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스토리

못생긴 미쉘이라 불렸지만...

  • 국가 필리핀
  • 작성일 2013-05-31
 


그 작은 어린이센터 지붕 안에 들어가는 순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몰랐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 존중, 배려, 따뜻함이 존재한다는 것을요. 나의 세계에도 이 단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에서도 가난하고 범죄율이 높은 발리타오(Balitao)마을에 PH980 이란 파란 글씨로 써 있는 간판이 세워졌습니다. 컴패션어린이센터는 소외된 어린이들을 품고자 우리 마을에도 들어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할 것 같은 그 지붕 안에 들어가면 편안했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비난과 저주 대신 사랑과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못생긴 미쉘,
 
‘나에게 내일이 있을까?’
밤마다 손과 발을 웅크리고 생각했습니다. 3평이 되지 않는 방에서 17명의 친척들이 함께 지내며 생각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아픔이 이어지는 밤에도 생각했습니다. 이 밤들은 내일도 반복될 것인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펴는 순간만이 유일하게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미쉘, 너는 참 못났구나. 그 흉한 코는 꼭 지 아빠를 닮았다지.”
언제나 나의 아침은 같은 말을 들으며 시작되었습니다. 친척들은 나에게 험한 말을 쏟아 붓는 것으로 아버지에 대한 분풀이를 하곤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로 항상 술에 취해 물건을 때려 부수며 난동을 피우던 집안의 골칫거리였습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나를 비롯한 세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 중 장녀인 제가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우리를 학대하다가 버리고 떠났을 때, 나를 향한 친척들의 미움은 극에 달했습니다. 5살밖에 되지 않았던 아이에게 혹독하기 그지없던 말이었습니다.
 
“너는 평생 네 아빠처럼, 중독자가 되어 평생을 망치게 될 거야.”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속으로 울음을 삼키곤 했습니다. 필리핀 발리타오 마을,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이 머물러 있는 곳. 천장이 낮은 집들이 일렬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골목 사이로 넘쳐나는 쓰레기와 하수구 악취가 피어오르는 가난이 그대로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덥고 습한 공기가 훅 불어오면 동네 남자 어른들이 마시고 피워대는 술과 담배 냄새를 함께 맡을 수 있었습니다. 어른들 대부분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주사위, 마작, 카드 같은 도박을 하다가 시비가 붙어 칼싸움이 나기도 하고,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밤이 되면 얻어맞는 여인들의 구슬픈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동네에 어둠이 깔리면, 나의 심장은 고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버릇은 아직도 가끔, 반복되고는 합니다. 연약한 나의 심장이 이렇게 자랐는데도 지금도 놀랄 때마다 심하게 뛰곤 합니다. 우리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신음소리는 이곳저곳, 길거리에서 반복되어 들려왔습니다. 폭력, 강간, 살인까지 입에 담기에도 무서운 일들이 힘이 약한 이들에게 가해지고 누구도 그것을 막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오늘 밤을 무사히 보낼 수만 있다면···. 늘 기도하며 잠에 들었습니다. 내 삶에 주어졌던 절망의 무게는 훗날 그만큼 희망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날
 
그날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희망’을 만났던 날, 우리 마을에 컴패션어린이센터가 생겼습니다. 파란 글씨로 PH229 라고 적혀있는 그곳에 캐롤(Carol) 외숙모가 저의 손을 잡고 데려가 등록시켰습니다. 당시 저는 6살이었습니다.
 
그날부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에게는 한가지 한가지가 모두 기적이었습니다. 한결같은 사랑을 주시는 후원자님을 만났습니다. 나의 후원자가 되어준 분들은 미국 코네티컷(Connecticut) 주에 사는 탐과 에스더(Tom and Esther Brasile) 부부였습니다.

 
 
후원자님을 처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보내준 편지에 사진이 한 장 함께 도착했습니다. 눈이 가득 쌓인 집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었어요. 그 사진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이분들은 엄청난 부자인가 보다. 필리핀에는 없는 눈을 이렇게 많이 가졌다니!”
 
“미쉘, 우리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사랑한다!”
후원자님이 보내는 편지에 늘 적혀 있던 말이었습니다. 그 글귀를 읽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편지를 하도 만져 너덜해질때까지 나만의 상자에 차곡차곡 간직했던 후원자님의 편지는 오늘날 나를 있게 한 사랑의 메시지였습니다. 상처로 인해 꽁꽁 싸매 두었던 나의 마음을 녹여주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게 이분들은 왜 이런 조건없는 사랑을 베풀기로 한 것일까요. 두 분은 제가 6살 때부터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 졸업할 때까지 15년을 한결같이 지원해주었습니다.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도 심지어 암에 걸렸을 때조차 저에게 비밀로 하시고 후원을 계속하셨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고마운 사랑으로 저는 가난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나를 자랑스러워 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 누군가에게 “할 수 있다.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해주기를, 특별히 어린이들에게 더욱 그 말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꿈을 이루다
 
컴패션을 통해 학교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공부하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는, 어린이라면 평범하게 누리는 모든 것을 그곳에서 처음 해 보았습니다. 너무 재미있고 신나서 집에 가면 반복해서 배운 것을 돼내었습니다. 밤낮으로 공부에 매달리는 저를 처음엔 비웃던 친척들도 점점 괴롭히지 않고 공부 방해하지 말라며 배려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바라보며 무언가 이 마을에서도 다른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본 것입니다.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고, 국제청소년박람회에 필리핀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는 졸업생 대표로 연단에 섰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놀라움으로 나를 바라봤습니다. 가장 못생기고 욕만 먹던 미쉘이 당당한 모습으로 단상에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후원자님의 계속된 지원으로 필리핀 우수 대학 중 하나인 산토 토마스 대학교(University of Santo Tomas)에서 아트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Arts)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 24살의 나이에 굴지의 기업에서 마케팅 부서장을 역임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에서 당당한 성공을 쟁취하는 커리어우먼 미쉘이었습니다. 모두가 기뻐했고, 특별히 후원자님 부부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며 재정적인 안정을 누리며 살던 나날, 마음에 계속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성공이 과연 나만을 위한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보잘것없는 가난한 마을 어린이에게 집중된 사랑이 오늘날 나를 있게 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이 되고 싶었습니다.
 
컴패션 리더십 1:1 결연프로그램 수료생들 간 모임이 있던 날, 라폰젤(Rafonzel Fazon)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생활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되어서 정말 감사해. 하지만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삶보다, 간절히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섬기면서 살아갈 수는 없을까? 라폰젤, 우리는 가난한 마을에서 선택되었고, 우리야말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라폰젤 역시 동일한 마음이었습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삶’ 새로운 소명 앞에 우리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모일 때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 후에는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행정사항을 검토해나갔습니다.
 
Made in Hope, 희망을 향해
 
‘Made in Hope’ 단체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에게 사랑을 전하고, 삶 가운데 희망을 싹 틔우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여성과 어린이가 주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대부분 컴패션 졸업자인 친구들 10여 명이 뜻을 모았고 컴패션에서 저희의 활동에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미국 하와이에 본사를 두고 필리핀 마닐라에 지사를 세웠습니다. 본사와 지사 모두 1~2명의 친구들이 일을 담당하는 작은 시작이었습니다.
 
매춘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여성들의 재활을 위해 액세서리나 엽서를 제작하여 판매하고 수익금은 사역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정기적으로 ‘Beauty from Ashes(재 대신 화관을, 사61:3)’ 컨퍼런스를 열어 여성들에게 성경적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고통당하는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단돈 2달러에 몸을 팔고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저편에는 정부청사 및 거대한 기업들의 빌딩이 있고, 이쪽에는 판잣집이 즐비한 좁은 골목에서 매춘행위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고객은 물론 길 건너편의 사람들입니다. 먹을 것조차 사기 힘든 2달러를 위해 몸을 파는 여성들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이러한 여성들은 자신의 존귀함에 대해 배워도, 처음엔 그 진리를 받아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너무도 단단한 상처가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와 동료들은 비슷한 아픔을 받은 사랑으로 극복했기에, 이 여성들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매춘 행위가 이루어지는 사창가 동네로 직접 들어가 메시지를 전하고는 합니다. 이 일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길거리에서 험한 일을 당해도 법적인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7~8명씩 그룹 지어 들어가는 우리는 오직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발을 내딛습니다. 우리의 내딛는 발걸음을 통해, 그곳에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기에 담대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왜 그곳에 들어갑니까?”
 
많은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왜 굳이 그토록 위험한 곳에 다시 들어가는 겁니까? 당신은 안정된 삶을 어렵게 얻지 않았나요? 다른 방법으로도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특히 그곳에서 자란 제가 다시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에게는 잊고 싶은 고통을 향해 다시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저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를 통해 사람들이 듣고 있습니다. 희망의 메시지를!
 
미쉘, 더 큰 꿈을 향해!
 
“당신은 가난하게 태어났으나 이미 가난은 당신 안에 없습니다.”
제가 ‘아빠’라고 부르는 웨스 스탠포드(Wess Stafford, 국제컴패션 전 총재) 박사가 자주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가난 가운데서 태어났습니다. 가난으로 인해 제 삶은 비참하게 끝날 뻔했습니다. 가난이 주는 배고픔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꿈을 아예 꿀 수 없도록 하는 거짓 메시지를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컴패션과 신실한 후원자님을 통해 제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전합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다시 저에게 말합니다.
 
“미쉘, 너를 보며 우리 아이만큼은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단다. 다시 이곳에 돌아와 주어서 정말 고맙다!”
 
필리핀 마닐라에 자리 잡고 있는 ‘Made in Hope’ 사무실은 아담한 이층으로 된 집입니다. 이 안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새로운 삶을 찾고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어린 시절, 그 작은 컴패션어린이센터 지붕에 들어가면 누렸던 평화를 전합니다. 받은 사랑을 다시 이 작은 지붕 아래서 힘없고 연약하여 누구도 돌보지 않았던 여성들과 어린이들에게 다시 돌려보내려 합니다.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Made in Hope’ 지사>
 
“무엇이 이 일을 가능하게 하였습니까?”
 
“제 삶에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저 미쉘은 그 사랑이 이루어 낸 기적입니다. 사랑이 만들어 내는 기적을 믿기에, 저는 또 다른 미쉘을 향해 나아갑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저와 같은 미쉘이 여전히 많습니다. 가난이 주는 수많은 거짓에 눌려 꿈조차 꾸지 못하는 미쉘 에게 저는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넌 혼자가 아니야!”
 
한 가지 희망의 빛이 내 삶에 비쳐왔고 그 빛으로 인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가난 가운데 자랐으나, 저에게 더 이상 가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난으로 꿈을 잃은 이들에게 다시 꿈을 전하는 오직 사랑이 가득한 풍요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사랑의 기적을 믿습니다.

 


One Act, 한 어린이를 향한 놀라운 기적의 시작

 


그 작은 어린이센터 지붕 안에 들어가는 순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몰랐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 존중, 배려, 따뜻함이 존재한다는 것을요. 나의 세계에도 이 단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에서도 가난하고 범죄율이 높은 발리타오(Balitao)마을에 PH980 이란 파란 글씨로 써 있는 간판이 세워졌습니다. 컴패션어린이센터는 소외된 어린이들을 품고자 우리 마을에도 들어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할 것 같은 그 지붕 안에 들어가면 편안했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비난과 저주 대신 사랑과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못생긴 미쉘,
 
‘나에게 내일이 있을까?’
밤마다 손과 발을 웅크리고 생각했습니다. 3평이 되지 않는 방에서 17명의 친척들이 함께 지내며 생각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아픔이 이어지는 밤에도 생각했습니다. 이 밤들은 내일도 반복될 것인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펴는 순간만이 유일하게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미쉘, 너는 참 못났구나. 그 흉한 코는 꼭 지 아빠를 닮았다지.”
언제나 나의 아침은 같은 말을 들으며 시작되었습니다. 친척들은 나에게 험한 말을 쏟아 붓는 것으로 아버지에 대한 분풀이를 하곤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로 항상 술에 취해 물건을 때려 부수며 난동을 피우던 집안의 골칫거리였습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나를 비롯한 세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 중 장녀인 제가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우리를 학대하다가 버리고 떠났을 때, 나를 향한 친척들의 미움은 극에 달했습니다. 5살밖에 되지 않았던 아이에게 혹독하기 그지없던 말이었습니다.
 
“너는 평생 네 아빠처럼, 중독자가 되어 평생을 망치게 될 거야.”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속으로 울음을 삼키곤 했습니다. 필리핀 발리타오 마을,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이 머물러 있는 곳. 천장이 낮은 집들이 일렬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골목 사이로 넘쳐나는 쓰레기와 하수구 악취가 피어오르는 가난이 그대로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덥고 습한 공기가 훅 불어오면 동네 남자 어른들이 마시고 피워대는 술과 담배 냄새를 함께 맡을 수 있었습니다. 어른들 대부분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주사위, 마작, 카드 같은 도박을 하다가 시비가 붙어 칼싸움이 나기도 하고,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밤이 되면 얻어맞는 여인들의 구슬픈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동네에 어둠이 깔리면, 나의 심장은 고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버릇은 아직도 가끔, 반복되고는 합니다. 연약한 나의 심장이 이렇게 자랐는데도 지금도 놀랄 때마다 심하게 뛰곤 합니다. 우리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신음소리는 이곳저곳, 길거리에서 반복되어 들려왔습니다. 폭력, 강간, 살인까지 입에 담기에도 무서운 일들이 힘이 약한 이들에게 가해지고 누구도 그것을 막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오늘 밤을 무사히 보낼 수만 있다면···. 늘 기도하며 잠에 들었습니다. 내 삶에 주어졌던 절망의 무게는 훗날 그만큼 희망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날
 
그날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희망’을 만났던 날, 우리 마을에 컴패션어린이센터가 생겼습니다. 파란 글씨로 PH229 라고 적혀있는 그곳에 캐롤(Carol) 외숙모가 저의 손을 잡고 데려가 등록시켰습니다. 당시 저는 6살이었습니다.
 
그날부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에게는 한가지 한가지가 모두 기적이었습니다. 한결같은 사랑을 주시는 후원자님을 만났습니다. 나의 후원자가 되어준 분들은 미국 코네티컷(Connecticut) 주에 사는 탐과 에스더(Tom and Esther Brasile) 부부였습니다.

 
 
후원자님을 처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보내준 편지에 사진이 한 장 함께 도착했습니다. 눈이 가득 쌓인 집 마당에서 찍은 사진이었어요. 그 사진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이분들은 엄청난 부자인가 보다. 필리핀에는 없는 눈을 이렇게 많이 가졌다니!”
 
“미쉘, 우리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사랑한다!”
후원자님이 보내는 편지에 늘 적혀 있던 말이었습니다. 그 글귀를 읽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편지를 하도 만져 너덜해질때까지 나만의 상자에 차곡차곡 간직했던 후원자님의 편지는 오늘날 나를 있게 한 사랑의 메시지였습니다. 상처로 인해 꽁꽁 싸매 두었던 나의 마음을 녹여주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게 이분들은 왜 이런 조건없는 사랑을 베풀기로 한 것일까요. 두 분은 제가 6살 때부터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 졸업할 때까지 15년을 한결같이 지원해주었습니다.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도 심지어 암에 걸렸을 때조차 저에게 비밀로 하시고 후원을 계속하셨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고마운 사랑으로 저는 가난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나를 자랑스러워 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 누군가에게 “할 수 있다.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해주기를, 특별히 어린이들에게 더욱 그 말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꿈을 이루다
 
컴패션을 통해 학교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공부하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는, 어린이라면 평범하게 누리는 모든 것을 그곳에서 처음 해 보았습니다. 너무 재미있고 신나서 집에 가면 반복해서 배운 것을 돼내었습니다. 밤낮으로 공부에 매달리는 저를 처음엔 비웃던 친척들도 점점 괴롭히지 않고 공부 방해하지 말라며 배려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바라보며 무언가 이 마을에서도 다른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본 것입니다.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고, 국제청소년박람회에 필리핀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는 졸업생 대표로 연단에 섰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놀라움으로 나를 바라봤습니다. 가장 못생기고 욕만 먹던 미쉘이 당당한 모습으로 단상에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후원자님의 계속된 지원으로 필리핀 우수 대학 중 하나인 산토 토마스 대학교(University of Santo Tomas)에서 아트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Arts)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 24살의 나이에 굴지의 기업에서 마케팅 부서장을 역임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에서 당당한 성공을 쟁취하는 커리어우먼 미쉘이었습니다. 모두가 기뻐했고, 특별히 후원자님 부부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며 재정적인 안정을 누리며 살던 나날, 마음에 계속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성공이 과연 나만을 위한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보잘것없는 가난한 마을 어린이에게 집중된 사랑이 오늘날 나를 있게 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이 되고 싶었습니다.
 
컴패션 리더십 1:1 결연프로그램 수료생들 간 모임이 있던 날, 라폰젤(Rafonzel Fazon)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생활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되어서 정말 감사해. 하지만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삶보다, 간절히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섬기면서 살아갈 수는 없을까? 라폰젤, 우리는 가난한 마을에서 선택되었고, 우리야말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라폰젤 역시 동일한 마음이었습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삶’ 새로운 소명 앞에 우리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모일 때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 후에는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행정사항을 검토해나갔습니다.
 
Made in Hope, 희망을 향해
 
‘Made in Hope’ 단체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에게 사랑을 전하고, 삶 가운데 희망을 싹 틔우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여성과 어린이가 주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대부분 컴패션 졸업자인 친구들 10여 명이 뜻을 모았고 컴패션에서 저희의 활동에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미국 하와이에 본사를 두고 필리핀 마닐라에 지사를 세웠습니다. 본사와 지사 모두 1~2명의 친구들이 일을 담당하는 작은 시작이었습니다.
 
매춘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여성들의 재활을 위해 액세서리나 엽서를 제작하여 판매하고 수익금은 사역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정기적으로 ‘Beauty from Ashes(재 대신 화관을, 사61:3)’ 컨퍼런스를 열어 여성들에게 성경적인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고통당하는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단돈 2달러에 몸을 팔고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저편에는 정부청사 및 거대한 기업들의 빌딩이 있고, 이쪽에는 판잣집이 즐비한 좁은 골목에서 매춘행위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고객은 물론 길 건너편의 사람들입니다. 먹을 것조차 사기 힘든 2달러를 위해 몸을 파는 여성들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이러한 여성들은 자신의 존귀함에 대해 배워도, 처음엔 그 진리를 받아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너무도 단단한 상처가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와 동료들은 비슷한 아픔을 받은 사랑으로 극복했기에, 이 여성들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매춘 행위가 이루어지는 사창가 동네로 직접 들어가 메시지를 전하고는 합니다. 이 일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길거리에서 험한 일을 당해도 법적인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7~8명씩 그룹 지어 들어가는 우리는 오직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발을 내딛습니다. 우리의 내딛는 발걸음을 통해, 그곳에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기에 담대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왜 그곳에 들어갑니까?”
 
많은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왜 굳이 그토록 위험한 곳에 다시 들어가는 겁니까? 당신은 안정된 삶을 어렵게 얻지 않았나요? 다른 방법으로도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특히 그곳에서 자란 제가 다시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에게는 잊고 싶은 고통을 향해 다시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저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를 통해 사람들이 듣고 있습니다. 희망의 메시지를!
 
미쉘, 더 큰 꿈을 향해!
 
“당신은 가난하게 태어났으나 이미 가난은 당신 안에 없습니다.”
제가 ‘아빠’라고 부르는 웨스 스탠포드(Wess Stafford, 국제컴패션 전 총재) 박사가 자주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가난 가운데서 태어났습니다. 가난으로 인해 제 삶은 비참하게 끝날 뻔했습니다. 가난이 주는 배고픔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꿈을 아예 꿀 수 없도록 하는 거짓 메시지를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컴패션과 신실한 후원자님을 통해 제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전합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다시 저에게 말합니다.
 
“미쉘, 너를 보며 우리 아이만큼은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단다. 다시 이곳에 돌아와 주어서 정말 고맙다!”
 
필리핀 마닐라에 자리 잡고 있는 ‘Made in Hope’ 사무실은 아담한 이층으로 된 집입니다. 이 안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새로운 삶을 찾고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어린 시절, 그 작은 컴패션어린이센터 지붕에 들어가면 누렸던 평화를 전합니다. 받은 사랑을 다시 이 작은 지붕 아래서 힘없고 연약하여 누구도 돌보지 않았던 여성들과 어린이들에게 다시 돌려보내려 합니다.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Made in Hope’ 지사>
 
“무엇이 이 일을 가능하게 하였습니까?”
 
“제 삶에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저 미쉘은 그 사랑이 이루어 낸 기적입니다. 사랑이 만들어 내는 기적을 믿기에, 저는 또 다른 미쉘을 향해 나아갑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저와 같은 미쉘이 여전히 많습니다. 가난이 주는 수많은 거짓에 눌려 꿈조차 꾸지 못하는 미쉘 에게 저는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넌 혼자가 아니야!”
 
한 가지 희망의 빛이 내 삶에 비쳐왔고 그 빛으로 인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가난 가운데 자랐으나, 저에게 더 이상 가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난으로 꿈을 잃은 이들에게 다시 꿈을 전하는 오직 사랑이 가득한 풍요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사랑의 기적을 믿습니다.

 


One Act, 한 어린이를 향한 놀라운 기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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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designer
    2013-07-19 10:09:43

    희망의 크기를 알 수 있는 글이네요.... 다시한번 스스로도 마음다짐을...

  • jjacandoit
    2013-07-05 15:34:36

    읽다가 눈물이 나왔어요~^^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정말 정말 감사하네요~^^ 이렇게 저도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게 더욱더 감사하게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미쉘같은 사람들이 많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jminy11
    2013-06-27 22:54:34

    참 멋진 간증입니다~ 저도 하나님이제게주신 것을 더 많이 나누며 살아가기를 다짐합니다! 참 좋으신 선하신 하나님♡ 이 악한 세상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은 결코 변하지 않으시며 여전히 완전하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낍니다

  • marrie
    2013-06-07 04:11:06

    오늘 처음 후원이란걸 하게 되었는데 이런 작은 시작이 한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너무 소중한 경험을 시작하게 되었고 또 이런 시작의 길을 만들어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미쉘같은 아이들이 많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 sukparty1
    2013-06-05 16:36:40

    미쉘의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입니다. 글을 읽는 내내 저의 후원아이도 미쉐과 같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며 자라가기를 기도하게 되었어요.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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