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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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 아내와 함께 해외 아동 18명 후원

  • 작성일 2007-12-25
(2007.12.25)

기아차 영업지원부 오영 상무 오영(56) 기아자동차 국내영업지원사업부 상무는 지난 1일로 200번째 헌혈을 했다. 지난 1999년 말 적십자 중앙혈액원의 등록헌혈자가 된 이후 2주에 한번씩 ‘혈소판 헌혈(백혈병 환자, 암환자 등 혈소판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수혈되는 혈소판 성분 헌혈)’을 해 온 것. 오 상무는 “헌혈을 위해 술·담배는 물론, 육류, 지방섭취를 줄이고 하루 2시간씩 걷는 등 건강한 피를 수혈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신조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6·25 세대’라고 소개한 오 상무는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늘 헐벗고 굶주렸던 이웃들이 기억난다”며 “서울 종로구 일대의 폐허가 된 건물들과 깡통을 들고 구걸하러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선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회상했다. 평범한 직장인 오 상무가 이같은 어린시절의 다짐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1999년 빚 보증을 잘못 서서 가계 사정이 어려워지면서부터. 오씨는 “막상 스스로가 어려워지고 나니 어릴 때 다짐들이 되살아나더라”며 “돈이 없는 상태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헌혈이 해법이었다”고 털어놨다. 유학 중이던 오씨의 조카가 백혈병에 걸려 숨지게 된 안타까운 사연도 오씨를 열성적인 헌혈활동에 나서게 했다. 오 상무의 ‘나눔 실천’은 해외 빈곤 아동들에게까지 뻗쳤다. 지난 2005년부터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인 ‘컴패션’을 통해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절대빈곤 상태에 빠져 있는 해외 아동들을 소개받기 시작했다. 현재 오 상무가 아내와 함께 후원하고 있는 해외 아동들은 모두 18명. 오 상무는 이 아이들에게 매월 3만5000원씩을 보내주고 있다. 오 상무가 해외아동들을 돕게 된 것도 어린시절 기억 때문이다. 오 상무는 “어린시절 미군을 따라다니면서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던 때가 있었고 6·25 직후에는 쓰레기 더미에서 아이들의 시체가 발견되기도 했다”며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도 후원국의 입장에서 자선을 베풀 만큼 성장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가 후원하던 에티오피아의 한 아이는 사는 지역에 가뭄이 들어 기근으로 고생하다 결국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고 들었다”며 “이후 후원 루트가 끊겨 그 아이의 생사를 알지도 못하게 된 사실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오 상무는 자신의 이같은 봉사가 아직 제대로 된 나눔활동은 아니라며 겸손해했다. 그는 “가장 고귀한 봉사는 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직장일 등을 핑계로 ‘육체적 봉사’에 소홀한 사실이 부끄럽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오 상무는 이미 은퇴 후 시작할 봉사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수지침 자격증을 땄고, 2003년에는 발 마사지 자격증을 땄으며 교회부설 상담학교에서 상담학 기본과정도 수료했다. 지난 2004년에는 사후 장기기증 서약도 했다. 오 상무는 “퇴직 후 역량이 닿는 대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문화일보 조민진기자 waytogo@munhwa.com]
(2007.12.25)

기아차 영업지원부 오영 상무 오영(56) 기아자동차 국내영업지원사업부 상무는 지난 1일로 200번째 헌혈을 했다. 지난 1999년 말 적십자 중앙혈액원의 등록헌혈자가 된 이후 2주에 한번씩 ‘혈소판 헌혈(백혈병 환자, 암환자 등 혈소판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수혈되는 혈소판 성분 헌혈)’을 해 온 것. 오 상무는 “헌혈을 위해 술·담배는 물론, 육류, 지방섭취를 줄이고 하루 2시간씩 걷는 등 건강한 피를 수혈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신조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6·25 세대’라고 소개한 오 상무는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늘 헐벗고 굶주렸던 이웃들이 기억난다”며 “서울 종로구 일대의 폐허가 된 건물들과 깡통을 들고 구걸하러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선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회상했다. 평범한 직장인 오 상무가 이같은 어린시절의 다짐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1999년 빚 보증을 잘못 서서 가계 사정이 어려워지면서부터. 오씨는 “막상 스스로가 어려워지고 나니 어릴 때 다짐들이 되살아나더라”며 “돈이 없는 상태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헌혈이 해법이었다”고 털어놨다. 유학 중이던 오씨의 조카가 백혈병에 걸려 숨지게 된 안타까운 사연도 오씨를 열성적인 헌혈활동에 나서게 했다. 오 상무의 ‘나눔 실천’은 해외 빈곤 아동들에게까지 뻗쳤다. 지난 2005년부터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인 ‘컴패션’을 통해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절대빈곤 상태에 빠져 있는 해외 아동들을 소개받기 시작했다. 현재 오 상무가 아내와 함께 후원하고 있는 해외 아동들은 모두 18명. 오 상무는 이 아이들에게 매월 3만5000원씩을 보내주고 있다. 오 상무가 해외아동들을 돕게 된 것도 어린시절 기억 때문이다. 오 상무는 “어린시절 미군을 따라다니면서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던 때가 있었고 6·25 직후에는 쓰레기 더미에서 아이들의 시체가 발견되기도 했다”며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도 후원국의 입장에서 자선을 베풀 만큼 성장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가 후원하던 에티오피아의 한 아이는 사는 지역에 가뭄이 들어 기근으로 고생하다 결국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고 들었다”며 “이후 후원 루트가 끊겨 그 아이의 생사를 알지도 못하게 된 사실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오 상무는 자신의 이같은 봉사가 아직 제대로 된 나눔활동은 아니라며 겸손해했다. 그는 “가장 고귀한 봉사는 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직장일 등을 핑계로 ‘육체적 봉사’에 소홀한 사실이 부끄럽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오 상무는 이미 은퇴 후 시작할 봉사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수지침 자격증을 땄고, 2003년에는 발 마사지 자격증을 땄으며 교회부설 상담학교에서 상담학 기본과정도 수료했다. 지난 2004년에는 사후 장기기증 서약도 했다. 오 상무는 “퇴직 후 역량이 닿는 대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문화일보 조민진기자 waytog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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