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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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 아이들의 웃음이 큰 행복

  • 작성일 2008-03-11
(2008.03.11)​

오영 기아차 상무, 아이들의 웃음이 큰 행복 하얀 이를 크게 드러내고 웃고 있는 액자 속 아이들의 표정이 해맑다. 쭈삣쭈삣 차렷자세를 하고 카메라를 향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 '희망'이 묻어난다. 까맣고 노랗고 다양한 피부색 만큼이나 다양한 국적을 갖고 있는 이 20명의 아이들이 모두 오영(57) 기아자동차 국내영업지원사업부 상무의 자식들이다. ◆전세계 스무명 아이들의 아버지 오 상무는 지난 2005년부터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한국컴패션(www.compassion.or.kr)을 통해 해외 각국의 어린이들을 후원해 오고 있다. 한 아이당 월 3만5000원. 언뜻 보기에 그리 큰 액수는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일생을 책임져야 하는 일이기에 웬만큼 굳은 결심이 아니고서는 쉽사리 손내밀 수는 없는 일이다. "단지 사진을 통해서만 얼굴을 볼 수 있는 아이들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제 마음이 얼마나 든든해지는지 모릅니다. 3만5000원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적은 액수에 불과하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생활비는 물론 교육비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적은 돈으로 세계 어린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희망을 전할 수 있다면 저에게야 이보다 큰 보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오 상무는 어릴적 고아원을 운영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그는 어린시절 6.25전쟁을 직접 겪었던 6.25세대다. 스스로는 운이 좋아 먹을 것 부족함 없는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고는 하지만 문밖만 나서면 변변히 먹을 것 하나 구하지 못해 구걸을 하고 흙을 파먹는 또래 친구들을 늘상 마주쳐야 했다. 그 당시 오 상무의 우상은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 <전송가>의 주인공 딘 헤스 대령이었다. "헤스 대령은 6.25전쟁 당시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렸던 분입니다. 미국 군인으로서 아무 연고도 없는 한국의 아이들을 보살핀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그는 한국의 고아 1000여명을 헬기를 태워 제주도로 데려가 극진하게 보살핍니다. 어린 나이에도 그분의 이야기가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저도 그분처럼 미래를 짊어갈 어린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결심했었죠." 현재 오 상무는 어릴적 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 직장인으로는 꽤 높은 위치인 대기업 임원까지 올랐지만 그럴수록 마음 속에 품었던 '고아원 설립'의 꿈은 멀어졌다. 아련하게만 남아있던 오 상무의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실현시켜 준 곳이 다름아닌 중남미, 아프리카 등 전세계 24개국의 극빈가정 어린이들에게 전인적인 양육 사업을 실시하는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컴패션'이었다. "TV를 보다 우연히 '컴패션'이라는 단체를 알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단기적인 지원이 아니라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될 때까지 제가 책임지고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와닿았습니다. 고아원 설립의 꿈을 실천하기에 지금 저 자신은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부족함없이 돈벌이를 하고 있고 그 돈으로 조금이나마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제 꿈을 이룬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우연한 계기에 컴패션을 만나고 처음 두 명의 아이와 연을 맺게 된 오 상무는 지금은 스무 명의 아이와 '부자지간'의 정을 나누고 있다. 일년에 세번씩 꼬박꼬박 아이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전해듣기도 한다. 아이들이 '반에서 1등을 했다' 거나 '아저씨가 보낸 선물을 받고 너무나 좋아했다'라는 소식이라도 들을 때면 하루종일 싱글벙글 날아갈 것만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으로는 3만5000원의 부담없는 액수지만 스무명 아이들을 모두 후원하려면 매달 100만원에 가까운 큰 돈입니다. 하지만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저에게는 한 명의 아이를 더 맡거나 덜 맡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3만5000원은 지금 당장 없으면 안되는 '목숨줄'입니다. 그러니 하루빨리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앞으로도 10명의 아이들을 제가 더 책임 질 수 있도록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일해 나갈 생각입니다." ◆'나눔의 행복' 알리는 전도사 됐으면 스무명 아이들의 아버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오 상무의 나눔 활동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가평에 위치한 노인요양소인 '아름다운 집'을 지원하는 등 전문후원가나 단체가 아닌 한 개인의 기부금으로는 상당한 규모를 기부에 사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어린이날이면 그의 직장인 기아자동차에서 마련하는 '외국인 자녀를 위한 어린이날 행사'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시간을 보내기는가 하면 얼마 전에는 200회 헌혈에 성공해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적십자사가 시작한 1997년 이래 전산기록상 정기적으로 '200회 헌혈'에 달성한 헌혈자는 오 상무가 국내 최초였다. 지금은 직장일 때문에 엄두를 못내고 있지만 직장에서 은퇴 한 이후에는 '혹시나 해외 봉사 활동에 따라나가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수지침과 발마사지 자격증을 따놓기도 했다. '나눔'을 향한 그의 욕심은 끝이 없다. "남들은 저를 보고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눔'이라는 게 그 누구도 아닌 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몸으로 행하는 봉사든 돈으로 나누는 기부든 나누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사랑을 하면 누구나 기뻐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주변에서 봐도 나누며 사는 사람들 중에는 행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활 속 나눔의 실천'이야말로 행복해 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적극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오 상무의 생활이 조금씩 주변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지인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경우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쑥스러운 마음에 말을 아끼던 오 상무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리는 일을 굳이 감추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몇 년 전만해도 주변분들이 저에게 봉사활동과 관련한 일을 언급할때면 불편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괜히 기부활동이나 한답시고 자랑을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조금 멋쩍더라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편이 다른 분들의 나눔 활동 참여 유도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요즘에는 제가 먼저 나서서 다른 분들에게 나눔을 권유하는 편입니다. 친구들이나 부하직원들이 하나 둘씩 나눔의 기쁨을 알아가는 모습을 보면 제가 느끼는 행복도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컴패션 VOC(Voice of compassion)을 통해 일반인 홍보 대사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VOC는 컴패션의 공식 홍보 대사 모임으로 세계 각국에서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들을 대신해 그들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들과 연계를 맺을 수 있도록 설득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분들은 국내에도 어려운 아이들이 많은데 왜 굳이 해외의 아이들을 도우려고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돕고 있는 그 아이들은 '절대빈곤'을 겪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제가 보내는 도움의 손길은 그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희망'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내내 온화한 미소를을 입가에 머물고 있던 오 상무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진다. 그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언급하며 "개인 뿐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고 한층 목소리를 높인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언젠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고통을 위해 짊어지고 있는 몫이 국가적인 경제력에 비해 너무도 작다'고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개인에게 해당되는 얘기만은 아닙니다. 국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돕는 행위는 비록 개인적인 행위일지 몰라도 이런 개인들의 행위가 모이면 '국가적인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대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 상무. 그가 미래의 봉사자 혹은 후원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딱 한가지다. "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을 버릴 것!". "비록 '나 하나쯤'이지만 나 한사람이 전세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보탤 수 있는 힘은 어마어마합니다. '나 하나쯤' 빠진다고해서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어딘가에서 '희망'을 꿈꾸고 있을 아이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나 하나쯤'이 모여 얼마나 큰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지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머니투데이 이정흔 기자 | 2008/03/11 12:53]
(2008.03.11)​

오영 기아차 상무, 아이들의 웃음이 큰 행복 하얀 이를 크게 드러내고 웃고 있는 액자 속 아이들의 표정이 해맑다. 쭈삣쭈삣 차렷자세를 하고 카메라를 향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 '희망'이 묻어난다. 까맣고 노랗고 다양한 피부색 만큼이나 다양한 국적을 갖고 있는 이 20명의 아이들이 모두 오영(57) 기아자동차 국내영업지원사업부 상무의 자식들이다. ◆전세계 스무명 아이들의 아버지 오 상무는 지난 2005년부터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한국컴패션(www.compassion.or.kr)을 통해 해외 각국의 어린이들을 후원해 오고 있다. 한 아이당 월 3만5000원. 언뜻 보기에 그리 큰 액수는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일생을 책임져야 하는 일이기에 웬만큼 굳은 결심이 아니고서는 쉽사리 손내밀 수는 없는 일이다. "단지 사진을 통해서만 얼굴을 볼 수 있는 아이들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제 마음이 얼마나 든든해지는지 모릅니다. 3만5000원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적은 액수에 불과하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생활비는 물론 교육비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적은 돈으로 세계 어린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희망을 전할 수 있다면 저에게야 이보다 큰 보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오 상무는 어릴적 고아원을 운영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그는 어린시절 6.25전쟁을 직접 겪었던 6.25세대다. 스스로는 운이 좋아 먹을 것 부족함 없는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고는 하지만 문밖만 나서면 변변히 먹을 것 하나 구하지 못해 구걸을 하고 흙을 파먹는 또래 친구들을 늘상 마주쳐야 했다. 그 당시 오 상무의 우상은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 <전송가>의 주인공 딘 헤스 대령이었다. "헤스 대령은 6.25전쟁 당시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렸던 분입니다. 미국 군인으로서 아무 연고도 없는 한국의 아이들을 보살핀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그는 한국의 고아 1000여명을 헬기를 태워 제주도로 데려가 극진하게 보살핍니다. 어린 나이에도 그분의 이야기가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저도 그분처럼 미래를 짊어갈 어린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결심했었죠." 현재 오 상무는 어릴적 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 직장인으로는 꽤 높은 위치인 대기업 임원까지 올랐지만 그럴수록 마음 속에 품었던 '고아원 설립'의 꿈은 멀어졌다. 아련하게만 남아있던 오 상무의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실현시켜 준 곳이 다름아닌 중남미, 아프리카 등 전세계 24개국의 극빈가정 어린이들에게 전인적인 양육 사업을 실시하는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컴패션'이었다. "TV를 보다 우연히 '컴패션'이라는 단체를 알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단기적인 지원이 아니라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될 때까지 제가 책임지고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와닿았습니다. 고아원 설립의 꿈을 실천하기에 지금 저 자신은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부족함없이 돈벌이를 하고 있고 그 돈으로 조금이나마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제 꿈을 이룬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우연한 계기에 컴패션을 만나고 처음 두 명의 아이와 연을 맺게 된 오 상무는 지금은 스무 명의 아이와 '부자지간'의 정을 나누고 있다. 일년에 세번씩 꼬박꼬박 아이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전해듣기도 한다. 아이들이 '반에서 1등을 했다' 거나 '아저씨가 보낸 선물을 받고 너무나 좋아했다'라는 소식이라도 들을 때면 하루종일 싱글벙글 날아갈 것만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으로는 3만5000원의 부담없는 액수지만 스무명 아이들을 모두 후원하려면 매달 100만원에 가까운 큰 돈입니다. 하지만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저에게는 한 명의 아이를 더 맡거나 덜 맡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3만5000원은 지금 당장 없으면 안되는 '목숨줄'입니다. 그러니 하루빨리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앞으로도 10명의 아이들을 제가 더 책임 질 수 있도록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일해 나갈 생각입니다." ◆'나눔의 행복' 알리는 전도사 됐으면 스무명 아이들의 아버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오 상무의 나눔 활동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가평에 위치한 노인요양소인 '아름다운 집'을 지원하는 등 전문후원가나 단체가 아닌 한 개인의 기부금으로는 상당한 규모를 기부에 사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어린이날이면 그의 직장인 기아자동차에서 마련하는 '외국인 자녀를 위한 어린이날 행사'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시간을 보내기는가 하면 얼마 전에는 200회 헌혈에 성공해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적십자사가 시작한 1997년 이래 전산기록상 정기적으로 '200회 헌혈'에 달성한 헌혈자는 오 상무가 국내 최초였다. 지금은 직장일 때문에 엄두를 못내고 있지만 직장에서 은퇴 한 이후에는 '혹시나 해외 봉사 활동에 따라나가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수지침과 발마사지 자격증을 따놓기도 했다. '나눔'을 향한 그의 욕심은 끝이 없다. "남들은 저를 보고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눔'이라는 게 그 누구도 아닌 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몸으로 행하는 봉사든 돈으로 나누는 기부든 나누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사랑을 하면 누구나 기뻐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주변에서 봐도 나누며 사는 사람들 중에는 행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활 속 나눔의 실천'이야말로 행복해 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적극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오 상무의 생활이 조금씩 주변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지인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경우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쑥스러운 마음에 말을 아끼던 오 상무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리는 일을 굳이 감추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몇 년 전만해도 주변분들이 저에게 봉사활동과 관련한 일을 언급할때면 불편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괜히 기부활동이나 한답시고 자랑을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조금 멋쩍더라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편이 다른 분들의 나눔 활동 참여 유도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요즘에는 제가 먼저 나서서 다른 분들에게 나눔을 권유하는 편입니다. 친구들이나 부하직원들이 하나 둘씩 나눔의 기쁨을 알아가는 모습을 보면 제가 느끼는 행복도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컴패션 VOC(Voice of compassion)을 통해 일반인 홍보 대사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VOC는 컴패션의 공식 홍보 대사 모임으로 세계 각국에서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들을 대신해 그들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들과 연계를 맺을 수 있도록 설득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분들은 국내에도 어려운 아이들이 많은데 왜 굳이 해외의 아이들을 도우려고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돕고 있는 그 아이들은 '절대빈곤'을 겪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제가 보내는 도움의 손길은 그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희망'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내내 온화한 미소를을 입가에 머물고 있던 오 상무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진다. 그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언급하며 "개인 뿐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고 한층 목소리를 높인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언젠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고통을 위해 짊어지고 있는 몫이 국가적인 경제력에 비해 너무도 작다'고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개인에게 해당되는 얘기만은 아닙니다. 국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돕는 행위는 비록 개인적인 행위일지 몰라도 이런 개인들의 행위가 모이면 '국가적인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대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 상무. 그가 미래의 봉사자 혹은 후원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딱 한가지다. "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을 버릴 것!". "비록 '나 하나쯤'이지만 나 한사람이 전세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보탤 수 있는 힘은 어마어마합니다. '나 하나쯤' 빠진다고해서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어딘가에서 '희망'을 꿈꾸고 있을 아이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나 하나쯤'이 모여 얼마나 큰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지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머니투데이 이정흔 기자 | 2008/03/1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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