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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후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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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러 갑니다]
“모든 것을 다시 그분께”
공간을 가득 채운 마음 하나
- 기부 전시 “YESHUA-예슈아 展”, 이창주 후원자(헤어 디자이너, 유다) -
“예슈아(YESHUA)”는 “구원하다”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어 구원이나 구원자를 뜻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태복음 1:21)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8일까지, 복합 문화 전시공간 "금호 알베르"에서 있었던 사진전
전시공간의 지하부터 3층까지 여덟 명의 여인들과 만나고 나면, 4층에서 컴패션의 아기와 엄마 살리기 후원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성경 속 여인들을 관통해 지금의 가장 작고 연약한 자들을 향한 “긍휼함(compassion)”으로 흐르고 있던 것입니다.
'난 아티스트가 될 거야'라고 결심하던 어느 날,
꿈에서 예수님의 머리를 만져 드렸습니다.
23년 전, 예수님의 형상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기꺼이 드렸던 첫 포트폴리오, 그리고 세 번째 사진전.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창주 후원자는
다시 한번 드림의 현장 속에 섰습니다.
사진 설명 : 희망의 유산을 이어가는 사람(좌)
02. 생명의 은신처 : 라합
사진작가 ㅣ 정상현
사진 설명 : 고난의 틈새에 피어나는 작은 순종
04. 존재의 여행 : 룻
사진작가 ㅣ 정상현
┃직접 사진을 걸고 자르고 다치고 하면서 전시를 준비하였습니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주관하였는데, 정말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 안에서 들려온 수많은 이야기와 공기의 흐름이 있었지만, 저의 소감은 세상의 1번지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예수아(YESHUA)의 이름을 높게 걸었다!” 이것이었습니다.
많은 과정들이 있었지만, 과정으로 남았고, 지금 벅차오르게 하는 것은, 저 높이 걸려 있던 그 예슈아의 이름입니다. 제가 선교사도 아니고 목회자도 아니죠.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단순하고 쉽게 이 이름 하나만 알리자, 이게 첫 시작이었습니다.
┃12년 전에 이미 사진 촬영은 완료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촬영 후, 전시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는데, 이유가 있었을까요?
준비기간까지 합하면 13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딱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없었어요. 예를 들어, 지금 보시는 이 사진집이 그때 당시와는 전혀 다른 책이에요. 12년 동안, 일고여덟 번 편집을 다시 해서 나온 거예요.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겠는데, 그때 당시에 제가 봐도 뭔가 아닌 것 같았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저도 책을 15건 넘게 출판했고 어떤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몇 년 동안 근무해보기도 하면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그 결과가 담기는 데 이렇게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정리하자면, 지금이 가장 좋은 때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사진 옆에 있는 글은, 이번에 다 새로 쓴 것입니다.
[사진 제공 : 제로원 크리에이티브]
┃전시회가 있기까지 과정마다 재능기부로 참여하고 필요한 부분은 모두 후원으로 채워졌다고 들었습니다. 함께해 주신 분들께 한 말씀해주신다면요?
촬영으로, 의상으로, 무대 연출로, 공연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함께해 주셨던 분들이 모두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 후기들도 저에게 많이 이야기들 해주고 계세요. 저희가 목적을 두고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았고 그분들도 그 목적에 대해 충분히 공감해 주시고 읽으셨기 때문에 함께해 주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분들에게 은혜가 흘러갈 것을 믿고 있어요.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분들은 그것으로 정말 큰 일을 하셨다라고 생각해요. 여기에서 제 성격이 나오는 것이기는 하죠. (웃음)
(아내를 보며) 저 사람이 고생 많이 했어요. 아내가 이 행사를 해냈다는 것보다 예수님을 더 깊이 아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입니다.
04. 산 자의 어미 : 하와
사진 작가 ㅣ 최용빈
┃전시를 준비하면서 멈추고 기다리고 엎드러지는 시간을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어릴 때 힘들게 살아서 그런지, 제가 일을 앞두고 기다리는 타입이 아니에요. 굉장히 전투적으로 사는 사람이고 억척같이 열심을 내어 성과를 이루어내는 사람이죠. 이번 전시회를 제외하고는요.
원래 막 달려나가 해내야 하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끝까지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기다려 보기로 했어요. 제 안에서 갈등과 싸움이 굉장히 컸죠. 원래대로라면, 당장 해결해 보려고 나섰어야 했을 일들을 기다리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를 바랐죠. 결국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들을, 돕는 손길과 모아 주시는 분들을 통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알았죠. 아, 나란 사람은 이 정도로 엎드려져야 하는 구나, 라고요.
07. 당신의 옷자락 만으로도 : 혈루병 여인
사진작가 ㅣ 임한수
┃왜 그렇게까지 엎드러졌을까요.
예슈아를 1번으로 밖에 내놓겠다고 했는데, 제가 움직이면 안되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 의가 막 살아나기 시작하니까 힘들었어요. 제가 직접 하고 싶은 게 왜 없겠어요? 또 이걸로 유명세나 얻고 싶은 게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궁리하면 궁리할수록, 하면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물론 기도하면서 만약 제가 하던대로 움직이게 하신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의향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먼저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이번 전시에서 제가 가진 첫 번째 기준이었습니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움직여주신 모든 분들은 정말 축복의 통로입니다.
01. 산 자의 어미 : 하와(표지)
사진작가 ㅣ 최용빈
160페이지에 달하는 사진집 중,
40점을 선정하여 전시하였습니다.
<예슈아(YESHUA) 사진집(제로원 크리에이티브 발행)>의 수익금은
한국컴패션에 기부되어
생존 위기에 처한 아기와 엄마를 기원하는
"아기와 엄마 살리기" 프로그램에 사용됩니다.
┃전시에는 일곱 명의 성경 속 여인이 등장합니다. 사진으로 성경 시대의 여인들을 표현하는 데 있어 애로사항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현실과 과거를 어떻게 연결하고 표현을 하느냐가 고민이었어요. 사실 여인들마다 살았던 시기가 다르고 정확한 고증이 있는 게 아니었어요. 자료를 찾아봤지만 참고할 만한 이미지들은 별로 없더라고요.
결국 그 시대의 삶의 배경, 속성 등을 위주로 상상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인물에 대한 미적 감각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어느 정도의 절충도 필요했기 때문에 완전한 재창조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재해석이 들어갔지요.
예를 들어 보자면, 룻의 사진에는 빛에 의한 콘트라스트를 다 뺐어요. 밭에 나가 이삭을 줍던 룻의 이야기에서 햇빛과 햇빛에 드러난 적나라한 피부 톤, 그을린 피부결을 살려서 메이크업을 했지요. 이 여인이 어떤 옷을 입었을까, 머릿결은 어땠을까, 그때 이삭 줍기만 했을까, 상상을 굉장히 많이 했고 그 안에서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았어요. 전체적인 캐릭터를 표현해 내려고 하지 말자, 해당되는 그 성경 구절 안에서의 감정을 연기해보자고요.
성경 구절과 구절 사이에 있던, 적혀 있지 않은 부분들을 배우는 계속 묵상하고 그때 상황은 물론 철저하게 그 구절 안에서의 감정 연기를 표현하도록 했습니다. 다른 분들이 성경 속 인물에 대해 표현한 작품들을 보면, 캐릭터 전체를 표현하려고 했다면, 저희는 바로 그 성경 구절 안에서의 표현에 집중한 것, 저희와의 차별적인 부분이 여기에서 나타났다고 봅니다.
04. 존재의 여행 : 룻
사진작가 ㅣ 정상현
┃처음 컴패션 후원은 어떻게 하게 되었어요?
첫 번째 어린이를 후원한 것은 2006년에 온누리 교회에서 있었던 컴패션 선데이에서였어요. 온누리교회에 다녔던 게 아니고, 컴패션밴드가 공연을 했는데, 밴드 멤버로서 저는 주로 의자 나르고, 주차안내 하고, 쓰레기 치우는 일들을 했죠. 이번 전시도 그렇고 저는 좀 몸으로 고생하면서 돕는 일을 주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웃음)
당시 고 하용조 목사님이 정말 강하게 결연을 이야기하셨어요. 매 예배 때마다 2,3천 명씩 어린이들이 후원자를 만났죠. 결연서를 걷는 게 아니라 막 수거하듯이 받아갔던 것 같아요. 거기에서 저도 첫 번째 후원 어린이 온두라스의 아스뜨리드(Astrid)를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후원 어린이가 백혈병에 걸려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직접 온두라스로 만나러 갔습니다. 당시 어린이는 항암 치료에 대한 부작용으로 기존에 받았던 성장 사진 속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지만, 후원자님을 만나 커다란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훗날 병은 완치되었고, 건강한 몸으로 컴패션도 잘 졸업하였습니다.
아스뜨리드와의 헤어짐.
┃이번 사진집 판매 수익금을 컴패션 아기와 엄마 살리기에 후원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2019년에 헤어 디자이너가 꿈인 청소년들에게 미용 기술을 전수해주는 시간을 가졌어요. “바리깡블루스”라고 이름을 붙였지요. 가난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지 못해 취업이 어려운 필리핀 세부의 청소년 40명에게 기술교육을 지원하는 캠페인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기술 교육을 해주고, 모금활동도 했었죠.
교육을 마치고 기도 후 헤어질 때, 우리끼리 수료식을 했습니다. 그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내가 12년 전에, 동인도에서 가서 동네 어린아이들의 머리를 직접 잘라준 적이 있었어. 그때 호텔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만약 내가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꼭 다시 이런 모습으로 어린이들의 머리를 다듬어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거든."
"이제 여러분이 졸업 후, 밖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나와 같은 마음으로 동네로 돌아가 어린아이들에게 똑 같은 마음을 선물해 줄 수 있으면 좋습니다. 12년 후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함께 그렇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보자."라고요.
저는 컴패션의 기부라는 게 계속 그런 연결이었던 것 같아요. 액수가 그리 크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기게 되는 그런 것처럼요.
┃처음 후원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한결같이 어린이를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저는 어릴 때 정말 가난했어요. 그래서 컴패션 현지에서 만난 어린이들이 겪는 가난의 온도차를 그렇게 크게 생각하게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너무 힘드니까 도와줘야 해, 라기 보다는 우리의 일상에서 컴패션이 그냥 녹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삶에 스며들어 있는 컴패션이요. 일반적인 것은 별로 드러나진 않잖아요. 사실 일반적인 게 제일 중요한데 말이에요. 이번 전시도 자연스럽게 퍼져 나가기를 바랐어요.
┃처음 마음에 담았다는 이 사진 속 어린이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2006년도에 동인도에 갔을 때였어요. 제가 기대를 갖고 굉장히 비싸고 좋은 장비를 갖고 갔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 머리카락이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어요. 장비를 다 버렸죠. 그러던 차에, 동행했던 사진작가님이, 허호 작가님라는 분이신데, 여기에서 사진을 더 찍자고 하시더라고요.
이 이야기가 어린이센터 선생님들한테 들어간 거예요. 한국에서 온 후원자들이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까, 부랴부랴 막 애들 찾으러 다니시는 거예요. 속에서 화가 올라오려는데 못하겠다고 할 수 없잖아요. 나무 밑 그늘에서 찍었으면 했는데, 거기에는 뱀 나온다고 선생님이 말리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벌판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었죠.
열 몇 명의 머리를 자르고, 마지막 애가 바로 이 사진 속 어린이예요. 오라고 손짓을 했는데, 애가 짝다리로 서서, 저보고 자기를 데리러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갔어요. 제가 얘를 데리러 가면서 얼마나 미웠겠어요. 가서 보니, 한쪽 눈은 실명되어 눈동자가 하얗고 한쪽 발이 굉장히 얇아서 짝다리를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제가 이 애를 업고 이 사진 속 공간까지 왔어요.
처음부터 아이 눈이 이랬던 게 아니고 놀다가 볼펜에 찔렸는데 병원 못 가서 실명되었고 한쪽이 실명되니까 다른 한쪽도 조금씩 안 좋아지고 있었어요. 다리는 다쳤는데 치료를 못해서 파상풍 걸려서 아예 못 쓰고. 아직도 이 아이가 저한테 굉장히 큰 의미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컴패션이 제 마음에 더 깊이 남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아이가 살아 있다면, 네, 살아 있다면, 한 번 안아주고 싶어요. 고생했으니까요. 그리고 주머니에 현금 좀 찔러주고 싶네요.
이창주 후원자는 사진집 서두에서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달란트가 있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만의
여정을 걸을 수 있다고 격려합니다.
이창주 후원자의
앞으로의 여정을 컴패션이 함께 응원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기부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컴패션 후원자의 진솔한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후원자,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을 함께 공감하며,
그 인생 속에서 발견되는 ‘컴패션 후원의 진정한 가치’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모든 것을 다시 그분께”
공간을 가득 채운 마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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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전시 “YESHUA-예슈아 展”,
이창주 후원자(헤어 디자이너, 유다)
“예슈아(YESHUA)”는 “구원하다”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어 구원이나 구원자를 뜻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태복음 1:21)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8일까지, 복합 문화 전시공간 "금호 알베르"에서 있었던 사진전
전시공간의 지하부터 3층까지 여덟 명의 여인들과 만나고 나면, 4층에서 컴패션의 아기와 엄마 살리기 후원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성경 속 여인들을 관통해 지금의 가장 작고 연약한 자들을 향한 “긍휼함(compassion)”으로 흐르고 있던 것입니다.
'난 아티스트가 될 거야'라고
결심하던 어느 날,
꿈에서 예수님의 머리를 만져 드렸습니다.
23년 전, 예수님의 형상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기꺼이 드렸던 첫 포트폴리오,
그리고 세 번째 사진전.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창주 후원자는
다시 한번 드림의 현장 속에 섰습니다.
사진 설명 : 희망의 유산을 이어가는 사람(좌)
02. 생명의 은신처 : 라합
사진작가 ㅣ 정상현
사진 설명 : 고난의 틈새에 피어나는 작은 순종
04. 존재의 여행 : 룻
사진작가 ㅣ 정상현
┃직접 사진을 걸고 자르고 다치고 하면서 전시를 준비하였습니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주관하였는데, 정말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 안에서 들려온 수많은 이야기와 공기의 흐름이 있었지만, 저의 소감은 세상의 1번지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예수아(YESHUA)의 이름을 높게 걸었다!” 이것이었습니다.
많은 과정들이 있었지만, 과정으로 남았고, 지금 벅차오르게 하는 것은, 저 높이 걸려 있던 그 예슈아의 이름입니다. 제가 선교사도 아니고 목회자도 아니죠.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단순하고 쉽게 이 이름 하나만 알리자, 이게 첫 시작이었습니다.
┃12년 전에 이미 사진 촬영은 완료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촬영 후, 전시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는데, 이유가 있었을까요?
준비기간까지 합하면 13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딱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없었어요.
예를 들어, 지금 보시는 이 사진집이 그때 당시와는 전혀 다른 책이에요. 12년 동안, 일고여덟 번 편집을 다시 해서 나온 거예요.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겠는데, 그때 당시에 제가 봐도 뭔가 아닌 것 같았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저도 책을 15건 넘게 출판했고 어떤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몇 년 동안 근무해보기도 하면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그 결과가 담기는 데 이렇게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정리하자면, 지금이 가장 좋은 때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사진 옆에 있는 글은, 이번에 다 새로 쓴 것입니다.
[사진 제공 : 제로원 크리에이티브]
┃전시회가 있기까지 과정마다 재능기부로 참여하고 필요한 부분은 모두 후원으로 채워졌다고 들었습니다. 함께해 주신 분들께 한 말씀해주신다면요?
촬영으로, 의상으로, 무대 연출로, 공연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함께해 주셨던 분들이 모두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 후기들도 저에게 많이 이야기들 해주고 계세요.
저희가 목적을 두고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았고 그분들도 그 목적에 대해 충분히 공감해 주시고 읽으셨기 때문에 함께해 주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분들에게 은혜가 흘러갈 것을 믿고 있어요.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분들은 그것으로 정말 큰 일을 하셨다라고 생각해요. 여기에서 제 성격이 나오는 것이기는 하죠. (웃음)
(아내를 보며) 저 사람이 고생 많이 했어요. 아내가 이 행사를 해냈다는 것보다 예수님을 더 깊이 아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입니다.
04. 산 자의 어미 : 하와
사진 작가 ㅣ 최용빈
┃전시를 준비하면서 멈추고 기다리고 엎드러지는 시간을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어릴 때 힘들게 살아서 그런지, 제가 일을 앞두고 기다리는 타입이 아니에요. 굉장히 전투적으로 사는 사람이고 억척같이 열심을 내어 성과를 이루어내는 사람이죠. 이번 전시회를 제외하고는요.
원래 막 달려나가 해내야 하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끝까지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기다려 보기로 했어요.
제 안에서 갈등과 싸움이 굉장히 컸죠. 원래대로라면, 당장 해결해 보려고 나섰어야 했을 일들을 기다리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를 바랐죠. 결국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들을, 돕는 손길과 모아 주시는 분들을 통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알았죠. 아, 나란 사람은 이 정도로 엎드려져야 하는 구나, 라고요.
07. 당신의 옷자락 만으로도 : 혈루병 여인
사진작가 ㅣ 임한수
┃왜 그렇게까지 엎드러졌을까요.
예슈아를 1번으로 밖에 내놓겠다고 했는데, 제가 움직이면 안되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 의가 막 살아나기 시작하니까 힘들었어요. 제가 직접 하고 싶은 게 왜 없겠어요? 또 이걸로 유명세나 얻고 싶은 게 왜 없었겠어요?
그런데 궁리하면 궁리할수록, 하면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물론 기도하면서 만약 제가 하던대로 움직이게 하신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의향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먼저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이번 전시에서 제가 가진 첫 번째 기준이었습니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움직여주신 모든 분들은 정말 축복의 통로입니다.
01. 산 자의 어미 : 하와(표지)
사진작가 ㅣ 최용빈
160페이지에 달하는 사진집 중,
40점을 선정하여 전시하였습니다.
<예슈아(YESHUA) 사진집(제로원 크리에이티브 발행)>의 수익금은
한국컴패션에 기부되어
생존 위기에 처한 아기와 엄마를 기원하는
"아기와 엄마 살리기" 프로그램에 사용됩니다.
┃전시에는 일곱 명의 성경 속 여인이 등장합니다. 사진으로 성경 시대의 여인들을 표현하는 데 있어 애로사항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현실과 과거를 어떻게 연결하고 표현을 하느냐가 고민이었어요. 사실 여인들마다 살았던 시기가 다르고 정확한 고증이 있는 게 아니었어요. 자료를 찾아봤지만 참고할 만한 이미지들은 별로 없더라고요.
결국 그 시대의 삶의 배경, 속성 등을 위주로 상상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인물에 대한 미적 감각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어느 정도의 절충도 필요했기 때문에 완전한 재창조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재해석이 들어갔지요.
예를 들어 보자면, 룻의 사진에는 빛에 의한 콘트라스트를 다 뺐어요. 밭에 나가 이삭을 줍던 룻의 이야기에서 햇빛과 햇빛에 드러난 적나라한 피부 톤, 그을린 피부결을 살려서 메이크업을 했지요.
이 여인이 어떤 옷을 입었을까, 머릿결은 어땠을까, 그때 이삭 줍기만 했을까, 상상을 굉장히 많이 했고 그 안에서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았어요. 전체적인 캐릭터를 표현해 내려고 하지 말자, 해당되는 그 성경 구절 안에서의 감정을 연기해보자고요.
04. 존재의 여행 : 룻
사진작가 ㅣ 정상현
성경 구절과 구절 사이에 있던, 적혀 있지 않은 부분들을 배우는 계속 묵상하고 그때 상황은 물론 철저하게 그 구절 안에서의 감정 연기를 표현하도록 했습니다.
다른 분들이 성경 속 인물에 대해 표현한 작품들을 보면, 캐릭터 전체를 표현하려고 했다면, 저희는 바로 그 성경 구절 안에서의 표현에 집중한 것, 저희와의 차별적인 부분이 여기에서 나타났다고 봅니다.
┃처음 컴패션 후원은 어떻게 하게 되었어요?
첫 번째 어린이를 후원한 것은 2006년에 온누리 교회에서 있었던 컴패션 선데이에서였어요. 온누리교회에 다녔던 게 아니고, 컴패션밴드가 공연을 했는데, 밴드 멤버로서 저는 주로 의자 나르고, 주차안내 하고, 쓰레기 치우는 일들을 했죠. 이번 전시도 그렇고 저는 좀 몸으로 고생하면서 돕는 일을 주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웃음)
당시 고 하용조 목사님이 정말 강하게 결연을 이야기하셨어요. 매 예배 때마다 2,3천 명씩 어린이들이 후원자를 만났죠. 결연서를 걷는 게 아니라 막 수거하듯이 받아갔던 것 같아요. 거기에서 저도 첫 번째 후원 어린이 온두라스의 아스뜨리드(Astrid)를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후원 어린이가 백혈병에 걸려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직접 온두라스로 만나러 갔습니다. 당시 어린이는 항암 치료에 대한 부작용으로 기존에 받았던 성장 사진 속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지만, 후원자님을 만나 커다란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훗날 병은 완치되었고, 건강한 몸으로 컴패션도 잘 졸업하였습니다.
아스뜨리드와의 헤어짐.
┃이번 사진집 판매 수익금을 컴패션 "아기와 엄마 살리기"에 후원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2019년에 헤어 디자이너가 꿈인 청소년들에게 미용 기술을 전수해주는 시간을 가졌어요. “바리깡블루스”라고 이름을 붙였지요.
가난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지 못해 취업이 어려운 필리핀 세부의 청소년 40명에게 기술교육을 지원하는 캠페인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기술 교육을 해주고, 모금활동도 했었죠.
교육을 마치고 기도 후 헤어질 때, 우리끼리 수료식을 했습니다. 그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내가 12년 전에, 동인도에서 가서 동네 어린아이들의 머리를 직접 잘라준 적이 있었어. 그때 호텔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만약 내가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꼭 다시 이런 모습으로 어린이들의 머리를 다듬어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거든."
"이제 여러분이 졸업 후, 밖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나와 같은 마음으로 동네로 돌아가 어린아이들에게 똑 같은 마음을 선물해 줄 수 있으면 좋습니다. 12년 후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함께 그렇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보자."라고요.
저는 컴패션의 기부라는 게 계속 그런 연결이었던 것 같아요. 액수가 그리 크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기게 되는 그런 것처럼요.
┃처음 후원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한결같이 어린이를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저는 어릴 때 정말 가난했어요. 그래서 컴패션 현지에서 만난 어린이들이 겪는 가난의 온도차를 그렇게 크게 생각하게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너무 힘드니까 도와줘야 해, 라기 보다는 우리의 일상에서 컴패션이 그냥 녹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삶에 스며들어 있는 컴패션이요. 일반적인 것은 별로 드러나진 않잖아요. 사실 일반적인 게 제일 중요한데 말이에요. 이번 전시도 자연스럽게 퍼져 나가기를 바랐어요.
┃처음 마음에 담았다는 이 사진 속 어린이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2006년도에 동인도에 갔을 때였어요. 제가 기대를 갖고 굉장히 비싸고 좋은 장비를 갖고 갔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 머리카락이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어요. 장비를 다 버렸죠.
그러던 차에, 동행했던 사진작가님이, 허호 작가님라는 분이신데, 여기에서 사진을 더 찍자고 하시더라고요.
이 이야기가 어린이센터 선생님들한테 들어간 거예요. 한국에서 온 후원자들이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까, 부랴부랴 막 애들 찾으러 다니시는 거예요. 속에서 화가 올라오려는데 못하겠다고 할 수 없잖아요. 나무 밑 그늘에서 찍었으면 했는데, 거기에는 뱀 나온다고 선생님이 말리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벌판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었죠.
열 몇 명의 머리를 자르고, 마지막 애가 바로 이 사진 속 어린이예요. 오라고 손짓을 했는데, 애가 짝다리로 서서, 저보고 자기를 데리러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갔어요. 제가 얘를 데리러 가면서 얼마나 미웠겠어요. 가서 보니, 한쪽 눈은 실명되어 눈동자가 하얗고 한쪽 발이 굉장히 얇아서 짝다리를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제가 이 애를 업고 이 사진 속 공간까지 왔어요.
처음부터 아이 눈이 이랬던 게 아니고 놀다가 볼펜에 찔렸는데 병원 못 가서 실명되었고 한쪽이 실명되니까 다른 한쪽도 조금씩 안 좋아지고 있었어요. 다리는 다쳤는데 치료를 못해서 파상풍 걸려서 아예 못 쓰고. 아직도 이 아이가 저한테 굉장히 큰 의미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컴패션이 제 마음에 더 깊이 남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아이가 살아 있다면, 네, 살아 있다면, 한 번 안아주고 싶어요. 고생했으니까요. 그리고 주머니에 현금 좀 찔러주고 싶네요.
이창주 후원자는 사진집 서두에서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달란트가 있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만의
여정을 걸을 수 있다고 격려합니다.
이창주 후원자의
앞으로의 여정을 컴패션이 함께 응원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기부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컴패션 후원자의
진솔한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후원자,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을 함께 공감하며,
그 인생 속에서 발견되는
‘컴패션 후원의 진정한 가치’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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