어린이들과 여성들에게 심리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임상 사회복지학을 연구분야로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상황과 잘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학을 찾던 중 미국 대학의 임상 사회사업 프로그램들이 제게 필요한 지식과 현장 경험들을 제공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주실 수 있나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 있던 저에게 당시 해외 유학은 불가능한 꿈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딱 맞아떨어지듯 해결되었어요, 마치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조율하시는 것 같았죠. 유학 초기 여러 가지 비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당시 친구들이 개인적으로 저에게 월세와 식비로 매달 100~200달러씩 모아서 도움을 줬고, 그 덕분에 월세와 식비를 지불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매번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재정이 채워지는 것들을 경험했어요.

그렇게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은 저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며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결단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성공적으로 졸업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서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현장 인턴십을 이수하는 시간도 소홀히 하지 않았죠. 가끔 편안한 환경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유학생들과 함께하며 위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한 울타리가 되다

 

 시아는 현재 2017년부터 FRP(Freedom Restoration Project)를 설립하여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역의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한국컴패션 사옥에 방문하여 인터뷰를 진행했던 시아의 모습.

 

| 직접 설립하신 비정부기구인 자유회복프로젝트(FRP)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소개해 주세요.

 

FRP(자유 회복 프로젝트, Freedom Restoration Project)는 가정 폭력의 영향을 받은 여성과 어린이를 지원하는 일을 중점으로 일하는 기관인데요, 언어 장벽과 법적 지위 문제로 인해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태국 내 이주민들을 위해 이들이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고 생존과 자립을 위한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주요 사업은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뉩니다. 첫째로는 가정 폭력을 경험한 생존 여성들의 개별 상담과 네트워킹 등을 진행하는 정신건강 서비스, 두 번째로 부모 자녀 사이 비폭력적 방식의 소통을 교육하고 장려함으로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지역사회 교육 지원, 마지막으로는 가정폭력 생존자와 그 자녀를 위한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쉼터 사업입니다.

 

| 가정 폭력의 피해자이거나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입은 여성들과 많은 상담을 해오셨을 것 같은데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희와 함께 일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재정적 자립이에요. 재정적 독립은 학대와 의존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들 중 현재 상당수는 법적 지위 부족, 언어 장벽, 어린 자녀를 둔 미혼모, 제한된 지원 네트워크 등의 요인으로 인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일부 여성들은 구직에 성공하지만 그 비율은 여전히 낮으며, 일자리를 구했음에도 재정적 안정에 도달한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는 여성들이 정기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모두의 온전한 자립을 위하여

 

| 해당 지역 내 취약한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정서적, 물질적 도움을 제공함으로 이들의 자립을 돕고 계신 데요,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는지 말씀해 주세요.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함께 일하는 어머니들이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 판매한 일이에요. 카드를 판매한 후 모든 어머니들과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수익금을 배분할 때였는데요, 많은 어머니들이 봉투를 열고 돈을 세어 보시다가 눈물을 흘리셨어요. 한 분께 그 이유를 물었더니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 번도 이렇게 많은 돈(약 7,000~8,000바트, 한화로 약 26만 원에서 29만 원 사이)을 손에 쥐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셨다고요.
그 어머니께서는 남편과 함께 살 당시, 아주 작은 돈을 써야 할 때에도 허락을 받아야 했고, 항상 ‘너와 아이들은 나 없으면 살 수 없고 매춘을 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라는 식의 말을 들어왔었는데,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게 너무 놀랍고 기뻐서 눈물이 난다고 말씀하셨어요.

 

 

국경지역 취약한 어머니들을 위해, 시아는 직접 엽서 도안을 제작하고 바느질을 가르쳐 이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사진 속 매솟지역 여성들이 직접 만든 엽서를 들고 있는 시아의 모습.

 

저희 기관의 많은 어머니들이 모두 비슷해요.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경험하신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겪는 와중에도 자녀를 부양하고 스스로의 삶을 끝까지 꾸려 나가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삶의 통제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저는 이런 용기 있는 고백과 회복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에게도 영감을 주고 힘을 실어준다고 믿어요.

 

| 아직도 빈곤에 시달리고 가정 폭력 등의 어려움에 직면한 어린이들이 많은데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필요한 것은 제도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요. 한 개인의 문제 해결을 넘어, 광범위한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정부는 사회적 불평등과 성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시스템을 정비하고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이웃, 법 집행 기관, 사회 전체가 책임을 지는 문화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가정 폭력을 '가정 내 문제'로 치부하지 않아야 하죠. 외부의 개입이 없다면 학대의 악순환은 지속될 수밖에 없어요.

저는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학대를 목격할 때 목소리를 내고 제도적 변화를 위해 옹호해야 합니다. 또한 개인으로서 우리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와 그 가정을 지원할 수 있어요. 직접적인 개입, 옹호 또는 정책 변화를 통해 우리 모두는 빈곤과 가정 폭력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아는 한국컴패션 사옥 방문 당시 직원 예배에서 간증을 전하며, 컴패션 직원들에게 “여러분들의 헌신과 열정을 통해,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던 것처럼, 도움이 필요한 전 세계 수많은 어린이들의 삶에 계속해서 기적을 만들어주세요.”라는 말을 전했다.

 

 

| 앞으로의 계획과 기도 제목에 대해 알려주세요.

 

저에게는 세 가지 비전이 있어요. 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째로는 제가 설립한 FRP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하는 거예요. 쉼터에 있는 어머니들과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한데, 현재 저희가 사용하고 있는 공간은 임대 계약이 된 곳이에요. 충분한 공간이 안정적으로 확보된다면 어머니들을 위한 직업 훈련과 보육 시설까지 저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입니다.

두 번째로는 가정폭력 가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가해자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여 가족 구성원 사이 신뢰를 구축하고 ‘존중’과 ‘공동 책임’의 중요성을 배우는 시간을 보내며, 스트레스와 분노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제공하고 싶어요.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한 해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으로부터 접근하는 이 방식이 가족과 커뮤니티 내에서 더 건강한 관계를 조성할 수 있다고 믿어요.

마지막으로, 기관에 등록된 어머니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취업의 기회와 기술 교육 제공을 통해 여성들이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장 11절-

   

 

 


어린 시절 상처를 
딛고 일어나,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수많은 컴패션 졸업생들을 응원합니다.
 
 

 

 

  

 

 

 

 

 

 

 

 

 

 

 

 

 

댓글
0 / 300자
  • 7933579@hanmail.net
    2024-06-15 06:42:37

    작은 후원으로 이렇게 큰일을 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또 후원을 받은 한사람이 더 많은이들을 살리고 있으니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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