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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눈물 나요, 제 후원자님도 그러셨겠죠?

  • 작성일 2022-04-07

왠지 눈물 나요, 제 후원자님도 그러셨겠지요?

 

이춘호 후원자

 

 

 

 

 

일곱 살 때부터 후원해 준 미국의 슈 미거 부인 사진(왼쪽)과

현재 후원하고 있는 하레뜨(오른쪽) 사진을 들고 있는 이춘호 후원자.

 

 

 

 

1976년, 우리나라 나이 일곱 살이었던 어린 소년이

53세 중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받은 8년 동안의 사랑으로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었다고,

후원자님께 말씀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고,

이춘호 후원자가 전합니다.

 

 

 

 

  부산이 고향이신가봐요. 

 

  제가 부산에서 나고 자랐어요. 어머니와 형과 같이 살았지요. 부산 광안리에 있는 남강아동복지원, 고아원이었는데 거기 교회에서 후원금을 지급했어요. 제가 처음 간 때가 76, 77년도쯤이에요. 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지요. 한 달에 한 번씩,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가면 예배 드리고 성경 구절 외우면 봉투를 줬지요. 70년 대에는 5천 원 받았고, 마지막 84년인가 85년인가 받았을 때에는 만 원이 넘었어요. 제가 끝나갈 때 뒷 번호 아이들이 천 번이 넘었다는 기억이 있어요. K-705-0005가 제 번호였는데 앞 번호였던 걸 보면 저는 그 기관에서 거의 초창기에 받은 것 같아요. 

 

 

  현금을 직접 받으셨어요?

 

  누런 봉투에 담아 받았어요. 예배 드리고 난 뒤 번호 순대로 줄을 서면 성경 구절을 외우고 봉투를 받곤 했지요. 전 달에 미리 성경구절을 알려주면 외워서 갔어요. 못 외워서 계속 못 받는 아이도 있었는데, 끝내는 못 외워도 주긴 줬겠지요. 성경 말씀을 마음에 심으려고 하는 게 있었으니까요. 어머니는 저를 기도로 낳으셨고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어요. 그런데 그때 성경 말씀을 외운 게 살면서 생각나고 힘이 되어요. 외웠던 말씀들은 들을 때 느낌이 바로 와요.

 

 

  당시 받았던 돈이 큰 돈인가요?

 

  큰 돈이죠. 일반 근로자들이 월급으로 10만 원 받을 때니까 그때 4,5천 원이 지금으로는 10만 원 정도 될 것 같아요. 제가 사는 곳에서 남강아동복지원에 가려면 버스 타고 한 시간 가야 해요. 광안리가 개발되면서 복지원이 부산 끝으로 이사를 갔어요. 집에서 두 시간 걸렸어요. 그래도 갔을 정도니까요. 초등학교 때에는 형이 데리고 갔어요. 어머니는 일을 하시니까. 둘이서 양정이라는 데에서, 꼭 짜장면을 먹었어요. 곱빼기를 시켰어요. 자장면이 그때 3백 원했어요. 저희가 후원금 만 원 받았을 때였어요.

 

 

  지금 컴패션은 현금으로 안 줘요. 가난한 가정에서 부모가 다른 데 사용하는 일이 많아서요. 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어린이들을 양육하는 것으로 정착되었지요. 학교 보내주고 건강한 영양식 챙겨주고 건강검진해주고, 풍족하게는 아니어도 하나님 안에서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받아야 하는 것들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저는 오래 전에 후원 받았으니까요. 그후 많이 달라졌겠죠? 후원자님이 감사해요, 그냥. 한 번도 후원자가 바뀌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분에게 죄송하게 안 간다고 말도 않고 갑자기 안 가게 되었어요. 제가 중학교 때 형이 은행 들어가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그만 받았으니까. 

 

 

  당시 외웠던 말씀들은 어떤 상황에서 생각나던가요?

 

  쉬운 말씀은 없었어요. 제 생활의 신조가 된 말씀이 있는데, 바울이 적은 말씀인데 다섯 가지 권면입니다. 풀어서 말씀드리면, 살면서 겸손해야 되고 자비하고 긍휼히 여기고 온유하고 오래 참으라는 말씀이었어요. 여기가 증권회사잖아요. 지점장으로만 17년째예요. 재무관리라는 직업을 왜 나한테 주셨을까, 정말 숫자, 돈의 노예가 되기 쉽거든요. 아침마다 기도하면서, 직원을 실적으로 보지 않게 해달라고 이 말씀으로 매일 기도해요. 

 

 

 

 

“이분들 정말 선해 보이지 않나요?”

 

51년생 탐 미거와 52년생 슈 미거 부부.

자녀들 이름까지 또박또박 적혀 있는 후원자 카드와 첫 번째 편지입니다.

후원자님들의 자녀는 처음 이춘호 후원자와 만났을 때

두 명이었다가 셋이 되었습니다.

 

후원자님들도 보고 싶지만,

이제는 40대가 되었을

두 명의 자녀들도 보고 싶습니다.  

 

 

 

 

 

  갑자기 컴패션을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있더라고요.  

 

  컴패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셨을 때 어떠셨어요?

 

  제일 감동은 우리 나라가 도와주는 나라가 되었더라고요. 정말 감사하다 싶었어요.

 

 

  한국이 처음이에요. 도움을 받던 나라가 도움을 주게 된 사례가. 이후에도 수혜국에서 후원국 된 나라가 아직은 없어요. 1993년도에 컴패션이 한국에서 철수했다가 2003년에 들어온 줄 모르셨어요? 

 

  몰랐어요. 아직도 도움을 받지는 않겠지만 있을까 하면서 검색했지요. 지금 우리나라는 얼마나 후원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후원자가 12만 명, 후원하는 어린이는 14만 명이에요. 

 

  작은 숫자가 아니네요!

 

 

 후원국들이 12개국이에요. 1952년에 한국 어린이를 도우면서 처음 시작한 미국 다음으로, 한국이 후원규모가 두 번째예요! 컴패션 초기에 시작한 캐나다, 호주, 영국 등 이들 국가보다 후원규모가 크지요. 이런 성장을 보인 후원국이 없어요. 후원자님들이 대부분 크리스천들이에요. 열정이 대단하시죠. 한국교회와 크리스천의 힘이에요. 

 

 

 

 

84년에 받은 후원자님의 마지막 편지.

다른 편지들은 어머니가 보관했지만

웬일인지 마지막 편지는

2004 부산에서 서울 올라올 때부터 직접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편지라는 의미가 각별해집니다.

 

 

 

 

 

  오래 전인데도 편지들이 깨끗해요.

 

  어머니가 보관하고 계셨지요. (웃음) 이번 일로 보내 달라고 하니까 빨리 받으라고 택배로 바로 보내주셨어요. 어머니는 원래 이북에서 사시다가 전쟁통에 거제도까지 피난 오셨어요. 거제도에서 계실 때, 천막교회에서 들려오는 찬송소리가 너무 좋더래요. 그후에 어머니가 집안을 다 복음화 시키셨죠. 아버지는 베트남에서 사업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74년 패망하자마자 귀국하셔서 돌아가셨어요.

 

당시 어머니가 서른 여덟이셨지요. 형은 초등학교 4학년, 저는 다섯 살이었어요. 어머니께 감사해요. 어머니가 끝까지 저희를 키워주셨으니까요. 어린 나이에 엄마가 떠나면 어떡하지, 두려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형하고 저하고 아파트 마련해 드려서 사시고 정정하세요!

 

 

  후원자님께 답장도 하셨어요?

 

   편지요, 엄청 썼지요! 석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썼어야 했어요. 늘 쓰던대로 썼어요. 남들은 굉장히 어려워했는데 저는 십 분 만에 썼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착한 어린이가 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이렇게. 워낙 오래 되어서 정확하게는 잘 기억이 안 나요. 어릴 때 편지 쓰는 거랑 나중에 교회에서 중등 학생부 회장도 하고 했을 때에는 마음이 달라졌지요. 정확한 편지 문구는 잘 기억 나지는 않지만요. 석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쓰면, 후원금도 두 배를 받았지요.

 

 

 

 

 

“너는 우리에게 매우 귀한 아이야.

하나님께서 너를 위해 준비하신 계획이 있을 거야.”

어머니가 종종 보여주셨던 편지였지만

이번에 열어 봤을 때 달랐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지금 후원하고 있는 하레뜨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도

후원자님의 사랑을 떠올리며, 같은 마음을 담았습니다. 

“너는 정말 귀한 아이야.”라는 마음을요.

 

 

 

 

 40년 전에 후원해 주신 이분들은 지금 어떤 의미가 되셨나요.

 

  저는 지금도 이 편지 문구가 감사해요. “우리에게 매우 귀한 아이야.” 누구인지도 몰라요. 본 적도 없어요.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하고 연결이 되었고, '귀한 아이야, 너를 위해 준비하신 계획이 있을 거야.'라고 이야기해 주신 거죠. 

 

진짜 축복의 말씀이잖아요! God Bless you라고 항상 써주셨어요. 제 삶에 큰 도움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계속 보여 주셨는데, 이번에 볼 때 이 편지 내용에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후원자님이 어릴 때 후원 받은 이야기를 주변에서 알고 계신가요?

 

  왜 나는 가난해서 도움을 받아야 하나 부끄러웠던 적이 있어요.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는 생각 못했죠. 세월이 지나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주변에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지요. 어머니는 감사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생각이 바뀐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최근, 40대 이후예요. 그전에는 정신없이 걸어왔고 40대 이후 애들 크고 성장하고 난 이후에, 생각이 조금씩 바뀌더라고요.

 

예전에 어릴 때에는 엄마하고 걸어가는 것도 부끄러웠어요. 일 다니시는 엄마가 초라해 보이고. 2,30대가 되니까 달라지더라고요. 어머니가 자랑스럽고 지금도 그렇고요. 40대가 되니까 달라졌어요. 내가 도움 받았었지, 부끄러운 것 아닌데, 나도 해야 하겠구나, 싶었지요. 지금 이 나이 때에 밝히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런 도움으로 잘 성장했기 때문에 나도 도와야겠다 했지요. 

 

 

  편지를 평생 보관하시고, 계속해서 아들에게 보여주셨던 어머니께 이분들은 어떤 의미로 남아 계실까요

 

  어머니는 후원자님들이 하나님이 엮어 주신 분들이라고 하셨어요. 어머니가 교회에서 권사로 은퇴하셨는데요. 언젠가는 이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꼭 해야 하고, 네가 하나님 안에서 잘 컸다는 것을 꼭 보여드리라고 하시지요. 직접 뵐 수 없다면 전화 통화라도, 편지를 써서라도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고, 후원자님 자녀들이 어떻게 컸는지 궁금해요. 

 

 

  후원자님과 통화가 되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눈물 날 것 같은데요. 어릴 때 꿈이었던 목사는 되지 못했지만 한국의 금융기관에서 잘 다니고 있고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요. 너무 감사하다고요. 저도 누군가를 축복하는 삶 살고 싶어 한 아이의 삶을 일부나마 책임지고 있다고요.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일부였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여섯 살, 온두라스의 하레뜨(Jareth).

마치 후원자님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고요.

줄무늬 윗도리마저 후원자님이 어릴 때 찍은 사진과 판박이였습니다.

이상하게 보면, 눈물이 나는 하레뜨 사진입니다.

 

 

 

 

 여섯 살 온두라스의 하레뜨를 후원하기 시작하셨어요. 

 

  홈페이지에서, 하레뜨가 눈에 띄더라고요. 아버지가 안 계시고 엄마가 혼자 키우시고 나이도 여섯 살이더라고요. 저랑 같았어요. 어릴 때 제 사진에도 이런 옷 입은 사진이 있어요. 

 

 

  레뜨에게 보낸 편지에 뭐라고 쓰셨어요?

 

  아직 한 번 썼어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 써주면서 닮았다고 써주고. 제가 후원자님께 받은 편지랑 똑같이 썼어요. 축복한다고요. 

 

 

  레뜨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하레뜨가 예수님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했으면 제일 좋겠고 자기가 기뻐하는 삶 살기를 바랍니다. 사회적으로 출세하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이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자기 삶에 만족하면서 기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하레뜨와 결연하고 찾아보니까 온두라스가 옛날 우리나라보다 더 힘든 나라 같아요, 살인률이 세계 1위더라고요. 놀랐어요. 

 

성경의 다섯 가지 권유로 기도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하레뜨를 축복해요. 저 아이는 잘될 거예요. 쟤를 보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려고 해요. 저와 아무 상관없는 아이인데 잘 될 거예요. 

 

 

  미국 후원자님도 후원자님 보면서 그러셨을 것 같아요.

 

  그러셨을 것 같아요. 사랑은 계속 전달되는 것 같아요. 저 아이가 스물, 서른, 마흔… 하나님 사랑을 발견해서, 자기도 베풀 수 있고 복음을 전달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 아닐까요? 그게 또 하나님이 설계하신 그런 부분일 것 같아요. 

 

 

  어머니께도 하실 이야기 많으실 것 같아요.

 

  우리 어머니요? (후원자님 편지를 보내온 편지 봉투에 적힌 어머니 성함을 보며) 이름만 봐도 눈물이 나지요. 고행자, 행복하라고 지은 이름이실 텐데 평생 고생하시면서 고행하는 사람이 되셨잖아요.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고,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신앙인으로 키워 주셔서 감사해요.

 

확신이 있는 거예요. 내 삶에도 어머니의 축복의 기도가 지금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어머니의 기도로 즐겁게 행복하게 감사하게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원들이 이춘호 후원자에게 보낸 감사의 글귀. 

매일 말씀으로 묵상하며 기도한 덕분인가 봅니다.

이춘호 후원자와 함께 보낸 시간이 "깊은 사랑"이었다고 말합니다. 

 

 

 

" 한국 어린이를 돕기 위해 시작한 컴패션이 70주년을 맞았습니다.

함께해 주시는 모든 후원자님들께 감사합니다."

 

 

 

왠지 눈물 나요, 제 후원자님도 그러셨겠지요?

 

이춘호 후원자

 

 

 

 

 

일곱 살 때부터 후원해 준 미국의 슈 미거 부인 사진(왼쪽)과

현재 후원하고 있는 하레뜨(오른쪽) 사진을 들고 있는 이춘호 후원자.

 

 

 

 

1976년, 우리나라 나이 일곱 살이었던 어린 소년이

53세 중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받은 8년 동안의 사랑으로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었다고,

후원자님께 말씀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고,

이춘호 후원자가 전합니다.

 

 

 

 

  부산이 고향이신가봐요. 

 

  제가 부산에서 나고 자랐어요. 어머니와 형과 같이 살았지요. 부산 광안리에 있는 남강아동복지원, 고아원이었는데 거기 교회에서 후원금을 지급했어요. 제가 처음 간 때가 76, 77년도쯤이에요. 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지요. 한 달에 한 번씩,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가면 예배 드리고 성경 구절 외우면 봉투를 줬지요. 70년 대에는 5천 원 받았고, 마지막 84년인가 85년인가 받았을 때에는 만 원이 넘었어요. 제가 끝나갈 때 뒷 번호 아이들이 천 번이 넘었다는 기억이 있어요. K-705-0005가 제 번호였는데 앞 번호였던 걸 보면 저는 그 기관에서 거의 초창기에 받은 것 같아요. 

 

 

  현금을 직접 받으셨어요?

 

  누런 봉투에 담아 받았어요. 예배 드리고 난 뒤 번호 순대로 줄을 서면 성경 구절을 외우고 봉투를 받곤 했지요. 전 달에 미리 성경구절을 알려주면 외워서 갔어요. 못 외워서 계속 못 받는 아이도 있었는데, 끝내는 못 외워도 주긴 줬겠지요. 성경 말씀을 마음에 심으려고 하는 게 있었으니까요. 어머니는 저를 기도로 낳으셨고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어요. 그런데 그때 성경 말씀을 외운 게 살면서 생각나고 힘이 되어요. 외웠던 말씀들은 들을 때 느낌이 바로 와요.

 

 

  당시 받았던 돈이 큰 돈인가요?

 

  큰 돈이죠. 일반 근로자들이 월급으로 10만 원 받을 때니까 그때 4,5천 원이 지금으로는 10만 원 정도 될 것 같아요. 제가 사는 곳에서 남강아동복지원에 가려면 버스 타고 한 시간 가야 해요. 광안리가 개발되면서 복지원이 부산 끝으로 이사를 갔어요. 집에서 두 시간 걸렸어요. 그래도 갔을 정도니까요. 초등학교 때에는 형이 데리고 갔어요. 어머니는 일을 하시니까. 둘이서 양정이라는 데에서, 꼭 짜장면을 먹었어요. 곱빼기를 시켰어요. 자장면이 그때 3백 원했어요. 저희가 후원금 만 원 받았을 때였어요.

 

 

  지금 컴패션은 현금으로 안 줘요. 가난한 가정에서 부모가 다른 데 사용하는 일이 많아서요. 컴패션 어린이센터에서 어린이들을 양육하는 것으로 정착되었지요. 학교 보내주고 건강한 영양식 챙겨주고 건강검진해주고, 풍족하게는 아니어도 하나님 안에서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받아야 하는 것들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저는 오래 전에 후원 받았으니까요. 그후 많이 달라졌겠죠? 후원자님이 감사해요, 그냥. 한 번도 후원자가 바뀌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분에게 죄송하게 안 간다고 말도 않고 갑자기 안 가게 되었어요. 제가 중학교 때 형이 은행 들어가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그만 받았으니까. 

 

 

  당시 외웠던 말씀들은 어떤 상황에서 생각나던가요?

 

  쉬운 말씀은 없었어요. 제 생활의 신조가 된 말씀이 있는데, 바울이 적은 말씀인데 다섯 가지 권면입니다. 풀어서 말씀드리면, 살면서 겸손해야 되고 자비하고 긍휼히 여기고 온유하고 오래 참으라는 말씀이었어요. 여기가 증권회사잖아요. 지점장으로만 17년째예요. 재무관리라는 직업을 왜 나한테 주셨을까, 정말 숫자, 돈의 노예가 되기 쉽거든요. 아침마다 기도하면서, 직원을 실적으로 보지 않게 해달라고 이 말씀으로 매일 기도해요. 

 

 

 

 

“이분들 정말 선해 보이지 않나요?”

 

51년생 탐 미거와 52년생 슈 미거 부부.

자녀들 이름까지 또박또박 적혀 있는 후원자 카드와 첫 번째 편지입니다.

후원자님들의 자녀는 처음 이춘호 후원자와 만났을 때

두 명이었다가 셋이 되었습니다.

 

후원자님들도 보고 싶지만,

이제는 40대가 되었을

두 명의 자녀들도 보고 싶습니다.  

 

 

 

 

 

  갑자기 컴패션을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있더라고요.  

 

  컴패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셨을 때 어떠셨어요?

 

  제일 감동은 우리 나라가 도와주는 나라가 되었더라고요. 정말 감사하다 싶었어요.

 

 

  한국이 처음이에요. 도움을 받던 나라가 도움을 주게 된 사례가. 이후에도 수혜국에서 후원국 된 나라가 아직은 없어요. 1993년도에 컴패션이 한국에서 철수했다가 2003년에 들어온 줄 모르셨어요? 

 

  몰랐어요. 아직도 도움을 받지는 않겠지만 있을까 하면서 검색했지요. 지금 우리나라는 얼마나 후원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후원자가 12만 명, 후원하는 어린이는 14만 명이에요. 

 

  작은 숫자가 아니네요!

 

 

 후원국들이 12개국이에요. 1952년에 한국 어린이를 도우면서 처음 시작한 미국 다음으로, 한국이 후원규모가 두 번째예요! 컴패션 초기에 시작한 캐나다, 호주, 영국 등 이들 국가보다 후원규모가 크지요. 이런 성장을 보인 후원국이 없어요. 후원자님들이 대부분 크리스천들이에요. 열정이 대단하시죠. 한국교회와 크리스천의 힘이에요. 

 

 

 

 

84년에 받은 후원자님의 마지막 편지.

다른 편지들은 어머니가 보관했지만

웬일인지 마지막 편지는

2004 부산에서 서울 올라올 때부터 직접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편지라는 의미가 각별해집니다.

 

 

 

 

 

  오래 전인데도 편지들이 깨끗해요.

 

  어머니가 보관하고 계셨지요. (웃음) 이번 일로 보내 달라고 하니까 빨리 받으라고 택배로 바로 보내주셨어요. 어머니는 원래 이북에서 사시다가 전쟁통에 거제도까지 피난 오셨어요. 거제도에서 계실 때, 천막교회에서 들려오는 찬송소리가 너무 좋더래요. 그후에 어머니가 집안을 다 복음화 시키셨죠. 아버지는 베트남에서 사업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74년 패망하자마자 귀국하셔서 돌아가셨어요.

 

당시 어머니가 서른 여덟이셨지요. 형은 초등학교 4학년, 저는 다섯 살이었어요. 어머니께 감사해요. 어머니가 끝까지 저희를 키워주셨으니까요. 어린 나이에 엄마가 떠나면 어떡하지, 두려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형하고 저하고 아파트 마련해 드려서 사시고 정정하세요!

 

 

  후원자님께 답장도 하셨어요?

 

   편지요, 엄청 썼지요! 석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썼어야 했어요. 늘 쓰던대로 썼어요. 남들은 굉장히 어려워했는데 저는 십 분 만에 썼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착한 어린이가 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이렇게. 워낙 오래 되어서 정확하게는 잘 기억이 안 나요. 어릴 때 편지 쓰는 거랑 나중에 교회에서 중등 학생부 회장도 하고 했을 때에는 마음이 달라졌지요. 정확한 편지 문구는 잘 기억 나지는 않지만요. 석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쓰면, 후원금도 두 배를 받았지요.

 

 

 

 

 

“너는 우리에게 매우 귀한 아이야.

하나님께서 너를 위해 준비하신 계획이 있을 거야.”

어머니가 종종 보여주셨던 편지였지만

이번에 열어 봤을 때 달랐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지금 후원하고 있는 하레뜨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도

후원자님의 사랑을 떠올리며, 같은 마음을 담았습니다. 

“너는 정말 귀한 아이야.”라는 마음을요.

 

 

 

 

 40년 전에 후원해 주신 이분들은 지금 어떤 의미가 되셨나요.

 

  저는 지금도 이 편지 문구가 감사해요. “우리에게 매우 귀한 아이야.” 누구인지도 몰라요. 본 적도 없어요.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하고 연결이 되었고, '귀한 아이야, 너를 위해 준비하신 계획이 있을 거야.'라고 이야기해 주신 거죠. 

 

진짜 축복의 말씀이잖아요! God Bless you라고 항상 써주셨어요. 제 삶에 큰 도움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계속 보여 주셨는데, 이번에 볼 때 이 편지 내용에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후원자님이 어릴 때 후원 받은 이야기를 주변에서 알고 계신가요?

 

  왜 나는 가난해서 도움을 받아야 하나 부끄러웠던 적이 있어요.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는 생각 못했죠. 세월이 지나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주변에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지요. 어머니는 감사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생각이 바뀐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최근, 40대 이후예요. 그전에는 정신없이 걸어왔고 40대 이후 애들 크고 성장하고 난 이후에, 생각이 조금씩 바뀌더라고요.

 

예전에 어릴 때에는 엄마하고 걸어가는 것도 부끄러웠어요. 일 다니시는 엄마가 초라해 보이고. 2,30대가 되니까 달라지더라고요. 어머니가 자랑스럽고 지금도 그렇고요. 40대가 되니까 달라졌어요. 내가 도움 받았었지, 부끄러운 것 아닌데, 나도 해야 하겠구나, 싶었지요. 지금 이 나이 때에 밝히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런 도움으로 잘 성장했기 때문에 나도 도와야겠다 했지요. 

 

 

  편지를 평생 보관하시고, 계속해서 아들에게 보여주셨던 어머니께 이분들은 어떤 의미로 남아 계실까요

 

  어머니는 후원자님들이 하나님이 엮어 주신 분들이라고 하셨어요. 어머니가 교회에서 권사로 은퇴하셨는데요. 언젠가는 이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꼭 해야 하고, 네가 하나님 안에서 잘 컸다는 것을 꼭 보여드리라고 하시지요. 직접 뵐 수 없다면 전화 통화라도, 편지를 써서라도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고, 후원자님 자녀들이 어떻게 컸는지 궁금해요. 

 

 

  후원자님과 통화가 되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눈물 날 것 같은데요. 어릴 때 꿈이었던 목사는 되지 못했지만 한국의 금융기관에서 잘 다니고 있고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요. 너무 감사하다고요. 저도 누군가를 축복하는 삶 살고 싶어 한 아이의 삶을 일부나마 책임지고 있다고요.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일부였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여섯 살, 온두라스의 하레뜨(Jareth).

마치 후원자님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고요.

줄무늬 윗도리마저 후원자님이 어릴 때 찍은 사진과 판박이였습니다.

이상하게 보면, 눈물이 나는 하레뜨 사진입니다.

 

 

 

 

 여섯 살 온두라스의 하레뜨를 후원하기 시작하셨어요. 

 

  홈페이지에서, 하레뜨가 눈에 띄더라고요. 아버지가 안 계시고 엄마가 혼자 키우시고 나이도 여섯 살이더라고요. 저랑 같았어요. 어릴 때 제 사진에도 이런 옷 입은 사진이 있어요. 

 

 

  레뜨에게 보낸 편지에 뭐라고 쓰셨어요?

 

  아직 한 번 썼어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 써주면서 닮았다고 써주고. 제가 후원자님께 받은 편지랑 똑같이 썼어요. 축복한다고요. 

 

 

  레뜨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하레뜨가 예수님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했으면 제일 좋겠고 자기가 기뻐하는 삶 살기를 바랍니다. 사회적으로 출세하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이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자기 삶에 만족하면서 기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하레뜨와 결연하고 찾아보니까 온두라스가 옛날 우리나라보다 더 힘든 나라 같아요, 살인률이 세계 1위더라고요. 놀랐어요. 

 

성경의 다섯 가지 권유로 기도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하레뜨를 축복해요. 저 아이는 잘될 거예요. 쟤를 보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려고 해요. 저와 아무 상관없는 아이인데 잘 될 거예요. 

 

 

  미국 후원자님도 후원자님 보면서 그러셨을 것 같아요.

 

  그러셨을 것 같아요. 사랑은 계속 전달되는 것 같아요. 저 아이가 스물, 서른, 마흔… 하나님 사랑을 발견해서, 자기도 베풀 수 있고 복음을 전달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 아닐까요? 그게 또 하나님이 설계하신 그런 부분일 것 같아요. 

 

 

  어머니께도 하실 이야기 많으실 것 같아요.

 

  우리 어머니요? (후원자님 편지를 보내온 편지 봉투에 적힌 어머니 성함을 보며) 이름만 봐도 눈물이 나지요. 고행자, 행복하라고 지은 이름이실 텐데 평생 고생하시면서 고행하는 사람이 되셨잖아요.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고,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신앙인으로 키워 주셔서 감사해요.

 

확신이 있는 거예요. 내 삶에도 어머니의 축복의 기도가 지금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어머니의 기도로 즐겁게 행복하게 감사하게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원들이 이춘호 후원자에게 보낸 감사의 글귀. 

매일 말씀으로 묵상하며 기도한 덕분인가 봅니다.

이춘호 후원자와 함께 보낸 시간이 "깊은 사랑"이었다고 말합니다. 

 

 

 

" 한국 어린이를 돕기 위해 시작한 컴패션이 70주년을 맞았습니다.

함께해 주시는 모든 후원자님들께 감사합니다."

 

 

 

댓글
0 / 300자
  • yijiiii
    2022-04-19 09:19:26

    그냥 사라지는 사랑은 없나봅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흘러갔던 사랑이 이제는 한국에서 온두라스로 흘러가는 모습이 참 신기하고 감동입니다. 컴패션 후원하시는 모든 분들 화이팅입니다!!

  • me1988jj
    2022-04-12 18:54:03

    읽어가는 내내 몇 번이나 울컥울컥 하게되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 어린이에게 더더 사랑을 담아, 기도로 함께하고파집니다...!

  • rancarol
    2022-04-08 17:15:43

    너무 감동이네요ㅠㅠ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시다니 너무 멋지신 분입니다. 도전이 많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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